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날 정오까지 세 시간이 남았을 때 아르켄의 모든 종이 동시에 울렸다. 사람들은 시간을 세기 시작했다. 나는 새벽부터 지도를 정리했다. 일주일 전만 해도 지도에는 왕국의 대로와 강, 산이 빼곡했다. 이제는 사람들이 손으로 그린 작은 길들이 겹쳐 있었다.
미라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바다에 나간 지 하루가 넘었다. 하브는 배가 돌아오지 못하면 내가 직접 나가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 말에 진지하게 고민했다. 바닷길은 내 전문이 아니지만, 내가 그린 지도가 누군가의 마지막 길이 되는 것은 더 싫었다.
테온이 폐왕관의 남은 반쪽을 내게 건넸다. “루메르가 사라질 때 난 도망쳤어. 문이 닫히는 걸 뒤돌아보지 않았지.”
“그땐 왕자님이 아이였잖아요.”
“지금도 아이처럼 보이잖아.”
“그런 얘기를 하려던 건 아닌데요.”
테온은 웃지 않았다. “이번에는 누가 남겨져도 모른 척하고 싶지 않아.”
우리는 광장으로 갔다. 검은 첨탑의 그림자는 궁전 전체를 덮고 있었다. 아브렌은 대형 금속판 위에 국왕이 승인한 단일 경계안을 올려놓았다. 동쪽의 심해를 가리키는 선이 검은빛으로 타올랐다. 병사들이 시민들을 동쪽 대로로 몰았다. 누군가는 짐을 끌었고 누군가는 자기 집 문을 붙잡고 울었다.
“아브렌 경!” 나는 금속판 앞에서 외쳤다. “저 좌표는 바닷속입니다!”
“높은 지대는 이전 후에도 살아남는다.”
“지대가 높은 데만 사람이 삽니까?”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네가 지도를 다룬다고 왕국 전체를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하나? 일곱 도시를 구하려다 세 도시를 잃은 사람도 있어.”
나는 그가 처음으로 자기 이야기를 한다는 걸 알았다. 아브렌은 과거 별락에서 여러 도시의 경계를 넓게 잡으려다, 기억이 뒤섞여 주민들이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고를 겪었다. 그 뒤로 그는 가장 안전하다고 계산된 하나의 좌표만 허용했다. 결과가 어떻든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러면 이번에도 계산이 틀리면요?” 내가 물었다.
“나 혼자 책임지겠다.”
“그 책임으로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할 수 있나요?”
아브렌의 입술이 떨렸다. 그가 잠시 금속판을 내려다본 사이 헤론이 내 귀에 속삭였다. “세 방향을 묶는 방법은 알아냈나?”
“첫째는 도시가 기억하는 자리. 둘째는 사람들이 서로 증언하는 길. 셋째는 선택할 수 있는 새로운 길.”
“그 새로운 길을 누가 그리지?”
“모두가요.”
나는 시민들에게 모은 지도를 펼쳤다. 백 장, 삼백 장, 천 장에 가까운 종이. 손바닥만 한 그림도 있고, 어린아이의 삐뚤빼뚤한 선도 있었다. 테온은 그것들을 하나씩 이어 붙였다. 헤론은 우물에서 얻은 첫 방향을 가운데 놓았다.
하지만 세 번째 점이 켜지지 않았다. 미라가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쪽 바다가 아니라 서쪽에 있는 조류의 역방향을 증명할 사람이 필요했다.
정오까지 한 시간이 남았을 때 멀리서 고동이 울렸다. ‘어제의 파도’였다. 돛은 찢겼고 뱃머리는 부서졌지만 미라는 살아 있었다. 그녀는 바닷물에 젖은 머리를 털며 소리쳤다.
“동쪽은 함정이에요! 그곳은 바다가 아니라 한순간만 바다처럼 보이는 옛 지형이에요!”
“그럼 어디로 갈 수 있죠?”
“서쪽! 오래전 루메르 항구가 있던 고지대. 파도가 빠져나갈 때 살아나는 평지가 있어요!”
그녀는 항해일지와 실제 조류를 기록한 해도를 내밀었다. 테온이 루메르의 왕관을 손바닥 위에 올렸다. 왕관 속에서 작은 빛이 피어올랐다. 사람들의 지도, 옛 도시의 기억, 지금 확인한 항로가 같은 곳을 가리켰다.
세 번째 점이 켜졌다.
내 지도 위에 은색 선 세 개가 삼각형을 이루었다. 검은 소멸 문장은 처음으로 흔들렸다. 그 아래에 새 문장이 나타났다.
[왕도 아르켄 — 기존 자리에서 소멸]
나는 긴 숨을 내쉬었다. 예언은 틀린 게 아니었다. 단지 우리가 ‘기존 자리’를 읽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자리를 알았다고 도시가 저절로 옮겨지는 건 아니었다. 검은 첨탑의 힘이 여전히 아브렌의 금속판에 묶여 있었다.
그가 검을 뽑았다. “검증되지 않은 경계안은 허용할 수 없다!”
테온이 앞으로 나섰다. “루메르의 마지막 왕자로서 증언한다. 그 서쪽 항구는 있었다. 지금도 내게는 살아 있는 땅이다.”
헤론이 손을 들었다. “관측관으로서 증언하지. 붙박이 별의 첫 방향은 서쪽의 오래된 자리와 일치한다.”
미라는 해도를 펴 들었다. “항해사로서 증언해요. 서쪽의 조류를 오늘 직접 확인했어요.”
나는 시민들이 모은 지도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아르켄 사람들은 자기 길을 증언했습니다. 당신 혼자 정한 선에 우리 모두를 가둘 수는 없습니다.”
아브렌은 칼을 치켜들었다. 검은 별 문양이 불타올랐다. 나는 그 칼을 막을 무기가 없었다. 대신 지도를 금속판 위에 올렸다. 칼끝이 내 손등을 스쳤다. 피가 종이에 떨어졌다. 별가루가 피를 따라 번지며 검은 선을 은색으로 바꾸었다.
“레이븐!” 미라가 소리쳤다.
나는 치켜든 칼 대신 아브렌의 눈을 보았다. “지도가 한 사람의 명령이라고 믿으면, 당신은 평생 지우는 일밖에 못 해요.”
아브렌은 마지막 순간 검을 멈췄다. 그가 손을 거두자 금속판의 검은빛이 약해졌다. 나는 시민들의 지도와 세 기준점을 겹쳤다. 첨탑이 처음으로 안쪽에서 빛났다.
정오의 종이 울렸다.
왕도 전체가 흔들렸다. 건물들이 물 위에 비친 그림자처럼 길게 늘어났다. 사람들은 주저앉았고, 하늘은 잠깐 밤이 되었다. 내 귀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바닥에 손을 대고 내가 아는 길을 떠올렸다. 지도 가게에서 빵집으로, 빵집에서 남문으로, 남문에서 유리울로.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과 발소리가 길을 붙잡았다.
다시 햇빛이 쏟아졌다.
아르켄은 서쪽의 넓은 고지대에 서 있었다. 성벽은 일부 무너졌지만 대다수 건물은 자리를 지켰다. 왕궁의 첨탑은 여전히 하늘을 찔렀고, 새 항구에서는 미라의 배가 출항 준비를 하고 있었다. 땅의 높이가 달라져 다친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는 구조부터 시작했다. 테온은 아이들을 옮겼고 미라는 밧줄을 설치했다. 헤론은 사라진 도로 대신 안전한 우회로를 그렸다.
나는 남문으로 달려갔다. 유리울은 그대로 있었다. 린네는 빵집 앞에서 에린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에린은 내게 손을 흔들었다.
“지도 아저씨! 우리 집 아직 있어요!”
“저도 확인하러 왔습니다.”
아르켄이 있던 옛 자리에는 거대한 원형 들판만 남았다. 멀리서 보면 도시의 윤곽이 희미하게 비쳤다. 사람들은 그 땅을 오래전부터 비어 있었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새 지도 첫 장에 한 줄을 적었다. ‘아르켄은 여기 있었다.’
그날 밤 아브렌은 검을 내려놓고 조사를 받겠다고 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단일 좌표가 옳았다고 믿는 눈치였다. 그러나 시민들의 지도를 불태우지는 않았다. 나는 그 정도면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미라는 다시 배에 올랐다. 테온은 루메르의 항로를 찾고 싶다고 말했다. 헤론은 내 가게로 돌아와 귀중한 지도 한 장을 가져왔다. 그 지도에는 별이 떨어질 때마다 이동하는 땅들이 점처럼 찍혀 있었다.
“이제 알겠지? 아르켄은 끝이 아니야.”
나는 지도를 펼쳤다. 아직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대륙이 서쪽 바다 너머에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별락 대륙 — 다음 낙성까지 21일]
그리고 그 아래, 내가 그린 적 없는 글씨가 나타났다.
[마지막 별이 떨어지는 날, 지도를 그린 자가 세계를 지운다.]
나는 종이를 덮었다. 조금 전까지 도시를 살린 손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미라가 배 위에서 물었다. “같이 갈래요, 지도 제작자?”
나는 고개를 들었다. 세상은 넓었고, 길은 아직 누군가의 손을 기다리고 있었다.
“갑니다. 다만 배가 멀미를 할인해 주는지는 먼저 확인할게요.”
제10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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