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켄에서 배를 타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배, 바다, 그리고 바다가 어제부터 생겼다는 사정을 받아들일 수 있는 항만 관리인.
우리는 세 번째에서 막혔다.
“출항허가증의 기항지를 적으시오.”
항만청 창구 안쪽의 관리인은 깃털 펜을 들고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아르켄이 옮겨 간 새 항구의 창구는 아직 칠도 마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벌써 서류를 받는 구멍 아래에 ‘규정 외 문의 금지’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관료 조직은 지형보다 빨리 자랐다.
“별락 대륙입니다.” 내가 말했다.
“그런 곳은 항해 목록에 없소.”
“지도에 있습니다.”
“지도 제작자가 자기 지도에 적으면 다 항구가 되는 것이오?”
“그게 가능했으면 지금쯤 제 가게 앞에도 온천을 만들었겠죠.”
미라가 내 뒤통수를 가볍게 쳤다. 그녀의 배 ‘어제의 파도’는 정박줄을 팽팽하게 당긴 채 기다리고 있었다. 돛에 남은 소금 얼룩과 수선 자국을 보면, 이 배만큼은 새 항구에 갑자기 생겨난 물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미라가 손수 열두 해 동안 몰았다는 배였다.
“왕도 이전 특별 항로로 등록하세요.” 미라가 허가증을 밀었다. “시민들의 선택으로 옮긴 항구를 왕실 목록에서 지웠다간 어제 심사에 참석한 경비병들까지 길을 잃습니다.”
관리인은 뒤를 흘끔거렸다. 그도 성벽이 투명해지던 날 시민들이 적어 놓은 이름을 보았을 것이다. 그는 푸념하며 임시 항로 칸에 도장을 찍었다.
“귀항일은?”
나는 손에 든 별가루 지도를 펼쳤다. 서쪽의 별락 대륙 옆에는 여전히 스물한 날이라는 숫자가 떠 있었다. 정확히는 다음 낙성까지의 날수였다. 도착까지 걸리는 시간도, 돌아올 수 있는 날짜도 아니었다.
“미정입니다.”
“그런 출항이 어디 있소?”
“지금 이 항구가 거기 있습니다.”
그는 결국 ‘변동 지형 탐사’라는 용도를 적고 허가증을 내주었다. 이틀 동안만 유효한 종이였다. 우리는 무사히 출항할 수 있게 되었지만, 바다가 이틀 뒤에도 같은 곳에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배에 오르자 테온은 선실 문틀에서 한참을 머뭇거렸다. 폐왕관을 두 조각으로 나눠 각각 다른 주머니에 넣은 뒤였다. 그는 흔들리는 널판에 발을 올리며 왕궁의 돌계단을 그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왕자님도 멀미합니까?”
“루메르의 왕자는 흔들리지 않는다.”
“배가 흔들리는데요.”
“그럼 루메르의 왕자가 흔들리는 건 아니겠지.”
나는 일단 그 논리에 승복했다. 내가 알던 왕족 가운데 가장 현실적인 대답이었다.
헤론은 돛대 아래에서 천문도를 고정하고 있었다. 왕립천문대에서 쫓겨난 지 열두 해가 넘었다는 노학자는 배에 오르자마자 하늘부터 확인했다. 그리고 입술을 꾹 다물었다.
“이상하군. 서쪽 별 셋이 순서를 바꿨어.”
“별도 이사를 다닙니까?”
“위치가 아니라 관측 순서야. 첫 번째 별이 먼저 보이는 곳에서만 세 번째 별까지의 거리를 잴 수 있는데, 오늘은 세 번째가 먼저 보이네.”
미라가 손목의 은제 고리를 들어 올렸다. 3, 7, 0. 왕도에서 세 방향을 확인할 때도 빛났던 붙박이 별의 숫자였다. 숫자 7의 홈에 소금물 한 방울이 맺혔다. 바람과 반대쪽으로 굴러가는 방울이었다.
“괜찮아요.” 미라가 말했다. “바다가 이상한 건 늘 정상이에요. 이상하지 않은 바다가 나오면 그때 걱정하면 됩니다.”
어제의 파도가 출항하자 항구가 뒤로 밀려났다. 새로 옮긴 아르켄은 아직 배경과 어울리지 않았다. 오래된 첨탑 뒤에 갓 생긴 늪지가 펼쳐졌고, 왕궁의 북쪽 탑에는 바다새들이 둥지를 틀고 있었다. 그러나 시장에는 불이 켜져 있었고, 경비병들은 새 길을 묻는 사람에게 시민들이 만든 지도를 나눠 주고 있었다. 구한 것은 도시 자체가 아니라 다시 시작할 기회였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하브가 부두 끝에서 헐레벌떡 달려왔다.
“레이븐! 빚!”
“제겐 빌린 돈이 없습니다!”
“내 지도값! 네가 환불해 주기로 했잖아!”
나는 가방에서 동전 세 닢을 꺼내 던졌다. 하브는 그걸 허공에서 받아 들더니 잠깐 웃었다. 그 웃음이 항구 안개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나는 난간에 기대 있었다.
해안선을 떠난 첫날 오후, 우리는 해도에 없는 잔잔한 물길을 만났다. 바다는 칼로 두 층으로 나눈 것 같았다. 한쪽에는 파도가 있었고, 다른 쪽에는 잔물결 하나 없이 유리처럼 평평한 수면이 펼쳐졌다. 평평한 물 위로 낡은 등대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섬이 없는데 등대가 있네요.”
미라는 닻줄에 손을 댄 채 얼어붙었다. “저건 침묵 등대예요. 멀쩡한 해도에는 그려져 있지 않죠.”
“왜요?”
“그곳을 그린 사람들은 대개 돌아오지 않았으니까.”
헤론이 지도를 살피며 고개를 저었다. “등대가 한때 있던 자리는 분명하네. 하지만 그 주변 땅이 어느 날의 것인지 일치하지 않아.”
나는 별가루를 묻힌 펜을 꺼냈다. 은빛 선이 만들어지려다가 끊어졌다. 손끝이 따끔거렸다. 한 사람의 관측만으로는 길이 이어지지 않는다는 경고였다. 왕도에서는 시민들의 증언과 여러 날의 흔적이 있었기에 선을 붙일 수 있었다. 지금 이 앞에는 미라의 기억밖에 없었다.
그 직전 헤론이 내 지도의 모서리를 눌렀다. 아르켄의 옛 자리에는 여전히 빈 원형 들판이 표시되어 있었다. 새 자리는 잉크로 고정되어 있었지만 옛 자리는 지울 수 없었다. 두 곳 사이를 잇는 가느다란 점선에는 시민들의 이름이 깨알같이 적혀 있었다. 내가 선 하나로 도시를 옮긴 게 아니라는 증거였다.
“왜 자꾸 뒤를 돌아보나?” 헤론이 물었다.
“제가 돌아올 주소가 오늘도 남아 있는지 확인합니다.”
“지도를 그리는 사람에게는 제일 중요한 일이겠지. 출발점이 없으면 돌아온 걸 증명할 길도 없으니.”
테온이 그 말을 듣더니 가방에 담은 왕관 조각을 다시 세었다. 한 조각은 왼쪽 주머니, 다른 조각은 오른쪽 주머니였다. 그는 아주 작은 왕국을 두 개로 나눠 들고 여행하는 사람 같았다. 미라는 그런 우리를 보며 눈을 굴렸다.
“우리 배가 뜬 지 반나절밖에 안 됐는데 벌써 다들 귀향병이에요? 일단 앞을 보세요. 산맥이 떠오르면 돛부터 걷어야 한다고요.”
나는 수첩에 적었다. '해상 탐사 첫날. 가장 두려운 것은 바다가 아니라 돌아갈 곳을 잊는 일.'
그때 창고 아래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났다.
“배 안에 우리가 실은 짐이 아닌 게 있군요.” 테온이 말했다.
미라가 단검을 뽑았다. 창고 문을 열자 곡물 자루 뒤에서 작은 그림자가 굴러 나왔다. 허름한 외투를 입은 소년이었다. 목에는 갈색 끈에 매단 납작한 우편통이 걸려 있었다.
“도둑인가?” 테온이 묻자 소년은 엉겁결에 두 손을 들었다.
“전 키오예요! 물건은 안 훔쳤어요! 배표값만 안 냈어요!”
“그게 방금 고백한 도둑질 아닐까요?” 내가 말했다.
“배표를 판 사람이 없었는걸요!”
키오는 우편통을 가슴에 끌어안았다. 표면에 찍힌 인장은 분명 아르켄의 낡은 우체국 표식이었다. 이상한 것은 날짜였다. 왕도가 옮겨진 날보다 이틀 앞서 발송되었는데, 수신지는 ‘아르켄 구항구’였다. 지금은 텅 빈 원형 들판이 된 곳이었다.
“이걸 갖다 줘야 해요.” 키오가 말했다. “보낸 사람이 돌아오면 길을 찾을 수 있다고 했어요.”
“누가 보냈는데?” 미라가 물었다.
소년은 입을 다물었다. 숨이 짧아졌고 눈이 문 쪽으로 달아났다. 나는 일부러 펜을 접었다.
“좋아. 지금은 이름 묻지 않을게. 대신 너한테 물어볼 건 하나야. 침묵 등대를 본 적 있어?”
키오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저 등대요?”
“그래.”
“저기엔 등대가 없어요.”
소년이 말하는 순간 물 위의 검은 등대 그림자가 우리 배와 같은 속도로 움직였다. 미라의 손목 고리가 떨렸다. 키오는 우편통 뚜껑을 열어 젖혔다. 안에는 아무 편지도 없었다. 다만 바닥에 젖은 종잇조각 하나가 붙어 있었다.
‘등대가 없는 날에만 도착할 것.’
우리는 동시에 수평선을 보았다. 등대의 그림자 뒤로 물 위에 아직 떠오르지 않은 땅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 길은 지도에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분명히 그 길을 이용해 우편물을 보냈다.
제11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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