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등대의 등불은 오전에만 켜졌다. 낮에는 불빛이 보이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그것은 일반적인 등대의 이야기였다. 오렌의 기름병에 심지를 담그자 하늘 아래에 파랗고 곧은 빛 하나가 솟았다. 빛은 수평선에서 멈추지 않고 물 밑으로 파고들었다.
“이쪽으로 가면 됩니다.” 오렌이 말했다.
“당신이 방금 구출된 사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나는 난간을 잡았다. “길잡이로서 실적이 조금 나쁜데요.”
“맞아. 그러니 내 말만 믿지는 마.”
그 대답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함부로 확신하는 길잡이보다 자기가 실수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사람을 믿는 편이었다. 미라가 측연줄을 물속에 내렸다. 헤론이 시간을 읽고, 나는 두 기록이 가리키는 경계선을 그렸다. 테온은 배의 양쪽 돛을 번갈아 살폈다. 왕자는 이름을 걸고 하는 일이면 무엇이든 배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왼쪽 삼십 보, 수심 여섯 길.” 미라가 말했다.
“오른쪽은요?”
“밑바닥이 없어요. 그러니까 왼쪽으로.”
키오는 갑판에 앉아 우편통을 꼭 쥐고 있었다. 어젯밤에는 부표를 옮기는 데 손을 보탰지만 오늘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등불이 켜질 때마다 소년의 주머니에서 금속이 딸깍거렸다.
배는 두 조류 사이로 들어섰다. 양옆의 파도가 높이 솟았고 그 가운데만 길처럼 평평했다. 바닷물 속에는 해초 대신 오래된 표지판이 떠다녔다. '빵집', '교환소', '남쪽 부두'. 표지판의 글씨는 멀쩡했는데 표지판이 가리키는 곳에는 모래바닥도 지붕도 없었다.
“바닷속에 마을이 있던 건가요?”
오렌은 등불을 내려다봤다. “등대 아래에 해안 마을이 있었지. 별이 떨어진 날 섬이 지워졌다. 그 뒤부터는 간혹 오전에만 종소리가 들렸어.”
그가 말을 마치자 물속에서 둔탁한 울림이 났다. 아주 깊은 종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바닥 없는 오른편이 아니라 수심이 얕은 왼쪽에서 울리고 있었다. 미라가 닻을 내리고 배를 고정했다.
“종이 어디 있는지 확인해야겠어요.”
“종을 찾으러 바닷속에 가는 겁니까?” 나는 기겁했다.
“대개 종이 있는 곳에는 종을 걸었던 건물도 있으니까요.”
헤론은 내가 꺼낸 별가루 지도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조심하게. 지금 듣는 소리가 어느 날의 것인지 몰라. 소리만 믿고 길을 그으면, 그날의 끝까지 함께 들어갈 수 있어.”
우리는 장대를 바닥으로 내렸다. 무언가 단단한 것이 닿았다. 미라가 고리에 묶은 돋보기를 장대 끝에 달았고, 나는 물의 굴절을 따라 그 아래를 보았다. 수면 밑에 돌계단이 있었다. 계단 위에는 목제 문이 잠겨 있었고 문 옆에는 종줄이 내려와 있었다. 종줄을 당기는 사람은 없었다.
“저게 사라진 등대의 첫 계단이야.” 오렌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테온은 오래된 글자를 읽었다. “루메르 해상 길드. 이건 우리 왕국의 문장이야.”
우리는 서로를 바라봤다. 루메르는 내륙 쪽에서 사라졌다고 배웠다. 그러나 루메르의 상인들은 해안 길드까지 운영했던 모양이었다. 테온이 어릴 적 들었던 물품 운송 노래에 ‘마른 종’이라는 구절이 있었다고 말했다. 나는 그 노래를 적어 달라고 했다.
“왕자는 전통 노래를 외우는 법이지.” 그가 어깨를 폈다.
“한 소절만 먼저요.”
테온은 잠시 눈을 감더니 한 줄을 불렀다. 종이 울리면 길을 세고, 종이 멎으면 사람을 세라. 두 번째 소절에서 목소리가 끊겼다. 어린 시절의 노래가 끝나기 전에 어머니 얼굴을 떠올린 듯했다.
나는 종소리를 다시 기다렸다. 울림이 끝나자 수면 위로 작은 물거품들이 떠올랐다. 물거품은 네 개, 일곱 개, 아홉 개로 나뉘어 퍼졌다. 누군가 두드리는 규칙인지, 파도가 만든 우연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오렌은 그 수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열두 해 전에는 세 번이었어.”
“그러면 지금은 같은 종이 아닐 수도 있겠군요.”
그는 잠깐 나를 노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것부터 확인해야겠지.”
테온이 바다를 바라보며 물었다. “루메르를 기억하는 사람은 더 없을까?”
“있겠죠. 다만 왕자님이 기억하는 루메르와 같은 날에 살았던 사람인지는 봐야 합니다.”
종줄을 잡고 싶어 하던 테온은 나보다 훨씬 참기 어려워 보였다. 그는 다시 노랫말의 첫 소절을 읊었다. 세린도 몰랐던 루메르의 운송 노래. 왕자에게는 어머니의 목소리와 연결된 유일한 단서였다.
“당기면 뭔가 알려 줄지도 몰라.”
“그럴지도요. 다만 물속에 있는 종을 울리면 우리가 있는 날의 종이 울리는지, 옛날에 살던 사람들을 부르는지 모릅니다.”
테온은 검집을 쥔 손을 풀었다. “나는 내 나라의 모든 흔적을 찾을 거야.”
“그건 좋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사라질 위험까지 걸 필요는 없잖아요.”
그는 잠시 나를 노려보다 피식 웃었다. “너는 내 신하가 되었으면 첫날에 목이 날아갔겠군.”
“왕자님 나라에서는 이의 신청을 못 합니까?”
“할 수 있지. 다만 네 말투로는 곤란해.”
우리는 같이 웃었고, 테온은 종줄 대신 노래를 두 번째로 기록해 주었다. 기억을 붙잡는 방식이 반드시 문을 여는 일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종줄을 당기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나는 보이는 계단의 각도와 표지판의 오래된 글씨를 기록했다. 오렌의 등불과 미라의 측심 기록, 테온의 노래가 서로 만나는 지점만 지도에 남겼다. 마른 계단이 펼쳐지는 마법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배가 나아갈 수 있는 짧은 길 하나가 구별되었다.
그날 점심, 키오가 음식 창고에서 굳은 빵을 꺼내 왔다. 소년은 빵 끝을 뜯다가 나를 힐끗 보았다.
“아저씨, 사람들이 잊어버린 주소로 편지를 보내면 어떻게 돼요?”
“우체부가 화내겠지.”
“그 사람이 안 화내면요?”
“그럼 좋은 우체부고, 주소를 찾아 줄 방법을 같이 찾겠지.”
키오의 입술이 움직였지만 소리는 나지 않았다. 나는 억지로 캐묻지 않았다. 다만 그의 우편통 겉면에는 배가 종을 지나갈 때 생긴 은빛 가루가 붙어 있었다. 손으로 닦아도 닦이지 않았다.
저녁 무렵 우리는 평평한 수면을 벗어났다. 침묵 등대의 그림자는 어느새 사라졌고 오렌은 바깥 해협의 작은 구조선에 내려 주었다. 세관 여인이 연락을 넣어 두었다고 했다. 그는 배에서 내리기 전 내 수첩에 짧은 글을 남겼다.
‘등대를 본 사람은 많다. 등대가 없어진 날을 기억하는 사람은 적다. 둘 다 찾아라.’
“항해사가 다 아는 말인가요?” 내가 물었다.
“아니. 내가 세 번째 조난 끝에 배운 말이지.”
해가 기울자 테온이 갑판 아래에서 작은 쇳조각을 찾아왔다. 해저 계단에 내렸던 장대 끝에 걸려 온 것이었다. 둥근 동판에는 루메르의 왕관 표식과 숫자 하나가 찍혀 있었다. 7. 미라의 은제 고리 가운데 숫자와 같았다.
미라는 동판을 빛에 비췄다. 그러자 뒷면에서 지워진 글씨가 드러났다.
‘루메르행 배는 마지막 해안에서 이름을 내려놓았다.’
테온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그가 손바닥의 왕관 조각을 더 세게 쥐었다. 나는 무심코 동판을 지도에 대어 보려다 멈췄다. 소중한 기억일수록 오래된 물건 하나로 진실을 확정해서는 안 됐다.
그때 멀리서 새로운 흰 돛 하나가 나타났다. 돛에는 구름처럼 흐린 문장이 수놓여 있었다. 미라는 쌍안경을 들고 오래 바라보다가 입술을 깨물었다.
“저 배…… 십이 년 전에 침몰했어요.”
흰 돛 아래에서는 분명 누군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제13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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