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온을 데리고 남쪽 수로 밖으로 나오자 정박지의 세 문이 동시에 내려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종이 울리면 높은 곳으로 피하라고 배웠다. 그런데 이번에는 종소리가 실제 물높이와 맞지 않았다. 제삼 조류는 아직 밀려오지 않았는데 금색 판은 이미 ‘대피 완료’를 띄웠다. 창고 문마다 쇠막대가 내려왔고 낮은 부두에는 배를 묶은 사람들까지 남아 있었다.
“수위가 아니라 명령이 문을 닫고 있어!” 미라가 외쳤다.
아셀은 즉시 깃발을 세웠다. 붉은 깃발은 사람이 남았다는 뜻, 흰 깃발은 구조줄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모든은 치료소에서 두 아이에게 깃발을 전달하게 했고 유란은 자기 배를 낮은 부두에 붙였다. 아무도 장치가 보여 주는 ‘전원 귀환 완료’ 표시를 믿지 않았다.
카엔은 우리를 중계탑 아래의 수동 제어실로 안내했다. 그는 자기가 연결했던 자동 판정선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았다. 그러나 모든 문을 한꺼번에 열면 제삼 조류가 들어올 때 수문까지 열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내 생각도 같았다. 세상을 구하려고 문을 열었다가 물에 빠뜨리면 아주 짧은 전설이 될 것이다. 우리는 문마다 사람의 위치와 물높이를 확인해 따로 조작하기로 했다.
테온은 높은 돌계단의 안전을 확인하고 주민들을 안내했다. 왕자라고 해서 가장 앞에 설 필요는 없었다. 그는 아이와 노인의 걸음에 맞춰 속도를 늦추었다. 키오는 세나와 함께 실제로 대피한 사람의 이름을 적었다. 한 칸에는 ‘못 찾음’이라고 썼고, 누군가 그 칸을 지우려 하자 펜을 들고 막았다.
“못 찾았다는 걸 지우면 찾을 사람도 없어져요.” 키오가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잠깐 웃었다. 어린 전령이 이제 우리 중 가장 중요한 원칙을 한 문장으로 설명할 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아셀의 대피도에 각 부두를 실제로 연결한 길만 표시했다. 노인들이 쓰는 높은 계단, 선원들이 쓰는 좁은 판자길, 휠체어를 밀 수 있는 완만한 둑길은 서로 달랐다. 나는 그중 하나를 모두의 길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미라와 세온은 부두 두 번째 창고로 향했다. 두 사람은 오랜만에 나눈 대화를 끝내지도 못했다. 그런데 움직임은 놀랄 만큼 잘 맞았다. 미라가 밧줄을 던지면 세온이 상대방의 몸에 감기 전에 매듭을 잡았고, 세온이 수위 변화를 알리면 미라가 배를 돌렸다. 나는 그들이 같은 배에서 자란 형제자매라는 말을 이제야 이해했다.
두 번째 창고의 문은 이미 잠겨 있었다. 안에서 사람이 세 번 두드렸다. 미라가 대답하자 두 번 더 두드렸다. 그것은 미라와 동생만 아는 신호가 아니라 항해사들이 함께 쓰던 구조 신호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실제로 문 너머에 사람이 있었다. 하크가 위쪽 환기창을 확인하고 구조줄을 내렸다. 창고 안에서는 어부 셋이 나왔다. 마지막 사람은 한쪽 어깨를 다쳐 직접 배에 오를 수 없었다. 세온이 아래에서 몸을 받치고 미라가 위에서 줄을 당겼다.
사람을 모두 꺼낸 뒤에야 세온은 자기 다리를 붙들었다. 오래된 상처가 다시 벌어진 것이다. 미라는 잠깐 그를 꾸짖으려다가 입을 다물고 붕대를 감았다.
“누나, 난 돌아온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잔소리를 듣네.”
“그럼 다시 잃어버리기 싫은 사람 앞에서 무리하지 말았어야지.”
세온은 더는 농담하지 않았다. 그는 미라의 손 위에 자기 손을 잠깐 얹었다. 나는 그 장면을 보지 않은 척했다. 기록할 일과 기록하지 않을 일은 구별할 수 있다.
그때 제어실에서 헤론의 전령이 도착했다. 칠흑 천문정의 원본과 진실조류 정박지의 수위 기록을 대조하니 중앙대조실이 오늘을 제칠 낮으로 계산한 방법 자체가 틀렸다는 것이었다. 중앙의 시계는 실제 조류가 아니라 과거 관측거울에서 나온 영상의 순서를 읽고 있었다. 현재의 물높이와는 다른 기준이었다. 우리는 이것을 중앙에 알려야 했다. 하지만 중앙은 이미 관측이 끝났다고 선언한 상태였다.
아셀은 원본을 여러 곳으로 나누어 보냈다. 유란은 바깥 배에 한 부를 보관했고 모든은 치료소에 한 부를 남겼다. 테온은 왕실 문장 대신 자기 이름으로 ‘현장 목격’ 서명을 했다. 나는 원격 명령서에 남은 내 옛 지도실 명칭을 빨간 선으로 둘렀다. 이것이 나의 승인 서명이 아니라 남이 등록한 기관명이라는 증거를 함께 첨부했다.
카엔이 중앙대조실과 연결된 작은 관측창을 열었다. 창에는 중년의 남자가 나타났다. 회색 외투를 입었고 눈 아래에 깊은 주름이 있었다. 그의 뒤에는 거대한 금색 원판이 천천히 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중앙 등록 책임자 마슈엘이라고 소개했다.
“레이븐 지도사, 당신의 이름을 빌린 것은 인정하오.” 그가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잠깐 말을 잃었다. 오랜 시간 쫓아온 서류상의 적이 너무 쉽게 인정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어 말했다. “당신이 그린 첫 아르켄 생존 지도는 여러 사람의 기억을 연결했소. 그걸 중앙 등록에 쓰면 미확정 경로까지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
“보호하려고 제 이름으로 사람을 지웠습니까?”
“어떤 길은 확인할 시간이 없소. 마지막 별이 떨어질 때까지 모든 귀환을 대조하려면 한 기준으로 정리해야 하오. 조금 틀린 기록을 남겨 두는 것보다 세계 전체의 경계를 안정시키는 편이 낫지 않겠소?”
나는 그의 주장 속에 아브렌의 옛 생각이 남아 있다는 것을 들었다. 한 길로 사람을 보내야 다수를 구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마슈엘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사람을 실제로 보내기도 전에 돌아왔다고 쓰려고 했다.
“당신이 만든 기준에서 끝내 나오지 못하는 사람은요?” 내가 물었다.
“비극이겠지. 하지만 그 수가 적다면…”
“적다고 누가 정했습니까? 아직 확인하지 않았잖아요.”
마슈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는 중앙의 계산이 마지막 별의 낙성을 예측했다고 말했다. 그 예측표를 보여 달라고 하자 정오 이후 공개하겠다고 했다. 헤론이 증인으로 입회하겠다고 했지만 마슈엘은 거절했다. 그는 통신을 끊으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당신은 지도를 그린 자가 세계를 지운다는 문장을 알고 있겠지. 지도를 완성하지 못하면 그 예언이 이루어질 것이오.”
나는 식은땀이 났다. 저 문장은 내 지도에 처음 나타났던 경고였다. 마슈엘은 그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미래를 보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누군가 같은 장치의 문장을 가져다 보여 줬기 때문일까. 나는 어느 쪽도 확정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말 중 검증할 수 있는 부분부터 적었다. 그는 내 이름을 등록했다고 직접 인정했다. 지금도 미확정 경로를 지우려 했다. 이것만으로도 중단할 이유는 충분했다.
밖에서 진짜 종이 울렸다. 이번에는 모든이 깃발을 들고 직접 확인했다. 제삼 조류가 실제로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중앙의 정오가 오기 전에 남은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했다. 아셀은 지도를 펼치며 말했다. “이제 마지막 한 창고만 확인하면 됩니다.”
하지만 창고의 위치에는 두 개의 수로가 겹쳐 있었다. 하나는 과거의 항로, 다른 하나는 오늘 우리가 실제로 잰 물길이었다. 별가루를 얹자 두 길이 잠깐 같은 빛으로 반짝였다. 나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여기서 아무 선이나 선택하면 우리가 처음 아르켄을 구할 때 저질렀을 뻔한 실수를 되풀이할 수 있었다.
“확인한 길로만 갑니다.” 내가 말했다.
미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에게는 하나의 완벽한 지도가 없었다. 대신 서로 다른 장소에 서서 실제로 길을 확인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신호를 따라 배를 움직이면 아직 남아 있는 사람에게 도착할 수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마슈엘의 말과 달리 빈칸 때문에 세계가 지워지는 게 아니라, 빈칸을 보지 않으려 할 때 사람이 지워진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다.
제18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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