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보관정은 제자리에서 사라져 있었다. 나는 실망하지 않았다. 적어도 세아와 담휘는 떠다니는 배라고 미리 알려 줬으니까. 그래도 기록을 보관한다는 장소가 기록을 기다리는 사람보다 먼저 떠나는 건 썩 예의 바른 일이 아니었다.
“보관정이 도망갔나요?” 키오가 물었다.
“배에 다리가 달렸다면 그런 표현도 가능하겠지.”
담휘는 제이 수문 앞의 빨간 부표 세 개를 가리켰다. “저 중 가운데 것이 움직인 자국을 따라가렴. 하지만 어제의 물길과 오늘의 물길은 다를 수 있어.”
우리는 미라의 배를 곧장 몰지 않았다. 세아가 작은 보트로 물살을 확인하겠다고 했지만 담휘가 고개를 저었다. 수문이 다시 움직이는 시간에는 경험 많은 사공도 위험했다. 미라는 오늘도 확인한 길까지만 들어가자고 했고, 대신 물가에 남겨진 우편 창고를 조사했다.
창고 문은 칠이 벗겨졌지만 경첩은 최근 기름칠을 한 듯 매끄러웠다. 벽에는 역광 우체국이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접수대 뒤의 철제 선반에는 일곱 장의 발송 영수증이 끼워져 있었다. 이상한 점은 봉투마다 '반송 완료'라는 도장이 찍혀 있는데 실제 발송인 칸은 비어 있다는 것이었다.
“우편을 주고받는 건 사람인데 사람을 빼놨네요.” 나는 말했다.
창고지기 연해가 대답했다. “보관정은 기록만 받아. 그걸 사람의 귀항으로 적지 말라고 옛날부터 경고했지. 요즘 금색 계약자들이 와서는 반송됐다는 말만 보고 우편의 주인도 돌아왔다고 주장해.”
연해는 눈을 가늘게 뜨고 우리를 보았다. “그렇다고 편지를 내주진 않을 거야. 열람 권리는 발송인, 수신인, 또는 원본 보존인에게 있어. 너희가 왕자라도 마찬가지야.”
테온이 놀랄 만큼 기쁜 얼굴을 했다. “왕자를 예외로 두지 않는 규정이라니, 오랜만에 제대로 된 왕실보다 낫군요.”
그는 금색 문장 대신 직접 쓴 요청서를 내밀었다. 보관정에 옮겨진 문서의 인수 시각과 봉인 상태를 확인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가 루메르의 권한으로 문을 열지 않겠다고 했던 일을 기억했다. 사소한 버릇처럼 보이지만 누군가의 삶을 다른 사람의 직인으로 덮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연해는 원본 일곱 통을 공개하지 않았다. 대신 봉투의 무게, 발송 날짜, 보관함 번호를 가린 목록을 보여 주었다. 네 통은 같은 날 접수됐고 세 통은 다른 날이었다. 네 통에는 ‘수신인 현재 위치 미확인’이라고 적혀 있었고 두 통에는 ‘발송인 전달 방법 미기재’, 한 통에는 ‘봉인 훼손 조사 중’이라는 표식이 있었다.
“이름을 지우면 문제가 해결됩니까?” 키오가 물었다.
“아니. 이름을 함부로 공개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지.” 연해가 말했다. “사람을 찾는 일과 사람을 거래하는 일은 아주 비슷한 문구를 쓰거든.”
미라는 빨간 실이 감긴 닻 장식을 내밀었다. “이 우편 창고에서 발견했습니다. 어느 사서함에서 떨어졌는지만 확인해 주실 수 있어요?”
연해는 장식을 만지지 않고 종이 위에 올려 달라고 했다. 장식 끝이 오른쪽으로 세 번 감겨 있었고 결절 하나가 가운데에 있었다. 그녀는 서랍에서 오래된 우편 표본을 찾아 비교했다. 표본은 네 가지 종류였다. 항로 안내용, 조난 신호용, 개인 편지 묶음용, 그리고 기록 상자 봉인용.
“이건 기록 상자 봉인용에 가깝네.” 연해가 말했다.
미라의 눈에 잠깐 실망이 스쳤다. 동생의 개인 매듭일 수도 있다는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손을 거두지 않았다.
“그럼 이 장식을 사용한 기록 상자 번호가 있을까요?”
연해는 서랍 바닥의 명부를 다시 뒤졌다. 번호는 제이 보관정의 세 번째 갑판 아래에 있는 0번 함이었다. 이상하게도 수신처 칸에는 섬 이름이 아니라 사람 세 명의 서명란이 그려져 있었다. 한 칸에는 보관인, 한 칸에는 입회인, 마지막 한 칸에는 실제 전달받은 사람. 세 번째 칸은 비어 있었다.
헤론은 조용히 말했다. “3·7·0과 닮았지만, 이 함의 규정이 곧 모든 관측 장치의 규칙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어.”
“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부터 실제로 확인해야겠죠.”
그때 우체국 앞에서 짧은 비명이 들렸다. 창고 벽에 박힌 옛 측량용 쇠줄이 갑자기 팽팽해지며 나무판을 뜯어냈다. 바닷물이 빠지자 수문에 걸린 부표가 줄을 끌고 간 것이었다. 입구에 있던 어린 배달부가 나무판 아래로 쓰러졌다. 테온이 몸으로 문을 받쳤고 미라가 끊어진 판을 걷어 냈다.
나는 바닥으로 기어들어가 아이의 손을 잡았다. 아이는 발목이 눌려 움직이지 못했다. 하크가 쐐기를 끼우고 나서야 판의 무게를 덜 수 있었다. 세아는 옆에 쌓인 마른 자루를 가져와 발목을 받쳤다. 우리는 아이를 밖으로 옮긴 뒤 나무판과 줄을 고정했다. 편지보다 먼저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말은 쉬웠다. 하지만 그 말대로 행동하려면 종이 더미를 잠깐 잊는 용기가 필요했다.
아이 이름은 라니였다. 라니는 연해가 건넨 물을 마신 뒤 울음을 참으며 말했다. “새벽에 어떤 사람이 기록 상자를 가져가려 했어요. 오늘 정오 전에 보관정이 수문 밖으로 나가면 원본도 모두 떠난다고요.”
“그 사람 얼굴을 봤니?” 나는 물었다.
“후드를 썼어요. 대신 목소리는 기억해요. 종이 한 장에 '완료'라고 쓰면 다 해결된다고 했어요.”
나는 그 말을 라니의 진술이라고 분명히 적었다. 누군가의 얼굴을 모르면서 특정 인물의 죄를 확정하면 안 됐다. 연해는 지키려던 서랍 안쪽에서 낡은 고지 한 장을 꺼냈다. 그 종이에는 열한 번 고쳐 쓴 발송 규칙과 함께 작은 문장이 있었다.
'우편물이 도착한 곳을 기록할 것. 우편물의 주인이 돌아왔다고 적지 말 것.'
라니는 그 문장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제가 읽어야 했는데요.”
“읽었어도 판자가 떨어지는 건 막기 어려웠을 거야.” 나는 말했다. “다만 앞으로 저 줄은 우리가 꼭 고쳐야겠지.”
우리는 연해의 허락을 받아 우체국의 출입 가능한 복도를 실측했다. 우편 자루들이 쌓인 곳은 물이 잘 빠지지 않았다. 편지를 보존하는 일이 사람의 발목을 위협하지 않게 하려고 나는 통행 금지 구역을 적었다. 별가루 지도에는 우리가 실제로 걸은 계단과 대피로만 남았다.
정오가 가까워지자 수문 너머에서 낡은 기적 소리가 울렸다. 이번에는 그림자의 소리가 아니었다. 담휘가 망원경을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해수면 너머로 보관정의 진짜 깃대가 나타났다. 꼭대기에는 검은 깃발이 아니라 흰 천이 거꾸로 걸려 있었다.
“저건 기록 반출 금지 신호야.” 연해가 말했다. “하지만 바깥 사람들이 저걸 보고 멈출지는 모르겠네.”
미라가 배로 달려갔다. 나는 닻 장식을 다시 천에 싸서 건넸다. 누군가가 미라의 가족 이야기를 알고 그 물건을 놓았는지도 모르고, 그저 오래된 보관함 부품일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우리가 확인해야 할 것은 물건의 발송 경로였다.
세아는 바닷바람에 모자를 누르며 물었다. “다음엔 저 배에 올라갈 거예요?”
“가능한 길이 있으면.”
“아직 안 믿는군요.”
“널 믿지 않는 게 아니라 바다를 과하게 믿지 않는 거야.”
세아는 그 말을 듣고 작은 조수표를 나에게 건넸다. 표의 마지막 칸에는 정오 이후 처음 드러나는 석조 발판이 표시돼 있었다. 다만 그 발판 끝에서 보관정까지는 아무 선도 없었다.
나는 그 빈칸을 보자 안심했다. 적어도 세아는 자신이 보지 않은 길을 팔지 않았다.
제143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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