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경계실로 들어가는 길을 찾기 위해 나는 제일 먼저 사다리를 빌렸다.
세상을 지울지도 모르는 장치의 비밀을 쫓는 사람이 왜 사다리부터 구하느냐고? 중앙대조실의 출입 안내판이 하필 천장 위쪽에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이 곧 끝나더라도 공공기관의 안내문은 읽기 불편한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 모양이었다.
“발을 조심해.” 미라가 사다리를 붙들었다.
“네가 아래에서 웃지만 않으면요.”
“안 웃었어. 아직.”
금속판에는 세 개의 입구가 그려져 있었다. 중앙 기록문, 남쪽 배수문,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검은 칠이 된 옛 경계관리문. 나는 검은 칠 아래에 손끝을 대었다. 문양의 테두리가 닳아 있었다. 막연한 상상이 아니라 누군가 오랫동안 드나든 흔적이었다.
정박지에서 확보한 수위표와 세온이 지켜 낸 원판 반송표를 나란히 놓았다. 옛 경계관리문 옆에는 '제삼 조류가 빠진 뒤, 두 번째 낮종 이전'이라는 조건이 적혀 있었다. 지금은 조류가 빠지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문이 남아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지도의 빈 원은 저기까지밖에 말해 주지 않습니다.” 내가 말했다.
테온이 왕관의 남은 반쪽을 꺼냈다. “문을 열 권한이 필요하면 내가 나서겠다.”
“권한과 길은 다른 거죠.”
“알고 있다. 그래도 내가 들고 있는 물건이 문고리로는 쓸모가 있을지 몰라.”
왕자가 자기 왕관을 문고리에 비유하는 건 품위가 없어 보였지만, 나는 그런 왕자가 마음에 들었다.
중앙대조실 바깥 수로에서 유란이 배를 대기시켰다. 카엔은 시설 도면을 가져왔고 아셀은 진실조류 정박지의 주민들이 서명한 대조 유예 기록을 봉투 세 개로 나눴다. 하나는 아셀에게, 하나는 유란에게, 마지막 하나는 내 지도통에 넣었다. 처음부터 원본을 한 사람이 독점하지 않기로 한 약속이었다.
세온은 다친 다리를 끌고 갑판 끝에 섰다. “아래쪽 수문은 금색 판이 없어도 수동으로 닫을 수 있어요. 내가 전에 들어가 봤습니다. 다만 안쪽 통로까진 못 갔어요.”
미라는 동생을 내려다보았다. “너는 배에서 신호를 맡아. 다리에 무리가 간다.”
“누나, 열두 해 만에 재회했는데 첫 명령이 잔류야?”
“두 번째 명령은 저녁 잘 먹기.”
둘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니 우리가 겨우 사람 하나를 돌려받았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세온은 자신의 이름을 큰 소리로 말했다. 유란과 아셀이 각자 장부에 적었다. 자동 귀환표가 아니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말하고 듣고 확인한 기록이었다.
우리는 배수문 안쪽에 닿았다. 문턱에는 금색 판이 떨어져 나간 자국과 오래된 손잡이가 있었다. 카엔이 손잡이를 돌렸지만 꿈쩍하지 않았다. 미라가 귀를 대자 안쪽에서 물방울 소리가 들렸다. 나는 지도에 '문 존재 확인, 통과 여부 미확정'이라고 적었다.
“또 빈칸이네요.” 테온이 말했다.
“네. 제 직업이 요즘 빈칸 관리로 바뀌었습니다.”
헤론은 돌벽에 박힌 얇은 철판을 보았다. 철판에는 세 개의 눈금과 일곱 개의 작은 홈이 있었다. 맨 아래에는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원형 빈자리. 우리는 여러 장소에서 이 문양을 보았다. 세 관측과 일곱 증언, 그리고 확인하지 못한 사람의 몫을 남기는 영의 자리. 그러나 그 뜻이 이 문에서도 같은지는 검증해야 했다.
헤론은 첫 홈에 금속 조각을 대지 않았다. 대신 북쪽과 남쪽의 돌 이음매를 살폈다. “이건 잠금장치가 아닐 수도 있어. 예전 물높이를 표시한 기준점이겠지.”
그때 바깥 배에서 작은 종이 세 번 울렸다. 세온의 신호였다. 이어 두 번, 미라가 답했다. 자동으로 울리는 소리가 아니라 사람의 확인이었다. 제삼 조류가 최저점에 닿았다는 뜻이었다.
바닥의 좁은 배수구에서 물이 빠졌다. 돌문 아래에 숨은 손잡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금색 장치가 표시한 입구보다 한 뼘 낮은 위치였다. 미라와 내가 함께 당기자 문이 조금 열렸다. 안쪽은 어두웠고 차가운 공기가 흘러나왔다. 나는 먼저 납추를 던졌다. 납추는 돌 바닥을 두 번 치고 멈췄다. 물길이 이어지지는 않았다.
테온이 횃불을 들고 앞섰다. 세 사람이 확인한 발판 위로만 걸었다. 관측 기록과 신호가 있어도 발밑의 돌 하나는 직접 밟아 봐야 했다. 마지막 사람인 카엔이 건너온 뒤에야 나는 지도의 빈 원까지 선을 이었다.
통로 중간에서는 오래된 경계 자국이 우리를 시험했다. 바닥에 흰색 선 두 개가 나란히 그어져 있었는데, 왼쪽 선은 발을 디디자 단단했고 오른쪽 선은 납추가 닿는 순간 아래로 부서졌다. 나는 얼른 테온의 외투를 잡아당겼다. 바닥 아래에서는 얕은 물소리가 들렸고 떨어진 돌이 오래된 수문을 건드렸다. 우리가 조금만 서둘렀다면 뒤에 오던 카엔까지 함께 빠졌을 것이다.
미라는 부서진 틈을 확인하고 줄을 벽 고리에 묶었다. 카엔은 돌 이음매를 살펴 이곳이 원래 폭이 넓은 복도였지만 수문 보수 과정에서 발판 일부가 없어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테온은 납작한 목재판으로 임시 발디딤을 만들어 먼저 건넜다. 나는 목재판이 사람 두 명의 무게를 견디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다음 사람에게 손짓했다. 지도에는 왼쪽 발판과 임시 목재의 위치를 따로 그렸다. 목재가 사라진 뒤에도 다리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 생겨선 안 되기 때문이다.
“옛 기록에선 양쪽이 모두 길이었을 텐데.” 테온이 말했다.
“그 기록이 틀린 건 아닐 겁니다. 단지 오늘 발밑을 책임져 주지는 못하죠.” 내가 답했다. 순간 아르켄의 옛 다리에서 물에 빠졌던 하브가 떠올랐다. 내일은 그에게 사과를 한 번 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가 그때 사과 대신 환불을 요구하겠지만.
통로 끝에는 옛 지도 제작자의 작업대가 있었다. 의자 일곱 개가 벽에 기대 있었고, 가운데에는 아무도 앉지 않는 작은 자리 하나가 비어 있었다. 벽에는 사람들이 길을 걷는 그림이 아니라, 길 앞에서 서로 질문하는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다른 사람이 본 것과 같습니까?', '돌아온 것을 누가 보았습니까?', '모른다면 무엇을 남깁니까?'
“첫 지도 제작자들이 쓰던 곳일까요?” 테온이 물었다.
헤론은 책상에 쌓인 먼지를 살폈다. “그럴 가능성은 있어. 하지만 원본과 연대를 맞추기 전에는 단정하지 말자.”
그때 작업대 아래에서 딸깍거리는 소리가 났다. 카엔이 판을 들어 올리자 작은 유리 원통이 굴러 나왔다. 원통의 밀랍에는 중앙대조실의 새 인장 위로 훨씬 오래된 삼각형 자국이 겹쳐 있었다. 누군가 최근에 옛 자료를 꺼냈다가 다시 봉인했다는 뜻이었다.
나는 원통을 바로 열지 않았다. 봉인의 모양을 탁본으로 남기고 모두에게 보여 주었다. 미라가 내 손목을 잡았다. “저기, 레이븐.”
그녀가 가리킨 벽에는 또 하나의 문이 있었다. 손잡이도 열쇠 구멍도 없었다. 대신 문 중앙에 내 작업대와 꼭 같은 크기의 지도판이 걸려 있었다. 내가 아르켄에서 쓴 첫 생존 지도의 윤곽이 새겨져 있었고, 그 아래에 지워진 문장이 남아 있었다.
'지도 제작자 한 명의 완성으로 모든 경계를 결정하지 말 것.'
문 안쪽에서 누군가 손으로 돌을 두드렸다. 세 번. 간격을 두고 일곱 번. 마지막에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미라가 단검을 빼 들었다. 헤론이 횃불을 가까이 했다. 나는 미리 결론을 적지 않은 채 물었다.
“안에 계신 분, 우리 목소리가 들립니까?”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낯선 목소리가 말했다.
“내 이름을 묻기 전에, 그 문을 누가 닫았는지부터 확인하시오.”
그 말이 끝나자 지도판의 빈 원 안에 금색 글씨가 떠올랐다.
[첫 경계실 — 사용자 인증 대기]
내 이름을 훔쳐 쓴 사람이 아직 한 명 더 있다는 뜻일까. 나는 손을 들었다가 내렸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서명이 아니라, 저 안에 진짜 누가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제191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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