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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별가루 지도 제작자 · 193화
PAYLUA ORIGINAL · 제193화

제193화 - 네 번째 관측값을 지우지 마라

별가루 지도 제작자 · 3,512자

오프라인 책장
내 이름이 적힌 승인란 앞에 서 있으니 어릴 적 시험지가 떠올랐다. 문제를 하나도 풀지 못했는데 감독관이 다 맞은 것으로 처리해 주겠다고 유혹하는 꿈이었다. 그때의 나는 기꺼이 서명했을 것이다. 지금은 문제지가 세계 전체만큼 커져 있었다. “서명하지 않으면 원판이 계속 돌아갑니다.” 카엔이 말했다. “서명하면 다른 사람들이 실제로 돌아온 적 없는 길까지 완료되는 거죠?”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그럼 제 시험지는 제출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승인판에서 한 걸음 물러섰다. 금색 글자는 내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오듯 반짝였다. 아무리 고개를 돌려도 '레이븐'이라는 이름이 보였다. 세계의 운명을 끌어당기는 자석에 내 이름이 쓰였다는 사실은 무서웠다. 더 무서운 것은 기계가 왜 나를 골랐는지 알 것 같다는 점이었다. 아르켄을 구한 날 나는 수많은 시민의 지도를 한 장에 얹었다. 서로 다른 기록을 한곳에 모은 경험을, 누군가는 남을 대신 결정하는 권한으로 오해했다. 여린은 바닥에 앉아 숨을 골랐다. 미라가 가져온 물에 적신 천으로 이마를 닦아 주자 그는 잠시 웃었다. “자네는 안쪽에 있는 것을 보겠다고 했지.” 여린이 말했다. “그러려면 원본 접수실을 지나야 해. 돌아올 때까지 다른 사람을 보낼 방법도 확보하고.” “안쪽까지 몇 걸음입니까?” 내가 물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갔을 땐 스물여섯 걸음이었소. 하지만 그날 이후 저 벽이 두 번 움직였어.” 나는 지도의 여백에 '스물여섯 걸음—과거'라고 썼다. 테온은 바닥에 분필로 첫 발판을 표시했다. 헤론은 천장에서 내려오는 빛의 각도를 재었다. 우리 각자가 다른 사실을 맡았다. 길을 확인하는 데는 왕관보다 분필이 더 도움이 되는 날이었다. 석판 너머에서 낮은 울림이 났다. 카엔이 장치의 옛 전원을 끊으려 했지만 끊을 선이 없다고 말했다. 전기나 태엽이 아니라 별가루와 연결된 경계 원판 자체가 작동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것이 하늘의 별을 뜻하지는 않았다. 칠흑 천문정에서도 기계가 별빛을 흉내 낸 적이 있었다. 우리는 빛이 어디서 오는지부터 확인하기로 했다. 안쪽에는 네 갈래의 좁은 홈이 바닥을 따라 뻗어 있었다. 첫째는 별의 관측, 둘째는 물길의 측정, 셋째는 사람의 통행, 넷째는 이견과 미확정. 넷째 홈만 새 금속판으로 덮여 있었다. 나는 칼끝으로 판의 틈을 긁었다. 누군가 최근에 박아 넣은 못이었다. 못머리에는 경계작성회의 인장이 있었다. “실수를 덮기 좋은 곳에 도장을 찍는 재주가 있네요.” 내가 말했다. 헤론이 못을 보자 고개를 숙였다. “스승 세르안의 명령을 따르던 시절, 나도 저 네 번째 칸을 비워 뒀어. 다른 값이 틀렸다고 생각했지. 틀렸다면 왜 틀렸는지 남겼어야 했는데.” “지금 고칠 수 있는 부분부터 고치죠.” 테온이 말했다. 우리는 판을 부수기 전에 걸쇠를 살폈다. 억지로 잡아당기면 네 줄이 함께 움직여 관측값이 뒤섞일 구조였다. 미라가 휴대용 갈고리로 못 뒤편의 작은 고리를 걸었다. 세온이 바깥에서 보낸 신호가 공기구멍을 통해 들렸다. 세 번의 종, 두 번의 응답. 바깥 배는 안전했고 수위는 아직 낮았다. 카엔이 두 개의 나사를 차례로 풀었다. 헤론은 판을 붙들었다. 마지막 나사가 빠지자 넷째 홈 안에서 낡은 기록지가 들려 올라왔다. 그곳에는 일곱 명의 관측자가 각기 다른 시각에 서명한 자국이 있었다. 어떤 이름 옆에는 동의, 어떤 이름 옆에는 보류. 가장 마지막에는 '에르안—관측 중단'이라고 적혀 있었다. “에르안이 여기까지 왔다는 뜻입니까?” 테온이 물었다. “이 기록이 여기까지 왔다는 뜻입니다.” 나는 답했다. “사람은 아직 확인하지 못했어요.” 기록지의 뒷면에는 또 다른 도장이 찍혀 있었다. '원본 인수 루카스. 첫 경계실 보관.' 루카스가 자료를 받아 이곳으로 옮겼다는 단서였다. 우리가 흰 별 계단과 별의 전당에서 본 사본보다 글씨가 선명했고, 각인이 같은 방향으로 눌려 있었다. 헤론이 기존 탁본과 대조했지만 특정 인물이 직접 찍었다는 결론은 미뤘다. 나는 네 번째 홈을 따라 마지막 방으로 갔다. 바닥에는 검은 별 모양의 금속판이 놓여 있었다. 가운데가 비어 있어 발밑의 돌이 보였다. 벽에는 두 장의 하늘 지도가 걸려 있었다. 한 장에는 별 하나가 실제로 관측된 것으로 표시돼 있었고, 다른 한 장에는 그 별의 빛이 수중 반사판을 거쳐 도달한 것으로 기록돼 있었다. 날짜도 달랐다. “바로 이 차이야.” 헤론이 낮게 말했다. “진짜 별을 본 기록과 옮겨진 빛을 본 기록을 하나로 합쳤어.” “그럼 마지막 별은 안 떨어지는 겁니까?” 미라가 물었다. “그렇게 결론 내릴 수도 없어. 실제 낙성 가능성은 남아 있어. 다만 중앙이 내놓은 날짜와 위치는 검증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거지.”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려 했지만 바닥의 검은 판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녹음된 목소리인지 바깥에서 연결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먼저 날짜와 장소를 물었다. 대답은 없었다. 대신 아주 또렷한 한 문장이 반복됐다. '네 번째 값을 버리면 세 번째 값도 참이 될 수 없다.' 헤론이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스승이 지운 말의 앞부분이다.” 그가 진작 그 문장을 들었는지, 아니면 오늘 처음 제대로 이해했는지 나는 물어보지 않았다. 오래 묵은 죄책감의 무게는 그 사람이 직접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 옆 작은 수납함에서는 오래된 원판을 싼 천이 나왔다. 천에는 바닷소금과 흰 가루가 남아 있었다. 미라가 손끝으로 소금을 만지더니 말했다. “이건 무월항 부두의 소금과 달라요. 입자가 굵어요. 서쪽 깊은 바다에서 온 배들이 싣는 소금이죠.” “루카스가 바닷길로 왔다면?” 내가 물었다. “가능성은 있어요. 하지만 물건을 다른 사람이 실어 왔을 수도 있죠.” 우리 모두 조금씩 나를 닮아 가는 것 같았다.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결말을 보고 판단해야겠다. 그때 가운데 판이 낮게 떨리며 새 글씨를 만들었다. [다음 대조 시점: 실제 관측 전] 뒤이어 작은 별 그림이 바닥에서 움직였다. 그것은 천장의 빛을 따라간 그림자였다. 하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의 별은 아직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는 두 광원을 나누어 기록했다. “누가 이런 장치를 만들었죠?” 테온이 물었다. 여린이 문턱에서 대답했다. “이걸 만들었다는 사람은 여럿이오. 장치의 원래 목적은 서로 다른 기록을 보존하는 것이었지. 하지만 사용자를 한 사람으로 좁히는 일은 나중에 시작됐소.” 그는 안쪽 벽의 얇은 서랍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수령하지 않은 편지 한 통이 놓여 있었다. 수신인은 특정한 이름이 아니라 '이견을 지우지 않을 다음 지도 제작자'였다. 나는 봉투를 손에 들었다. 그 위에 찍힌 날짜는 아르켄에 첫 경고가 나타나기보다 열두 해 앞서 있었다. 그리고 봉투 안쪽에는 내가 아직 본 적 없는 지형을 따라 그려진 짧은 선 하나가 숨어 있었다. “어디로 가는 길입니까?” 미라가 물었다. “아직은 모릅니다.” 나는 그 선을 지도에 옮기지 않았다. 대신 봉투가 실제로 여기 있었다는 사실과 우리가 직접 지나온 길을 나란히 적었다. 남의 미래를 안다고 선언하는 손보다, 당장 모르는 것을 남겨 두는 손이 더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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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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