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론이 사흘째 같은 종이를 바라보자 나는 그의 앞에 따뜻한 차를 놓았다. 천문학자는 밤을 새워 별을 볼 때는 아무 불평이 없으면서 낮에 자기 스승의 이름을 보게 되면 차가 식는 줄도 몰랐다. 그 종이는 거울 관측실에서 나온 카드였다. 뒷면에 아주 작은 관측식이 적혀 있었다.
“스승 세르안의 손글씨입니까?” 내가 물었다.
“닮았어. 하지만 똑같다고 말하긴 어렵지.”
헤론은 처음으로 내 앞에서 자신이 저질렀던 일을 자세히 말했다. 왕실 천문국의 젊은 연구원이었을 때, 세르안은 관측값 네 개 가운데 셋만 남기라고 지시했다. 네 번째 관측은 다른 값들과 너무 달랐다. 보고서에 그대로 남기면 별락 대륙의 항로 승인이 지연될 수 있었다. 당시 헤론은 관측값을 별도의 장부에 옮겨 두고 공식 보고서에서 지웠다.
“나는 자료를 보존했다고 생각했지. 별도의 장부에 남겼으니까.”
“그 장부를 다른 사람이 볼 수 있었습니까?”
“아니.”
“그럼 기록을 남긴 게 아니라 숨겨 둔 셈이었네요.”
그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네가 하는 말이 맞아.”
나는 그를 탓하지 않았다. 헤론은 이미 아르켄에서부터 그 과오를 바로잡으려고 돌아다녔다. 다만 그의 스승이 왜 네 번째 값을 지우라고 했는지 알아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었다.
우리는 소란과 함께 관측실의 옛 저장고로 들어갔다. 파온은 입구에서 장치 도면을 설명했고 세프는 내부 기록을 정리했다. 그곳에는 부서진 수정판 수십 장과 관측 시간표가 보관돼 있었다. 거울이 비추던 세 장의 화면은 원래 서로 다른 시기의 관측을 비교하도록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저장고의 새 장치는 그것들을 하나의 현재 위치로 합쳐 읽도록 개조되어 있었다.
“이건 관측 보조 장치가 아니라 판정 장치군요.” 내가 말했다.
세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금색 측량판과 연결하면 자동으로 '대조 완료' 도장을 찍게 되어 있어요.”
“누가 명령했죠?” 테온이 물었다.
공식 수리 대장에는 경계작성회가 의뢰하고 백동상회가 부품을 제공했다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서명자의 이름은 약호로 처리되어 있었다. 두 조직이 관련됐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지만 실제로 마지막 개조를 승인한 사람은 아직 몰랐다.
헤론은 먼지 낀 수정판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것은 맑은 물을 담아 보관하던 관측 렌즈였다. 빛을 통과시키자 맨 아래쪽에 지워진 글자가 떠올랐다. ‘제사 관측 — 중단 지점, 현재 별 없음.’
“이게 네 번째 원본일까?” 헤론이 중얼거렸다.
“관측이 이곳에서 이루어졌다는 물증일 가능성은 있죠. 하지만 원본 관측값을 모두 담은 건 아닙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렌즈 옆에는 시각을 맞추는 작은 숫자 바퀴가 있었다. 우리가 천문정에서 본 네 눈금자와 같은 방식이었다. 셋은 방향을 표시하고 넷째는 관측자가 실제로 돌아와 대조했는지 확인하는 자리였다. 네 번째 자리가 비어 있다는 이유로 관측값 자체가 지워진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그 빈자리를 채우지도 않은 채 완료 도장을 찍으려 한 것이다.
저장고 한편에는 고장 난 작은 망원경도 있었다. 헤론이 먼지 낀 렌즈를 닦자 바깥의 절벽이 거꾸로 보였다. 나는 망원경의 받침 아래에서 작은 수리 표식을 발견했다. 수리자는 세르안이 아니라 그의 조수 엘잔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제사 관측값을 둘러싼 보고서에 등장했던 기록원의 이름이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누구 하나가 모든 원본을 독점하지 않았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수리와 관측은 다른 사람의 손을 거쳐 남아 있었다.
헤론은 엘잔이라는 이름을 듣고 한참 기억을 더듬었다. 엘잔은 값이 틀리면 고치는 대신 틀린 이유를 적으라고 가르치던 선배였다고 했다. 언젠가 왕실 천문국의 업무에서 사라졌지만 정확히 언제였는지 헤론도 몰랐다. “그 사람이 제사값을 보았다면 다른 장부가 있을 거야.” 그가 말했다. 나는 그 말을 추측으로 적었다. 망원경을 수리한 사람이라고 반드시 그 관측값을 보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렌즈 아래의 수리 날짜를 따로 탁본으로 남겼다. 세프는 오래된 수리 도구를 지키려고 별도 상자를 마련했다. 다른 사람이 이미 만들어 놓은 증거를 우리가 만지다가 훼손해 버리는 일도 피해야 했다. 장부와 렌즈, 관측 바늘은 각기 다른 입회인에게 보관을 맡겼다. 헤론은 혼자 모든 자료를 들고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가 곧 스스로 고개를 저었다. 과거에 장부를 혼자 숨긴 게 그의 가장 큰 실수였으니까.
점심 무렵 검은 복장을 한 관리인 두 명이 보관실에 들어왔다. 그들은 장부의 현장 반출을 금지한다며 수정판을 회수하려 했다. 테온이 앞을 막고 신분을 물었다. 관리인들은 경계작성회 임시 검인원이라고 답했지만 서류의 날짜는 내일이었다.
“오늘 아직 발급되지 않은 명령서입니다.” 테온이 말했다.
“예정된 문서입니다.” 관리인이 대답했다.
“예정된 문서로 오늘의 소유권을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나는 옆에서 감탄했다. 왕관을 가진 사람이 법보다 먼저 왕관을 쓰지 않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테온은 요즘 그 어려운 일을 자주 해냈다.
우리는 수정판을 숨기지 않았다. 대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이름과 관측 상태를 공개하고 각자 탁본을 만들었다. 소란이 장부 한 부를 맡고 세프가 측정값을 적었다. 검인원들에게도 같은 탁본을 주되 원본을 가져가려면 실제 책임자를 데려오라고 했다. 두 사람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나갔다.
저녁에 헤론은 자신이 예전에 감춰 둔 장부를 펼쳤다. 그 장부의 한 페이지에는 다른 자료와 다르게 세르안의 이름이 두 번 쓰여 있었다. 첫 번째는 ‘관측값 제출’, 두 번째는 ‘제사값 이견 보존 요청’이었다. 내가 눈썹을 올렸다.
“스승님이 값을 지우라고만 하신 게 아니었습니까?”
“나도 그렇게 기억했어.” 헤론이 말했다. “그런데 이건 스승이 직접 이견을 남기라고 한 요청서야. 공식 보고서에서는 반대 결정을 내렸을 수도 있어.”
누가 언제 무엇을 명령했는지 다시 나눠 봐야 했다. 헤론이 기억하는 지시와 실제 서류가 서로 다르다면, 그 사이에 다른 사람이 끼어들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다고 그를 단번에 무죄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 역시 공식 보고서에서 자료를 지운 장본인이었다.
해가 지자 거울 관측실의 마지막 렌즈에서 약한 푸른빛이 나왔다. 세프는 빛이 실제 하늘에서 들어왔다고 확인했다. 그러자 헤론이 오래된 관측 바늘을 올려 놓았다. 바늘은 금색 표에 없는 아주 작은 별을 가리켰다. 헤론이 지운 것으로 알려졌던 네 번째 별이었다.
“별은 그동안 저기 있었군요.” 테온이 말했다.
헤론은 오래도록 바늘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별이 없어진 게 아니었어. 내가 지도에서 없애 버린 거지.”
나는 그의 말에 답하지 않았다. 이미 우리 앞에 확인된 하늘이 있었고, 그 뒤로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책임이 남아 있었다. 별가루 지도에는 하늘의 좌표를 관측값으로 따로 적었다. 거기에 이르는 바닷길은 여전히 빈칸이었다.
그날 밤 헤론은 나에게 자신이 갖고 있던 옛 장부의 사본을 맡겼다. 첫 장에 쓴 문장은 짧았다. ‘확인된 별은 지워지지 않는다. 지워지는 것은 대개 사람이 읽는 표제다.’
내가 장부를 덮으려는데 그 아래에서 오래된 쪽지 한 장이 떨어졌다. 세르안의 서명처럼 보이는 글씨와 함께 정확한 장소가 적혀 있었다.
‘거울 관측실 뒤편, 돌문 너머. 최종 원판 사본 인수 — 한 명 귀환, 한 명 미확정.’
그 순간 미라가 낮게 말했다. “그 돌문, 아까 거울에서 봤던 곳이야.”
우리는 그곳에 실제로 갈 수 있는 길을 아직 몰랐다. 그러나 이번에는 목적지와 함께 인수 기록을 대조할 수 있는 장소를 얻었다. 내일은 돌문을 찾을 차례였다.
제176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