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켄 서부 옛 지도실이라는 글씨를 볼 때마다 나는 두 가지 감정을 느꼈다. 그곳을 다시 열고 싶다는 마음과 누군가 먼저 열어 내 돈으로 영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두 번째 감정이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 집을 잃은 지도사에게는 임대료보다 무서운 것도 드물었다.
페오가 가져온 명세서에는 발신처의 이름은 있었지만 주소와 수신 서명이 없었다. 오린이 보내 준 보관정 장부와 대조하니 같은 고유 번호가 열두 해 전 '자료 재발행'란에 있었다. 다만 그 장부에도 물건을 실제로 받은 사람의 서명은 없었다. 접수된 서류가 다시 접수된 사실만 기록돼 있었다. 누군가 종이를 세계 한 바퀴 돌아온 사람처럼 대접한 셈이었다.
우석은 인수실 바깥에 남은 옛 관측판을 복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수문 끝 소금길에 사는 판각사 주한이었다. 그는 오래전 빛과 조류를 따로 새기는 일을 했지만 금색 측량기가 들어온 뒤 일감이 끊겼다. 우리는 기담의 치료를 먼저 확인하고 낮은 조수에 맞춰 그곳으로 향했다. 하린은 스스로 길잡이가 되겠다고 했고 나는 그녀의 이름을 '실제 동행 확인'란에 적었다. 금색 서류에는 여전히 '출역 종료'로 찍혀 있었다.
주한의 집은 소금 바람에 지붕이 기울어져 있었다. 문 앞에는 똑같아 보이는 쇠판이 수십 장 걸려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모두 조금씩 달랐다. 그는 첫 인사 대신 내 손을 보았다. “지도사는 잉크가 손톱에 남죠. 그런데 저 가짜 검사원들은 잉크가 인장 가장자리에만 있어요.”
“제 손톱을 보고 신원을 확인하시면 곤란합니다.”
“그럼 장부를 가져오세요. 장부에 당신이 왔다고 써 있으면 정말 왔다고 믿어야 합니까?”
마침내 우리를 환영할 방법을 아는 사람을 만난 것 같았다. 그는 누리의 현장 증언과 우리가 찍은 돌기둥 탁본을 확인한 뒤 작업대에 네 칸짜리 판을 놓았다. 첫 칸은 관측한 빛의 방향, 둘째는 물높이, 셋째는 실재하는 사람이나 물건의 이동, 넷째는 그 셋을 서로 다른 방법으로 확인했는지 적는 칸이라고 했다. 판의 구조는 보관정에서 찾은 납판과 닮았다.
“네 번째는 완료 버튼이 아닙니다.” 주한이 말했다. “셋 중 하나라도 다르면 왜 다른지 남기라는 칸이지. 그런데 최근 복제품에서는 그 칸에 커다란 동그라미 하나를 찍도록 만들었어요. 다 확인했다고 우기는 표식 말입니다.”
그는 검은 밀랍 위에 오래된 원본의 홈을 찍고, 그 옆에 금색 복제품을 눌렀다. 옛 판에는 좁고 깊은 세로 홈이, 새 판에는 얕고 넓은 동그라미가 남았다. 그 차이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원판의 소재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주한은 물속 인수실에서 나온 판이 원본의 한 조각일 수도, 누군가 만든 정확한 교육용 복제품일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럼 원본은 어디 있습니까?” 테온이 물었다.
주한은 손등의 흉터를 긁었다. “옛날에는 두 벌을 만들었어요. 하나는 그려 놓은 길을 보관하는 판이고 하나는 사람이 그 길을 실제로 지난 기록을 보관하는 판. 둘을 합쳐 보관하면 가장 쉬운 방법은 하나를 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처음부터 나눴다고 들었습니다.”
헤론은 스승 세르안의 관측식과 맞물린 부분을 설명했다. 천문 기록만으로 땅의 경계가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 그런데 왕실은 빠른 구조와 간편한 통행을 이유로 관측값과 귀환값을 한 판에 압축하려 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일부 별의 불일치를 지웠다고 다시 인정했다. 주한은 그를 오래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때 뭘 지웠는지 아는 사람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게 다행이군요.”
헤론은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가 스스로를 용서받았다고 생각하지 않길 바랐다. 진실을 말한다고 지나간 일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뒤늦게라도 오류를 바로잡으려면 누군가 먼저 말을 해야 했다.
우리가 작업대의 판을 대조하던 중 주한의 조수가 뛰어왔다. 소금길에서 새 검사선이 도착했고, 주한이 만든 금형을 압수하겠다는 통지가 붙었다는 것이다. 압수 사유는 '복제 장치 제작에 의한 항로 신뢰 저해'였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실제로 가짜 안전 항로를 판매한 사람들보다 가짜를 구별해 내는 사람이 죄인이라니, 경제가 훌륭하게 돌아가는 모양이었다.
미라는 주한의 가게 문을 잠그지 않았다. 대신 검인관에게 직접 오라고 했다. 휘노가 선두에 서서 들어왔고 뒤에는 서류 가방을 든 기술자 셋이 있었다. 그는 금형을 보더니 놀라지 않았다. “원본과 다른 복제가 유통되면 사람들이 혼란스러워집니다.”
“그러면 가짜에 가짜라고 써 놓으면 되죠.” 내가 말했다. “왜 진짜를 구별하는 판까지 가져갑니까?”
“한 가지 표준이 필요합니다. 마지막 별이 떨어지는 날에는 사람들이 각자 다른 기록을 들고 도망갈 수 없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나는 아브렌을 떠올렸다. 아르켄의 동쪽 바다로 모든 주민을 보내려 했던 남자도 처음에는 같은 말을 했다. 단 한 가지 안전한 길. 그 길이 위험하다는 증거를 보기 전까지는 편리한 문장이었다.
하린이 복제판을 들고 앞으로 나왔다. “한 가지 표준이 필요하다면 제가 오늘 직접 지나온 길과 아저씨가 발급한 내일의 귀환증 중 어느 걸 남길 건가요?”
휘노는 대답하지 못했다. 주한은 그 침묵을 이용해 세 칸과 네 번째 칸의 차이를 설명했다. 기술자 가운데 젊은 여자가 몰래 자신의 장부를 펼쳤다. 그 안에는 지난달 교체된 관측봉의 부품 번호가 적혀 있었다. 금색 장치의 네 번째 눈금을 동그라미로 바꾸라는 지시를 받은 날짜와 장소도 있었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만든 판이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설치했어요. 수신인을 확인하는 입력칸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요.”
이름은 진하라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곧바로 잘못을 인정하라고 다그치지 않았다. 먼저 종이가 진짜인지, 본인 서명인지, 자신이 무엇을 직접 했는지 확인했다. 진하는 금속판의 뒤집힌 홈을 가리켰다. 그 홈은 아르켄 서부 옛 지도실의 재발행 번호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실제 판이 아르켄에서 왔다고 할 증거는 없었다. 번호만 가져와 찍을 수도 있었다.
휘노는 결국 금형 압수를 보류했다. 그는 우리에게 임시 조사를 허가하겠다며 조건을 달았다. 현장 관측값을 가져가되 대중에게 공개하기 전에 검사소의 결재를 받으라는 것이었다. 미라가 웃었다. “바닷물이 언제부터 결재를 받고 움직였는지 모르겠네.”
우리는 그 조건을 수락하지 않았다. 대신 지키고 있는 원본의 위치와 입회인을 모두 공개하는 방식으로 조사하겠다고 했다. 주한의 가게에 남은 판, 우석이 가진 옛 조수표, 누리와 하린의 현장 증언을 세 곳에 나눠 두었다. 누군가 하나를 가져가더라도 다른 두 개가 서로를 확인할 수 있도록.
밤에 진하는 내게 한 장의 부품 명세서를 건넸다. 거기에는 네 번째 칸을 지우는 장치가 실제로 무엇을 위해 사용될 예정인지 적혀 있었다.
'자오선 일괄 귀환 판정 — 시험 운용, 마지막 관측 신호 수신 직후.'
우리는 아직 마지막 별이 언제 떨어질지 몰랐다. 그러나 누군가 그날을 기다려 세계의 빈칸을 한꺼번에 지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별가루 지도 위에 작은 경고 표시를 남겼다. 사람의 길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속이기 위해 만든 장치의 위치였다.
제155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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