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표값을 내지 않은 손님이 있다면 보통 선장은 다음 항구에서 내리라고 한다.
미라는 달랐다.
“갑판을 닦아.”
키오는 자루 뒤에서 빗자루를 받아 들고 나를 바라봤다. 도와달라는 눈빛이었다.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출항 때 이미 세 닢을 잃었다. 공짜로 태워 준 소년의 노동까지 대신할 만큼 자선사업이 번창하지 않았다.
“이 배는 파도를 고르게 받도록 갑판 양쪽을 비워 둡니다.” 미라가 말했다. “걸레를 쥔 손으로 난간에 매달리지는 말고. 넘어가면 우리가 다시 데려와야 하니까.”
“무슨 일을 해도 돼요.” 키오가 대답했다. “대신 그 우편통은 건드리지 말아 주세요.”
그 말은 어젯밤부터 세 번째였다. 나는 우편통이 비어 있다는 사실보다 그것을 지키려는 소년의 태도가 더 신경 쓰였다. 사라질지 모르는 장소로 보낸 편지에 대체 무엇이 들어 있기에.
침묵 등대는 새벽까지 우리 배 옆을 따라왔다. 무슨 저주가 걸린 듯했지만 미라는 악몽의 정체보다 방향을 먼저 확인했다. 별의 위치가 어제와 달라도 물살은 일정한 리듬으로 움직인다고 했다. 그녀가 부표를 던지고 밧줄 길이를 재는 동안 나는 선체 양옆의 물결을 스케치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테온이 물었다.
“왕자님, 땅이 생길 때마다 바다가 바뀐다면 물길부터 재야죠.”
“왕국이 없어지는 걸 경험한 사람에게는 익숙한 말이군.”
테온은 웃는 척했지만 손으로 왕관 조각을 문질렀다. 그가 루메르라는 이름을 말할 때마다 미세하게 조용해지는 순간이 있었다. 사람을 살리는 여행이라고는 해도, 그에게 목적지는 이미 한 번 잃어버린 곳이었다.
아침 무렵 하늘에서 보이지 않는 종이 울렸다. 세 번, 일곱 번, 그리고 짧은 침묵. 나는 그 패턴을 수첩에 적었다. 헤론은 천문도에서 자와 실을 교차했다.
“붙박이 별의 숫자처럼 들리는군.”
“저한테는 새벽 노동을 알리는 종처럼 들립니다.”
“아무 의미도 없는 숫자를 별이 기억할 리 없지.”
키오는 그날 아침 고무줄처럼 늘어난 돛줄을 정리하고 있었다. 소년이 묶은 매듭은 형편없었다. 한 번 당기자 금세 풀려 버렸다. 미라는 짜증을 내지 않고 같은 매듭을 세 번 보여 주었다.
“바다에서는 모르는 걸 아는 척하면 죽어요.”
“그럼 저도 이제 선원이 되는 거예요?”
“아뇨. 넌 아직 배표값을 갚는 중이지.”
키오의 어깨가 축 처졌다. 나는 일지를 들고 다가가 서툰 매듭의 모양을 그려 주었다. 매듭의 첫 고리가 어디에 걸려야 하는지 눈으로 보면 이해하기 쉬웠다. 키오가 이번에는 단단히 묶었다.
“배표를 안 판 건 제 잘못이 아니잖아요.”
“그건 맞아. 그런데 탔으면 갑판이 미끄럽지 않게 하는 건 네 일이지.”
소년은 말없이 빗자루를 들었다. 조금 뒤 키오가 내게 작은 물음 하나를 던졌다.
“아저씨, 지도가 틀리면 누구 잘못이에요?”
“고의로 틀리게 그린 사람 잘못도 있고, 어제 지도를 오늘이라고 우기는 사람 잘못도 있지.”
“그럼 아무도 모르는 길이면요?”
“모른다고 적어 두는 게 정직한 일이야.”
키오는 우편통을 꾹 누르고 말이 없어졌다.
그때 수면이 거칠어지더니 왼편에서 부유하는 선착장이 나타났다. 섬 없이 바다 가운데 세워진 목조 구조물이었고, 낡은 금속판에 ‘사이해협 세관’이라고 적혀 있었다. 사슬이 물속 깊은 곳까지 내려가 있었다. 갑판 위에는 머리카락을 단정히 묶은 여인이 장부를 들고 서 있었다.
“통행세.”
“이게 해협입니까?” 미라가 물었다.
“여기에 통행료가 붙은 이상 해협입니다.”
나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켄 항만청과 같은 학파에서 행정을 배운 모양이었다.
“얼마죠?”
“선원 한 사람에 동화 네 닢, 물건 한 자루에 두 닢, 도착하지 않은 짐에는 보관료 여섯 닢.”
“도착하지 않은 짐을 어떻게 셉니까?”
“명부에 있으니까요.”
여인이 펼친 장부에는 ‘어제의 파도’라고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그리고 선원 수는 다섯이었다. 우리 배에는 미라, 나, 테온, 헤론, 키오. 정확히 다섯이었다. 하지만 그 아래에 이상한 여섯 번째 칸이 있었다.
‘미도착자: 1.’
미라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그 칸은 지우세요.”
“선장 명부는 사본을 받아 적은 것뿐입니다.” 여인은 말끝을 흐렸다. “제가 지우면 그 사람이 돌아올 길도 없어질 수 있어요.”
그 순간 배 뒤편에서 누군가 물에 빠진 소리가 났다. 키오가 갑판을 닦다 미끄러진 줄 알고 모두 달려갔다. 그러나 소년은 창고 입구에 서 있었다. 수면에는 낡은 등불 하나가 떠 있었고 그 아래에서 손가락이 올라왔다.
“사람이다!” 미라가 밧줄을 던졌다.
물에 젖은 중년 남자를 끌어올리자 그는 품에 작은 기름병을 안고 있었다. 가슴에는 등대지기의 문장이 달렸다. 기침을 하며 일어난 그는 배를 둘러보고 세관 쪽을 향해 악을 썼다.
“명부에 이름을 올리지 마! 아직 돌아온 게 아니란 말이다!”
여인은 눈을 감았다. 그녀의 장부에 있던 미도착자 칸이 젖은 종이처럼 번졌다.
“이 배는 원래 한 명을 더 싣고 왔어요.” 그녀가 속삭였다. “아니, 정확히는 누군가 한 명을 실어야 한다고 적혔어요.”
나는 남자에게 담요를 덮어 주었다. 그의 손등에는 심한 화상이 있었다. 등불을 가슴에 안고 얼마나 오래 물속에 있었는지 묻자, 그는 사흘이라고 대답했다. 여인의 기록에는 열두 해 전부터 실종이라고 되어 있었다.
“어디에서 왔습니까?”
“침묵 등대.”
“섬도 없이 어떻게 거기에서 살았죠?”
그는 나를 보며 짧게 웃었다. “섬이 없다고 누가 그랬나? 네가 오늘 볼 수 없다는 사실과 어제 그곳에 없었다는 사실은 다른 것이야.”
헤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별락의 기록에는 서로 다른 날의 해안이 겹치지.”
등대지기는 자신을 오렌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해협 건너편 등대에서 관측하고 있었다. 별이 바다로 떨어지던 밤, 섬은 사라지고 물속에 등불만 남았다. 하지만 어느 날의 바다인지 알 수 없는 탓에, 구조선은 그의 목소리를 듣고도 위치를 찾지 못했다.
“내가 기름을 아껴 뒀던 건 불을 켜려고만 한 게 아니야. 수평선의 선을 보려면 빛이 필요했거든.”
나는 배를 세관 선착장에 붙인 뒤 두 개의 기록을 펼쳤다. 미라의 어젯밤 항해일지에는 침묵 등대가 그림자로 나타난 시각이 있었다. 오렌이 가슴에 안고 있던 기름병에는 같은 시각을 가리키는 금속 테가 있었다. 여인의 세관 일지에는 열두 해 전 그 등대 근처 물길이 분리되었다고 적혀 있었다.
서로 다른 세 사람이 다른 시각에 확인한 같은 등대였다.
“길을 하나 그려 볼 수 있겠습니다.”
“새로 만드는 거 아냐?” 키오가 물었다.
“아니. 있었다는 증거가 있는 곳까지만 표시할 거야.”
은색 잉크로 점 셋을 잇자 바다가 좁게 갈라졌다. 단단한 땅이 솟은 것은 아니었다. 물빛이 다른 두 조류의 경계가 보일 뿐이었다. 그 길은 미라가 확인한 배의 흘수에 맞추어 짧게 열렸다. 앞서 가는 부표가 바닥에 부딪히지 않았다.
“저기요!” 세관 여인이 불렀다. “통행세는 아직!”
“우린 구조 중입니다!” 내가 외쳤다.
“구조는 면세예요!”
나는 깜짝 놀랐다. 드디어 이 세계에도 논리가 남아 있었다. 그녀가 곧바로 덧붙였다.
“다만 구조 장비 사용료는 따로예요!”
“역시 없군요.”
그런데 미라가 등대지기를 살피며 얼굴을 굳혔다. 오렌의 품속 기름병에 꽂힌 작은 금속 바늘이 동쪽이 아니라 서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우리 항로의 다음 방향과 같았다.
“레이븐, 저 바늘은 나침반이 아니에요. 항로에 남은 시간이죠.”
바늘 옆 눈금은 스무 칸이었다. 그중 한 칸이 조용히 사라졌다. 낙성까지 남은 시간이 하루 줄었음을 알리는 별가루 글씨가 내 지도의 가장자리에서도 동시에 희미해졌다.
[별락 대륙 — 다음 낙성까지 20일]
오렌은 그 문장을 보고 숨을 멈췄다.
“그걸 봤다면 서둘러. 그 대륙은 별이 떨어지기 전에 먼저 걸어가는 땅이야.”
제1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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