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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별가루 지도 제작자 · 24화
PAYLUA ORIGINAL · 제24화

해안이 세 번 접힌 오후

별가루 지도 제작자 · 3,658자

오프라인 책장
나는 열쇠 구멍이 있는 문을 좋아한다. 보통 그 앞에서 해야 할 일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열쇠를 찾거나, 주인을 부르거나, 문 앞에서 돌아가면 된다. 하지만 저류창고의 쇠문은 내 이름을 발송인으로 등록해 놓고 열쇠 구멍조차 없었다. 이렇게 무례한 문은 처음이었다. “이건 제 서명이 아닙니다.” 나는 명패를 손톱으로 긁었다. 테온이 옆에서 들여다봤다. “글씨체는 비슷한데.” “그게 더 문제죠. 제 글씨를 흉내 내려면 허가증부터 받아야 합니다.” 미라는 농담에 웃지 않았다. 그녀는 쇠문에 귀를 대고 안쪽 물소리를 들었다. 수면 높이가 올라가는 소리가 문 안쪽 바닥에서 울렸다. 안에 사람이 있다면 지금 서둘러야 했다. 그러나 무작정 문을 뜯으면 창고에 갇힌 공기가 수로 쪽으로 폭발할 수 있었다. 나는 문 옆에 붙은 구조도를 자세히 살폈다. 경계작성회의 새 조감도에서는 환기구가 처음부터 없는 것으로 처리돼 있었다. 하지만 나엘이 보여 준 지난겨울 수리비 청구서에는 환기구의 철망 교체 비용이 적혀 있었다. 누군가 수리했다고 비용을 받아 놓고, 공식 지도에서는 그 통로를 지운 셈이었다. 우리는 청구서의 발급 날짜를 수첩에 옮기고 철망의 실제 상태를 직접 확인하기로 했다. 시엘은 건물 뒤로 돌아가 옛 환기구를 찾았다. 헤론은 별락 관측표를 펼쳤다. 낙성 예보의 검은 선이 바뀐 것은 밤하늘보다 지면에서 먼저 확인됐다. 제분소와 저류창고 사이 거리가 아침에는 백삼십 보였는데 이제는 백칠십 보로 늘어나 있었다. 중간 지형이 접히고 있었다.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나 있나요?” 미라가 물었다. “하늘의 예보로는 아직 열일곱 날.” 헤론이 대답했다. “하지만 오늘 이 창고를 빠져나갈 시간은 그보다 짧겠지.” 나엘이 부서진 창고 벽 아래의 판자를 뜯어냈다. 안쪽에 작은 조작판이 있었고, 두 개의 손잡이에는 ‘오늘’과 ‘전일’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또 다른 손잡이는 깨져 있었다. “어느 쪽을 돌리면 문이 열려요?” 키오가 물었다. “모르겠어.” 나엘이 솔직히 말했다. “내가 맡은 건 세금을 걷는 수문이었지, 시간을 돌리는 수문이 아니었거든.” “오늘만큼은 그 구분에 감사하고 싶네요.” 나는 현장 기록부터 수집했다. 시엘이 보유한 옛 도면에는 환기구가 북동쪽에 있었고, 지금 건물에도 그 자리에서 찬 바람이 나왔다. 나엘은 최근 수리한 흔적이 있는 걸 직접 봤다고 했다. 그리고 미라는 한쪽 벽의 소금띠가 예상 수위보다 한 뼘 높다는 걸 확인했다. 세 가지를 맞추니 지도가 창고 북쪽 모서리에 짧은 선을 드러냈다. 나는 그 선을 넘지 않았다. 확인한 길만을 표시해도 동료가 어디까지 들어갈 수 있는지 알려 줄 수 있었다. 미라가 환기구에 줄을 고정했다. 테온이 먼저 내려가겠다고 나섰으나, 미라는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전하가 앞서다 걸리면 제가 끌어올려야 하잖아요.” “왕자는 가벼운 편이오.” “왕관이 무거워요.” “반쪽입니다.” “그럼 반쯤 무겁겠네요.” 미라는 좁은 환기구로 몸을 미끄러뜨렸다. 나는 아래에서 그녀의 발자국과 줄의 길이를 계산해 지도에 적었다. 쇠문 안쪽에서 나이 많은 여자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왜 내 말을 믿지 않죠? 당신의 이름이 여기 있어요!” “그래서 확인하러 왔습니다.” 내가 말했다. “이름이 있다고 제가 그 일을 했다는 뜻은 아니니까요.” “나는 여길 지킨 지 스무 해가 됐어요.” “그럼 중요한 증인이시겠군요. 성함을 알려 주시겠습니까?” “아직은 안 돼요. 명패가 사람을 찾고 있어요.” 그 말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두려움만큼은 느껴졌다. 문 안의 여자는 자기 이름이 문서에 적히는 일을 무서워했다. 백동상회가 빈자리마다 세금을 매기고, 이름을 항로의 값으로 쓰는 곳이었다. 갑자기 지면이 흔들렸다. 저류창고 앞 돌계단이 둘로 갈라졌다. 그 틈에서 검은 물이 솟았다. 우리는 키오를 뒤로 보내고 나엘과 함께 장대를 받쳤다. 흙먼지 속에서 상단 경비원의 고함이 들렸다. 그들 역시 길이 바뀌는 바람에 다른 편으로 고립됐다. “도와달라!” 경비대장이 소리쳤다. 나는 잠시 짜증이 났다. 사람을 구하는 일에 상대의 계산서를 첨부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장대 좀 잡으세요!” 내가 외쳤다. 헤론이 먼지에 휩싸인 사람들을 대피시켰다. 테온은 무너지는 판자를 어깨로 받쳤고, 나엘은 창고 바깥 수위를 줄이기 위해 오늘 쪽 밸브를 반 바퀴 돌렸다. 전일 쪽에는 손대지 않았다. 과거의 물길을 현재로 끌어오면 어느 문이 열릴지 몰랐다. 미라가 환기구 안에서 외쳤다. “사람 있어요! 두 명! 한 분은 움직일 수 있고 한 분은 다리가 끼었어요!” 우리는 소리를 들은 숫자와 직접 확인한 숫자를 구분해 기록했다. 나는 당장 밸브를 더 열고 싶었지만 미라는 안쪽 상태를 먼저 알렸다. 물이 허리까지 차올랐고, 문 가까이에 부러진 선반이 있었다. 선반 아래에 사람이 끼었다. 나엘은 자신이 보관하던 수문 열쇠를 꺼냈다. 창고의 낡은 조작판에 맞지 않을 줄 알았는데, 구멍이 아닌 톱니홈에 정확히 끼어들었다. 그녀는 한순간 어쩔 줄 몰라 했다. 소유하지도 않은 시설의 열쇠를 갖고 있었던 셈이었다. “누가 이걸 줬습니까?” 내가 물었다. “지난 겨울 백동상회 관리인이요. 월급이 밀리면 그걸 담보로 가져가도 된다고 했어요.” “그분은 참 독창적인 담보 개념을 갖고 계시군요.” 우리는 손잡이를 완전히 돌리지 않고 조금씩 움직였다. 물이 창고 아래 통로로 빠져나가자 미라가 몸을 기댄 선반이 움직였다. 테온이 밧줄을 당겼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에 선반이 들렸다. 내가 그 사이 문 앞의 돌을 지지대로 세웠다. 사람 두 명을 모두 환기구 쪽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먼저 나온 여자는 젖은 머리카락을 뺨에 붙인 채 나엘을 보고 놀랐다. 나엘도 눈을 크게 떴다. “나엘?” “네가 찾는 사람은 내가 아니야.” 여자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그런데 네 동생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는 알고 있어.” 나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구출된 또 한 사람은 어린 남자아이였다. 아이는 손에 둥근 동전 모양의 종이표를 움켜쥐고 있었다. 그 표에는 일곱 자리 중 셋째 자리에만 작은 점이 찍혀 있었다. 이름도, 출항 시각도 없었다. 그때 창고 앞의 길이 다시 접혔다. 건물 맞은편에 있던 제분소가 먼 바다 쪽으로 두어 걸음 밀려났다. 시엘은 곧장 일행을 안전한 지대로 옮겼다. 미라는 구조된 아이에게 물부터 건넸다. “이름을 말할 수 있니?” 테온이 물었다.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무서워서인지, 모르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안 해도 괜찮아.” 나는 지도의 빈칸을 그대로 남겼다. 헤론이 창고의 붕괴된 벽을 올려다봤다. 그 안쪽에는 잉크가 흐른 벽화가 있었다. 바다를 가로질러 서로 다른 해안을 이어 놓은 오래된 지도였다. 세 개의 검은 표식 중 두 개가 사람의 발자국 모양이었고, 마지막 하나는 열린 손 모양이었다. 그 그림의 아래에는 작은 글씨가 남아 있었다. ‘세 번째 기준점은 사람을 고르지 않는다. 돌아오는 길을 증명하는 자가 지킨다.’ 나는 손가락을 떼고 그 문장을 수첩에 적었다. 이것이 세 번째 기준점의 정의라면, 우리가 찾는 것은 숨겨진 보물이 아니라 누군가의 돌아올 권리를 지키던 장소였다. 멀리 제분소 종이 울렸다. 이번에는 세 번이 아니라 네 번이었다. 헤론의 낙성 예보에도 새 검은 선 하나가 그어졌다. “별이 떨어지기 전에,” 그가 말했다. “누군가 먼저 해안을 접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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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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