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문이 보여 준 네 개의 거울은 같은 바다를 비추지 않았다. 첫 번째에는 지금의 검은 해협이 있었다. 둘째에는 한낮처럼 밝은 물결이 보였고, 셋째에는 해가 뜨지 않은 항구의 돛대가 흔들렸다. 넷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빈 거울에 서 있는 내 얼굴만 조금 늦게 움직였다.
“제가 늦게 생겼다는 뜻인가요?” 나는 물었다.
미라가 눈썹을 올렸다. “그건 원래 그랬어.”
나는 더 이상 농담하지 않기로 했다. 거울 하나만으로도 기분이 나쁜데 넷이나 있으면 맞설 말이 부족했다.
로문은 우리가 본 장면이 과거의 실제 사건인지, 보존된 그림의 재생인지 구분하려면 시험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영대는 ‘사영’, 즉 그림자를 재는 곳이었다. 별이 떨어지기 전의 그림자와 떨어진 뒤의 그림자가 다를 수 있다는 가설로 세워졌다고 했다. 문제는 가설이 어느 순간 정답처럼 쓰이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사영대를 지키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합니까?” 헤론이 물었다.
“그림자의 모양을 기록하지. 처음에는 서로 다른 빛의 출처를 따로 적었어. 그런데 금색 관측판을 단 뒤로는 한 빛만을 기준으로 삼으라고 지시했네.”
“누가요?”
“서류에는 경계작성회의 승인이라고 적혀 있어. 하지만 그 기구를 누가 조립했는지는 나도 몰라.”
우리는 둘째 거울 앞에 똑같은 촛불 두 개를 놓았다. 하나는 로문이 켰고 하나는 내가 켰다. 두 불꽃의 위치를 반대로 바꿔도 벽의 검은 그림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거울이 지금의 불빛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확인됐다. 그러나 과거의 어느 시각을 재생하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헤론이 거울 테두리의 숫자를 읽었다. `3·7·0`. 그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내가 고원에서 발견한 돌조각의 숫자와 같았다. 미라가 은반지를 꺼내 나란히 놓았다. 문양의 길이가 다르고 숫자 사이의 간격도 달랐다. 같은 규칙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은 있었지만, 한 사람이 새겼다고 말할 근거는 없었다.
“세 관측점, 일곱 날, 영의 자리.” 테온이 말했다.
“그렇게 읽을 수도 있겠죠.” 내가 답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네 거울이 있어요.”
헤론은 네 번째 거울을 가리켰다. 다른 거울과 달리 거기에는 이름판이 없었다. 테두리 뒤에는 옛 수리공이 긁어 넣은 글자가 있었다. ‘관측되지 않은 것을 대신 채우지 말 것.’ 그 문장은 거울을 비워 두라는 뜻일 수도 있고, 아직 누군가의 관측이 도착하지 않았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헤론은 거울과 등잔 사이에 묽은 먹물을 담은 유리병을 세웠다. 현재의 광원이 반사된다면 그림자의 윤곽이 조금은 흐려져야 했다. 그러나 벽의 검은 선은 요지부동이었다. 나는 다음으로 거울 옆에 빈 종이를 놓고 그 위에 실제 촛불의 그림자를 표시했다. 두 그림자는 서로 교차했으며 하나는 내가 종이를 움직일 때마다 바뀌고 다른 하나는 단 한 치도 달라지지 않았다.
“마술사가 이걸 보여 주면 박수를 받을 텐데.” 내가 말했다.
“마술사는 관객을 안전한 곳에 앉혀 두지.” 로문이 답했다. “여기서는 저 선을 따라 배가 가니까 문제야.”
그의 말이 맞았다. 우리는 종이에 두 선을 다른 잉크로 그렸다. 검은 선이 실제 그림자인지 저장된 영상인지 끝내 확정하지 못했지만, 현재의 촛불이 그 선을 만들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모두 확인했다. 헤론은 그 점을 기록에 굵게 표시했다.
그날 오후 사엘은 우리에게 관측실의 공개 시험을 제안했다. 오래된 그림자가 실제로 지금의 항로를 가리키는지 확인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선뜻 동의하지 않았다. 관측 영상이 보인다고 바다 위에서 바로 따라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시험을 두 단계로 나누었다. 먼저 탑 내부에서 빛의 변화를 측정하고, 다음에 바깥에서 실제로 닻을 내린 곳과 대조하기로 했다.
우리가 거울을 살피는 동안 누안이 급히 달려왔다. 사영대 아래 부두에서 수리선을 타고 온 선원들이 항로가 바뀌었다고 소리친다는 것이었다. 사엘이 창밖을 바라보자 금색 표지판 위에 새로운 지시가 떠 있었다. ‘북서 전 구간 통행 가능.’ 바로 전날 미라가 침몰 위험을 확인한 여울까지 포함돼 있었다.
“누가 이걸 갱신했죠?” 내가 물었다.
“중앙 관측판에서 자동으로…” 사엘이 말했다.
“자동이라는 말 뒤에는 누가 있습니까?”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내 뒤에서 미라가 이미 구명줄을 들고 있었다. 그녀는 구조선이 들어올 곳을 보더니 나를 돌아봤다.
“넌 여기서 원본을 지켜. 난 바다로 내려가.”
나는 조금 서운했지만 이해했다. 내가 바다 위에서 할 수 있는 일보다 기록실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더 많았다. 테온과 하크는 미라를 따라 내려갔고, 헤론과 나는 거울의 관측 기록을 살폈다. 키오는 누안과 함께 사영대의 비상 식량을 꺼냈다. 적어도 그는 필요한 일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로문은 오래된 원판을 보여 주었다. 거기에는 두 줄의 시각표가 있었다. ‘빛을 본 시각’과 ‘그림자 도착 시각’. 금색 개조판은 두 줄을 하나로 묶어 놓았다. 두 줄 사이의 차이는 날마다 달랐고 어떤 날에는 그림자가 먼저 기록된 것으로 적혀 있었다.
“어떻게 그림자가 빛보다 먼저 올 수 있죠?” 내가 물었다.
“기록이 다른 시기를 가리킨다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네. 하지만 먼저 기록됐다는 사실 하나로 시간의 방향을 말할 수는 없지.” 헤론이 대답했다.
우리는 개조판 뒤에서 한 장의 도면을 찾았다. 도면에는 현재의 항로가 아닌 오래전에 닫힌 항로가 그려져 있었다. 누군가 그것을 오늘의 안전 항로 목록에 붙여 놓았다. 오래된 그늘이 오늘의 길을 대신하는 구조였다.
바깥에서 세 번의 섬광 신호가 왔다. 미라의 구조선이 얕은 여울에 걸린 수리선 선원을 발견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수신 확인은 없었다. 나는 두 번의 답신을 보낼 수 없었다. 우리는 직접 현장에 없었기 때문이다. 누안이 망원경을 들었고 로문이 거리와 풍향을 계산했다. 그때 두 번째 섬광이 올라왔다. 이번에는 하크가 두 팔을 크게 흔들고 있었다. 선원 둘이 구조되었다는 신호였다.
내가 안도의 한숨을 쉬자 헤론이 거울 하나를 덮었다. 그림자의 방향이 순간 바뀌었다. 그런데 바다 위의 구조선은 그 움직임을 따라가지 않았다. 우리는 거울에 나타난 선이 실제 항로가 아니라, 이미 기록된 항로에 덧씌운 투영이라는 단서를 얻었다.
해질녘 미라가 돌아왔다. 그녀는 구조한 선원의 이름과 상태를 일일이 확인한 뒤 침수된 수리선을 해상 위험물로 표시했다. 누안은 누락된 사람 한 명이 더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구조선이 처음 왔을 때 세 개의 손이 난간을 붙잡고 있는 것을 봤다고 했다. 지금 구조된 사람은 둘이었다. 한 손이 두 사람 중 누구의 것이었는지, 아니면 제삼자가 있었는지는 불명확했다.
우리는 즉시 수색을 이어가되 ‘실종 한 명 확정’이라고 적지 않았다. 가능한 실종자라는 표기를 남기고 수색 범위를 그렸다. 수리선의 명부에는 세 사람이 탔다는 기록이 있었다. 그 명부 역시 확인해야 했다.
밤늦게 네 번째 거울에 처음으로 희미한 선이 생겼다. 그것은 배의 항적이 아니었다. 작은 사람이 물가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모양이었다. 옆에 그림자 하나가 더 있었다. 로문이 떨리는 손으로 벽의 작은 글자를 가리켰다.
‘마지막 별이 떨어지기 전, 그림자가 먼저 지나간다.’
나는 그 장면의 실재 여부를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림자를 오늘의 통행 허가로 바꾸는 순간, 누군가는 보지 못한 길에 사람을 보내고 있었다.
제136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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