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침몰하기 전에 항로가 지워졌다는 말을 들으면 사람은 보통 두 가지를 묻는다.
누가 지웠는가. 그리고 왜 지웠는가.
나는 세 번째를 묻기로 했다.
“그 항로를 지웠다는 걸 어떻게 확인하셨습니까?”
얼굴에 흰 천을 두른 남자가 나를 노려보았다. 그는 자기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미라는 그를 ‘왼손의 세 줄’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정작 테온은 그 별명이 해적단 간부 같다고 좋아했다.
“검은 별이 배의 뒤쪽에 닿자 선미의 물결이 사라졌어. 뱃머리는 바다 위에 있었는데 선미는 어딘가 다른 밤에 걸렸지. 뒤에 오던 배는 우리를 보지 못했고.”
“직접 본 사실은 어디까지입니까?”
“선미가 사라지는 것까지.”
“누군가 지웠다는 건 추측이군요.”
남자는 모욕을 당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이상은 내가 살아남기 위해 만든 설명일 수도 있어.”
그는 이름을 여전히 말하지 않았다. 다만 별락 대륙의 가장자리에서 항로가 끊기는 현상을 여러 번 관찰했다고 했다. 세린은 같은 배에 탔지만 서로 다른 해를 기억하는 사람이었다. 두 사람에게 동일한 사고 기록을 강요할 수는 없었다.
어제의 파도는 서쪽으로 나아갔다. 별가루 지도에는 목적지가 나타나면서도 매일 조금씩 북쪽으로 비켜났다. 헤론은 천문도로 대륙 중심의 움직임을 계산하려 했지만, 별자리들은 움직이는 땅을 따라 옮겨 다니는 듯했다.
“이러다 대륙을 잡으려면 배가 달리기를 해야겠어요.” 내가 말했다.
“대륙과 달리기하는 사람은 처음 보네요.” 미라가 웃었다. “근데 배가 빠를 수는 있어요. 대륙은 돌아서 못 가니까.”
그녀의 말이 끝나기 전에 하늘이 희미하게 주황색으로 변했다. 평범한 석양이 아니었다. 태양은 뒤에 있는데 앞쪽 수평선에서 빛이 솟았다. 바람도 갑자기 멎었다. 키오가 난간을 붙잡고 멀리 손가락을 뻗었다.
“저기요. 섬이 걸어가요.”
모두가 볼 수 있었다. 검푸른 바다 위에서 회색 산등성이가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물살은 그 산을 밀어내지 않았다. 산이 먼저 움직이고 바다가 뒤따르는 것 같았다. 산 중턱에는 종탑이 있었고 봉우리 아래에는 숲의 그림자가 매달려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산의 그림자가 떼어져 다른 위치에 나타났다.
“별락 대륙의 바깥땅일 거야.” 헤론이 말했다. “다만 지형 전체가 움직이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시기의 해안이 교대하는 것처럼 보이네.”
미라는 더 가까이 가지 않았다. 대신 빈 나무통 두 개를 띄웠다. 하나는 산 그림자를 향해 흘렀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서 있는 위치를 기준으로 돌아왔다. 열다섯 분 뒤 두 통 사이의 거리가 갑자기 세 배로 벌어졌다.
“항로부터 확인해야겠어.”
“돌아가야 한다는 뜻입니까?”
“돌아갈 길을 만들고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죠.”
나는 지도에 수평선의 모양을 그렸다. 별가루 선이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했다. 마치 지도 한 장이 하루 동안 여러 번 접히는 듯했다. 미라의 항해일지, 오렌이 남긴 관측 기록, 우리가 직접 확인한 통의 이동을 놓고 서로 일치하는 구간만 골랐다. 안정된 선은 짧았다. 하지만 적어도 배 하나가 들어갈 폭은 나왔다.
대륙 가장자리의 첫 만은 해안이 아니라 넓은 소금 사막이었다. 바다와 소금 들판이 맞닿아 있고, 그 경계에는 오래된 수레바퀴 자국이 새겨져 있었다. 조수가 빠지자 수레바퀴 자국 사이에 발자국들이 드러났다. 누군가 저 길을 걸어 들어간 흔적이었다.
“사람이 있군요.”
“발자국이 꼭 살아 있는 사람을 증명하는 건 아니에요.” 미라가 말했다. “그래도 찾을 이유는 되죠.”
해안에는 검붉은 종이 깃발이 꽂혀 있었다. 바람이 없는데도 천이 펄럭였다. 깃발 아래에는 목제 표지판이 있었다.
‘여기서부터 길을 소유하려는 자는 이름을 남길 것.’
나는 표지판 앞에서 한참 머뭇거렸다. 지도 제작자로서 무단 점유를 반대하는 편이었지만 이름을 기록하는 일 자체를 싫어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누가 그 기록을 관리하느냐였다.
“이름을 남겨야 합니까?” 테온이 물었다.
“아직 모르겠습니다. 길을 산다는 말이 워낙 무서워서요.”
테온은 소금 사막 가장자리에 앉아 작은 주머니를 열었다. 왕관 조각이 그대로 있는지 확인하려는 줄 알았는데, 그는 조개껍데기 세 개를 꺼냈다. 거울만에서 주운 것이 아니었다. 아르켄 새 항구에서 아이가 선물했다는 껍데기였다.
“왜 이걸 가져왔습니까?”
“처음으로 내 나라가 아닌 곳에서 받은 선물이니까.”
나는 놀라서 그를 보았다. 테온은 어깨를 으쓱했다. “왕자는 선물을 많이 받지만 대부분 왕관 때문에 받지. 이건 내가 아이의 구두끈을 묶어 줘서 받았어.”
키오가 자기 구두를 내려다보았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소년은 허겁지겁 끈을 다시 묶었다. 테온이 도와주겠다고 하자 키오는 고개를 저었다. 스스로 하는 법을 배웠다며 웃었다.
그 짧은 장면을 보고 나는 처음으로 이 여정이 모두에게 같은 이유로 시작되지 않았다는 걸 실감했다. 미라는 잃어버린 동생의 행방을 찾고, 테온은 루메르의 길을 되짚고, 키오는 누구에게도 보여 주지 못한 편지를 품었다. 나는 아직 내가 왜 이런 지도를 갖게 되었는지도 몰랐다.
그때 깃발 뒤에서 작은 수레가 나타났다. 수레를 끄는 여자는 검은 천을 어깨에 둘렀고, 눈가에 소금 결정이 붙어 있었다. 그녀는 우리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곧장 계산서를 꺼냈다.
“상륙료. 항해자 넷과 구조자 둘, 우편배달 한 명. 모두 일곱.”
“우편배달은 왜 따로 셉니까?” 키오가 발끈했다.
“당신 우편통의 인장이 이 땅에서 만들어졌으니까.”
나는 뒤를 보았다. 키오는 얼어붙어 있었다. 수레를 끄는 여자는 자신을 시엘이라고 소개했다. 별락 대륙의 해안 측량 길드에서 일하다 그만둔 사람이라고 했다.
“길드가 길을 소유합니까?” 내가 물었다.
“아뇨. 길드가 길을 소유한다고 주장하죠. 그 차이는 큽니다. 특히 돈을 받을 때.”
그녀는 우리에게 마른 물 한 잔을 내밀었다. 마른 물이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컵 안에는 투명한 소금 조각이 담겨 있었다. 혀끝에 대자 바닷물 냄새가 났고, 순식간에 입이 말랐다.
“장난입니까?”
“환영식이에요. 별락 대륙에선 물도 전날의 상태로 팔아요.”
나는 이곳에 오래 있으면 분명 파산하겠다고 생각했다.
시엘은 대륙이 매일 한 번씩 경계를 바꾸지만, 중심이 되는 세 관측 기둥은 일정한 간격으로 모습을 드러낸다고 했다. 그 기둥에는 붙박이 별의 숫자 3, 7, 0이 새겨져 있었다. 우리는 미라의 은제 고리를 꺼내 보였다.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그 고리를 어디서 구했죠?”
“가족에게서 받았어요.” 미라가 답했다.
“그럼 당신 가족 중 누군가는 예전에 이 해안까지 왔다는 뜻이네요. 저 숫자는 여기서밖에 완성되지 않거든요.”
나는 헤론을 보았다. 그도 정확한 설명을 아는 표정은 아니었다. 미라는 손목 고리를 다시 감쌌다.
시엘이 멀리 움직이는 산을 가리켰다. “저 산을 따라가면 측량도시 엘루안이 나옵니다. 문제는 같은 도시에 들어가도 같은 날의 도시를 만난다는 보장이 없다는 거예요.”
그녀는 손바닥에 작은 종을 올려놓았다. 오래된 항해종이었다. 세린이 그 종을 보자 입술을 벌렸다.
“저 종…… 루메르 길드에서 쓰던 거예요.”
시엘이 고개를 돌렸다. “루메르가 사라진 건 오래전 일이죠. 하지만 이 대륙에서는 그 배가 아직 출항 중이에요.”
그 말과 함께 해안의 소금 들판이 낮은 소리를 냈다. 멀리 있던 산의 그림자가 우리 앞으로 한 뼘 다가왔다. 해안이 또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지도를 펼치고 시엘에게 말했다.
“그럼 도시를 찾기 전에 우리가 돌아갈 곳부터 표시해야겠군요. 이번에는 이름을 지우지 않는 지도여야 합니다.”
제15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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