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은 오래된 금속이라서 별일을 다 겪는다. 나라를 다스리는 머리 위에도 놓이고, 누군가의 서랍에서 영수증을 누르는 추로 쓰이기도 한다. 테온이 자신의 부서진 왕관 조각을 책상에 올렸을 때, 역광 군도의 계약자들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문진을 만난 표정이었다.
우리는 보관정의 비용과 원본 관리권을 분리하기 위해 임시 대조회 자리를 만들었다. 담휘, 연해, 오린, 다울, 세아가 입회했고 비엔도 참석했다. 그는 금색 원반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원반에는 루메르의 옛 왕실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이 문장 덕분에 우리 회사는 최초 측량 항로의 관리권을 갖게 됐소.” 비엔이 말했다.
테온이 조용히 원반을 돌려 보았다. “문장은 우리 왕실 것과 닮았소. 하지만 원래 왕실에서 쓰던 인장에는 오른쪽 가장자리에 작은 별 일곱 개가 있었소.”
비엔은 불쾌한 듯 입술을 굳혔다. “옛 문장이니 변형됐겠지.”
“그럴 수 있소. 그러나 변형됐다는 설명이 곧 권한의 증거는 아니오.”
나는 테온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보았다. 루메르는 그가 떠난 뒤 사라진 왕국이었다. 그곳을 되찾을 수 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는 잠시 자신이 어린 왕자로 돌아가는 듯했다. 오늘도 비엔은 교묘하게 그 마음을 파고들었다.
“왕자께서 원본을 승인해 주시면 옛 왕국의 귀환 절차도 앞당길 수 있습니다. 대조 완료 도장 하나면 섬들이 다시 왕실 구역으로 묶입니다.”
“섬의 주민은요?” 테온이 물었다.
“승인 뒤에 통보하면 됩니다.”
“그럼 승인하지 않겠소.”
테온은 단호했다. 그러나 목소리는 갈라졌다. 내가 그를 부축해야 할까 망설일 정도였다. 미라는 아무 말 없이 그 옆에 섰다. 그는 자기 왕국을 사랑하면서도 오늘의 사람들을 왕실의 소유물로 만들지 않으려 했다. 왕관의 무게를 아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일일지도 몰랐다.
비엔은 대조회를 끝내려 했다. 그때 연해가 오래된 운송 대장을 펼쳤다. 왕실 문장과 같은 인장으로 찍힌 첫 계약서의 접수 날짜가 루메르가 사라진 뒤 십 년 넘게 지난 시점이었다. 늦게 발행된 계약 자체가 불법이라는 증거는 아니지만, 그것을 루메르 왕실의 직접 명령이라고 주장할 근거는 약해졌다.
“발행인이 누구죠?” 내가 물었다.
“대리 보존인.” 비엔이 답했다.
“이름은요?”
“계약 당사자만 알 수 있소.”
테온이 웃었다. “내 이름으로 내 백성의 길을 팔았다면서 정작 내게는 계약 당사자가 아니라는군.”
그가 웃는 동안 나는 오래된 관측판을 살폈다. 원판에 남아 있는 결손과 비엔의 원반 결손은 서로 뒤집혀 있었다. 원반은 복제판으로 보였지만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금속의 마모를 탁본으로 떠 왔다. 도장을 구분하는 작은 흠집이 사람의 운명을 구분할 때가 있다는 것이 씁쓸했다.
대조회 한쪽에서 세아가 손을 들었다. 어른들이 왕실 인장과 오래된 계약만 이야기하느라, 섬에서 실제로 배를 띄우는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해도가 하나도 없다는 지적이었다. 그녀는 각 선착장에서 수심을 재는 시간을 적은 표를 펼쳤다. 그 표는 섬의 어른들이 직접 바다에 내려가며 고쳐 쓴 것이었다.
“저 표는 누가 승인했지?” 비엔이 물었다.
“물속에 들어간 사람들이요.” 세아가 답했다. “당신 회사가 안전하다고 적은 날에도 우리가 납추로 세 번 다시 재서 다르게 나왔어요.”
비엔은 바로 대꾸하지 못했다. 테온은 그 표와 왕실 인장을 나란히 보았다. 자신이 지키고 싶던 루메르의 항로도, 처음에는 왕실 서명이 아니라 누군가 바다를 건너며 만들었을 것이다. 왕관보다 먼저 있었던 길을 소유하려 드는 일이 얼마나 이상한지 그는 그제야 더 분명히 이해한 듯했다.
바로 그때 부두 아래에서 폭발음 같은 소리가 났다. 나무가 터지는 소리가 잇따랐고 누군가 다울의 이름을 불렀다. 보관정의 부력통 하나가 수압을 견디지 못해 찢어졌다. 선체가 왼쪽으로 기울자 열람실의 서류함이 바닥으로 밀렸다. 오린이 기록실 문을 닫으려고 뛰었다.
“서류는 나중에!” 미라가 소리쳤다. “사람부터 세어!”
우리는 각 갑판의 근무표를 확인했다. 보관정에는 상주 직원 여섯, 대조회 참석자 일곱, 수리공 둘이 있었다. 그중 한 명인 수리공 마존이 보이지 않았다. 금색 판에는 이미 '전원 귀환'이라고 떠 있었지만 아무도 그 표시를 믿지 않았다. 다울은 마존이 가장 아래쪽 부력통을 보러 갔다고 말했다.
배가 기울자 수문 쪽 쇠사슬까지 팽팽해졌다. 미라는 짧은 보트로 반대쪽에서 줄을 걸어 배가 더 돌아가지 않도록 했다. 테온과 나는 갑판의 난간을 잡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발밑이 미끄러워 두 번이나 멈춰야 했다. 헤론은 바깥에서 수면의 높이를 읽고 언제까지 아래층에 머물 수 있는지 알려 주었다.
마존은 찢어진 부력통 옆에서 팔이 끼인 채 있었다. 물은 이미 무릎까지 차올랐다. 그는 우리를 보자 자기 먼저 나가게 하지 말고 옆의 밸브를 잠가 달라고 했다. 밸브를 잠그지 않으면 보관정의 다른 방까지 물이 찰 수 있었다. 하지만 그를 빼내는 데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었다.
“밸브의 손잡이가 어디죠?” 내가 물었다.
마존은 턱으로 벽을 가리켰다. 테온이 팔을 뻗었지만 손잡이가 닿지 않았다. 나는 계단에서 가져온 긴 지렛대로 손잡이를 끌어당겼다. 움직이지 않자 테온과 함께 힘을 줬다. 손잡이가 돌아가는 동안 마존은 부서진 판자 끝을 이빨을 악물고 견뎠다.
물길이 조금 줄자 미라가 보낸 밧줄이 아래로 내려왔다. 다울이 나무를 들어 올리고 테온이 마존의 팔을 꺼냈다. 우리는 마존을 끌어올리고 부력통의 입구를 임시 판자로 막았다. 작업을 마치고 갑판으로 돌아오니 헤론이 직접 확인한 인원 명부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까 없던 마존의 이름 옆에 실제 구조 시각이 적혀 있었다.
그날 밤 보관정은 간신히 수평을 되찾았다. 비엔도 물이 찬 복도를 닦았다. 그의 원반은 구석에서 먼지와 함께 젖어 있었다. 나는 그가 악당인지 단정할 수 없었지만, 비엔이 서류보다 먼저 걸레를 잡는 모습을 처음 봤다.
“원본을 가져가면 배가 안전해질 줄 알았소.” 그가 말했다.
“원본에는 부력을 만드는 힘이 없어요.” 나는 대답했다. “하지만 누가 어디에 있었는지 확인하는 데는 힘이 있죠.”
테온은 왕관 조각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오늘 마존이 살아 돌아왔으니, 그 사람의 이름은 그 사람이 말한 대로 적읍시다.”
오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관정의 금색 장치에는 여전히 이전의 완료 기록이 남아 있었다. 이제 그 옆에 실제로 구조한 사람들의 서명과 시간이 붙었다. 원래의 거짓 표시를 지우는 대신 무엇이 잘못됐는지 확인할 수 있는 근거가 생겼다.
밤이 깊었을 때 비엔은 내게 흠집 난 원반의 보관처를 알려 주었다. “원판의 탁본은 원래 육지 계약소에 있었소. 하지만 지난달 다른 곳으로 보냈다는 연락을 받았지. 이름은… 아르켄 서부 옛 지도실이었소.”
나는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내 가게의 이름을 누가 쓰고 있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랬다. 그렇다고 지금 내 가게에 그 판이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아르켄이 이동한 뒤 옛 지도실의 위치조차 달라졌으니까.
“날짜가 적힌 원본을 보여 주세요.”
“찾아보겠소.”
“그 말, 서명해 주시겠습니까?”
비엔은 한숨을 쉬더니 직접 이름을 적었다. 나는 그 서명 아래 '원판 소재 미확인'이라고 썼다. 왕관보다 그 한 줄이 오늘은 더 값진 증거였다.
제148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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