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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별가루 지도 제작자 · 128화
PAYLUA ORIGINAL · 제128화

제128화 - 영의 자리에는 빈 의자가 일곱 개

별가루 지도 제작자 · 3,711자

오프라인 책장
영의 자리로 내려가는 계단은 비상 통로 뒤에 숨어 있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출입문을 열면 금색 장치의 배선함이 먼저 보였을 것이다. 켈반이 자동 판을 잠시 끄자 그 아래 오래된 목재문이 드러났다. 문이 사라졌던 게 아니었다. 다른 물건이 그 앞을 가리고 있었다. “이럴 때는 기쁘군요.” 내가 말했다. “왜?” 미라가 물었다. “세상이 마법 때문에 억울하게 복잡해진 줄 알았는데, 그냥 설계가 잘못된 거잖아요.” “그게 더 무서운 소리인 것 같은데.” 켈반은 먼저 관측대의 시설 담당자를 불렀다. 오래된 수리도면에 따르면 목재문 뒤에는 물이 빠지는 통로와 작은 기록실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입사한 뒤 한 번도 그곳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했다. 다만 금색 판을 설치할 때 바닥에서 이상한 울림이 난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했다. 우리는 다섯 명만 내려갔다. 나, 미라, 헤론, 율다, 켈반. 테온과 키오는 위에서 사람들의 안전을 살폈다. 전날 무너진 다리 때문에 고원의 대피 동선이 바뀌었고, 누군가는 진료소와 새 임시 발판을 계속 확인해야 했다. 테온은 마지막으로 밧줄을 묶어 주면서 말했다. “하늘이 무너지면 손을 흔드세요.” “하늘이 무너지면 손을 흔들 시간은 없겠죠.” 내가 답했다. 미라가 뒤통수를 툭 쳤다. “좋은 말만 해.” 계단은 스무 칸이었다. 열네 번째에서 돌이 젖기 시작했고, 열일곱 번째에서는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율다가 손으로 숫자를 세어 줬다. 그녀는 이 통로에서도 귀가 멀어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었다. 우리는 세 걸음마다 줄의 매듭을 확인하고 걸었다. 가끔 바닥 아래에서 물 흐르는 진동이 올라왔다. 마지막 계단 끝에는 작은 방이 있었다. 벽에는 종이 아니라 나무 의자가 일곱 개 놓여 있었다. 각각의 의자 앞에 작은 판이 하나씩 붙어 있었다. 첫 번째에는 ‘발신 관측’, 두 번째에는 ‘중간 전달’, 세 번째에는 ‘현장 이동’, 네 번째에는 ‘수신 확인’, 다섯 번째에는 ‘이의 기록’, 여섯 번째에는 ‘대체 경로’, 일곱 번째에는 ‘재검증’이라고 적혀 있었다. “일곱 날짜판하고도 닮았군요.” 내가 말했다. 헤론이 손전등 대신 가느다란 별광석을 비춰 글씨를 살폈다. 의자들은 오래된 재료로 만들어졌고 표면에 서로 다른 손때가 남아 있었다. 한 사람이 일곱 일을 모두 처리하지 않도록 만든 공간 같았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 용도인지는 기록실의 장부를 읽어 봐야 했다. 켈반이 가장 안쪽의 서랍을 열었다. 서랍에는 금색 인장이 아닌 평범한 종이 열두 장이 있었다. 모든 종이의 첫 줄이 같았다. ‘영의 자리는 이름을 지우는 곳이 아니다.’ “그럼 여기서 무엇을 했죠?” 내가 물었다. 율다가 첫 장을 읽었다. 그녀의 손짓을 켈반이 직접 따라 해 보였다. 첫 기록이 수신 확인을 얻지 못하면 네 번째 의자에는 아무도 앉지 않는다는 규정이었다. 사람이 오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아직 확정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그러면 다섯 번째 의자에서 이의가 작성되고 여섯 번째 의자에서 대체 신호가 준비됐다. “완료하지 않은 신호를 버리지 않기 위한 자리…” 헤론이 중얼거렸다. 나는 오래된 관측대의 원안을 다시 보았다. 우리가 아르켄을 옮길 때도, 여백의 항구에서 주민들을 구할 때도 같은 원칙이 필요했다. 확인되지 않은 길을 불태우는 대신 미완료로 남겨 두는 일. 그러나 지금의 금색 장치는 일곱 의자를 하나의 불빛으로 합쳐 버리고 있었다. 율다는 의자들이 바라보는 벽에 오래된 못자국이 일곱 줄로 남아 있다고 했다. 빈 판이 걸렸던 자리에는 종이를 집게로 잡았던 녹슨 흔적이 있었다. 나는 그 앞에 서서 잠시 눈을 감았다. 누군가 이 방에 앉아 종이 한 장이 오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오지 않은 종이를 보고 ‘아직 안 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기에, 멀리 있는 사람의 부재가 실종인지 단순한 지연인지 구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작은 지연을 참지 못한 사람들이 거대한 장치를 만들어 모든 줄에 완료 표시를 찍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 한가운데에는 지름이 팔 한 길쯤 되는 둥근 홈이 있었다. 세 갈래 금속선이 홈을 향해 이어졌고, 끝은 아무것에도 연결되지 않았다. 미라가 자신의 은반지와 다린의 쇠고리를 꺼내 나란히 놓았다. 둘에는 `3·7·0`이 새겨져 있었지만 선의 굵기와 장식은 달랐다. “이것을 끼우면 무슨 일이 일어나죠?” 켈반이 물었다. “아직 모르죠.” 내가 대답했다. “시험은 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동결 서고에서도 날짜를 빨리 돌린 장치 때문에 큰일 났습니다. 시험할 거면 빈 방에서 안전부터 확인해야죠.” 헤론은 홈에 남은 미세한 쇳가루를 살폈다. 세 줄은 같은 간격이 아니었다. 하나는 관측대의 세 종을 향했고 하나는 고원 진료소, 마지막 하나는 외곽의 옛 항로를 향했다. 지도에서는 직선으로 보였지만 실제로 그 사이에는 절벽이 끼어 있었다. 신호선을 그린 자가 사람들이 걸어갈 수 있는 길까지 알고 있었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때 방 뒤편의 좁은 틈에서 바람이 불었다. 종 없는 고원에서 처음 맡아 보는 짠 바다 냄새였다. 미라가 향을 알아차리고 손을 뻗었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오래된 천 조각이 끼어 있었다. 붉은 매듭과 파란 실이 겹쳐 있었다. 그녀의 손이 멈췄다. “이 매듭…” “동생 것 같아?” 내가 물었다. “예전 표본이랑 닮았어. 하지만 한 군데가 달라. 우리 집에서는 끝을 두 번 접었거든. 이건 한 번뿐이야.” 그녀는 더 말하지 않고 천의 끝을 접어 보여 주었다. 감정은 그녀의 얼굴에 그대로 남았지만 판단은 섣불리 내리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을 고마워했다. 켈반이 통로 끝을 살피고 돌아왔다. 틈 너머에는 계단이 하나 더 있었다. 그러나 오래된 나무가 일부 부서져 사람이 안전하게 건널 수 없었다. 미라는 그곳의 바람이 짠맛을 띤다는 이유만으로 바다로 이어진다고 단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작은 천 조각을 매달아 풍향을 살폈다. 바람은 대체로 북서쪽에서 들어왔지만 몇 걸음 안쪽에서는 갑자기 위로 솟았다. 해류와 만나는 동굴이라면 가능한 현상이었지만 다른 굴뚝 같은 틈에서 생기는 기류일 수도 있었다. 우리는 돌아갈 안전선을 확보하기 전까지 더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구멍의 크기와 바람 방향을 적었다. 헤론은 그 틈이 분명 바다에 연결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가능성일 뿐이었다. 방에서 나가려던 순간 율다가 벽 아래의 글을 발견했다. 일곱 의자 뒤에 그려진 오래된 그림이었다. 그림에는 가운데 흰 원 하나가 있고 그 바깥에 세 사람이 서 있었다. 각 사람은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다. 아래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세 사람의 관측이 엇갈리는 일곱 날 동안, 영의 자리는 누구의 이름으로도 닫지 말 것.’ 나는 그 문장을 읽고 오래 생각했다. 3·7·0이 반드시 이것 하나를 뜻한다고 증명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본 물건 중 가장 구체적인 설명이었다. 같은 숫자가 다른 기구에도 쓰인 이유를 찾아야 했다. 우리는 서랍의 장부를 켈반의 입회 아래 다시 봉인했다. 원본은 제자리에 남기고 탁본은 율다와 헤론이 각각 보관했다. 나는 문밖으로 나가면서 서랍을 다시 한 번 보았다. 여기에는 누가 돌아왔는지보다 누가 아직 확인되지 않았는지가 더 자세히 기록돼 있었다. 계단을 올라오자 종지기 라슈가 급히 달려왔다. 그가 보여 준 것은 관측대의 금색 장치에서 새로 출력된 문서였다. ‘영의 자리 폐쇄. 미확정 관측자 전원 귀환 완료. 본인 확인: 레이븐.’ 나는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그 문서에 적힌 내 이름은 내가 직접 쓴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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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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