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반은 우리를 관측대로 부르지 않았다. 우리가 오겠다고 하자 오히려 출입을 금했다. 그러니 나는 그와 만나는 일을 다른 방법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정식 면담을 신청하겠습니다.”
키오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엔 문을 부수지 않는 거예요?”
“문은 고장 났을 때만 고치는 거야. 부수면 내가 문값을 내야 해.”
미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이유다. 아주 비겁하고 경제적이야.”
고원 관측대는 거대한 바위 위에 세워져 있었다. 건물의 맨 아래는 검은 석재, 중간은 루메르 시대의 푸른 벽돌, 윗부분은 최근 덧댄 금색 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세 시대가 건물 하나에 층층이 쌓였다. 헤론은 벽돌을 보자 한동안 말을 잃었다. 왕실에서 추방되기 전에 읽었던 관측 수리 기록과 같은 색이었다.
출입구 앞에서 경비병이 우리를 세웠다. 문에는 사람의 이름을 적는 칸 대신 종 번호와 수신 구역을 적는 칸이 있었다. 그 아래 금색 판에서는 우리가 말을 하기 전에 ‘전원 도착’이라는 불빛이 켜졌다.
“우린 아직 들어가지도 않았는데요.” 내가 말했다.
경비병은 대답하지 않았다. 멀리서 율다가 손짓했다. ‘저 판은 처음에는 빈칸을 허용했어. 지금은 모두 채워져 있어.’
문 앞에는 우리 외에도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약품 운반꾼, 종을 고치러 온 대장장이, 창고에서 실종된 종추를 찾는 소년. 금색 판에는 이들이 전부 ‘입장 완료’로 표시돼 있었다. 그러나 실제 문은 잠겨 있었고 누구도 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나는 그 상황을 그림으로 그렸다. 사람들이 직접 확인한 것과 금색 장치가 주장하는 것을 나란히 놓자 경비병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는 자신도 관측대 내부 직원이 아니라 최근 고용된 문지기라고 했다. 열쇠가 없고 명단에 입장 완료로 표시된 사람을 들여보내지 말라는 지시만 받았단다.
“문지기가 문을 못 여는 건 좀 억울하겠네요.” 내가 말했다.
“당신이 제 상관에게 그 말 좀 해 주세요.”
그는 실소했다. 나는 그를 탓하지 않았다. 다만 오늘 실제로 입장한 사람을 확인하는 일부터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줄 서 있던 사람들이 차례로 자기 이름과 목적을 말했다. 율다는 손짓으로 답했고, 도겐은 그녀가 말한 내용을 그대로 적었다. 듣지 못하는 사람의 출입을 누군가 대신 완료 처리할 수 없도록.
한참 뒤 켈반이 내려왔다. 그는 우리에게 공개 조사란 관리소의 승인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말했다. 테온이 그에게 예전 루메르 왕실이 발급한 관측 면허를 내밀었다. 찢긴 왕관 조각을 맞춰 열 수 있는 봉인은 아니었다. 대신 옛 면허에는 주민이 안전 설비의 사용 기록을 열람할 권리가 적혀 있었다.
“왕국이 사라져도 이 문서의 효력은…” 켈반이 말을 흐렸다.
“효력이 남는지부터 법률가들이 다투겠지요.” 테온이 말했다. “그전에 지금 고원에서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위험을 피할지 설명해 주십시오.”
켈반은 관측대가 세운 새 경보 체계를 보여 주겠다고 했다. 동행할 수 있는 사람은 다섯 명이었다. 나는 한 명을 양보하고 율다가 들어가도록 했다. 그녀는 이 시설에서 실제로 소리가 끊기는 현상을 겪는 주민이었다.
실내는 생각보다 따뜻했다. 벽을 따라 종추가 아닌 수백 개의 작은 돌이 매달려 있었다. 금색 판에서 신호가 나면 그 돌들이 한 번씩 떨렸다. 켈반은 이것이 멀리 있는 모든 종의 진동을 읽어 자동으로 경보를 발송하는 장치라고 설명했다. 진동을 읽는 기술 자체는 정교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발송을 어떻게 확인합니까?” 헤론이 물었다.
“판에 불이 들어오면 자동으로 기록됩니다.”
“수신은요?”
“발송과 동시에 완료됩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럼 소리가 닿지 않는 집에서도 들었다고 기록되는 겁니까?”
켈반은 대답 대신 방 안쪽의 지도를 가리켰다. 그 지도에는 모든 마을이 금색으로 연결돼 있었다. 산등성이와 바람막이 절벽, 실제로 사람의 눈을 가리는 바위까지 무시한 곧은 선이었다. 어디에도 경고를 받지 못한 사람의 자리는 없었다.
“완벽해 보입니다.” 내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켈반이 답했다.
“그래서 더 무섭군요.”
율다는 자신의 집이 있는 곳을 손으로 짚었다. 그녀가 오늘 종을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는 사실을 적어 보였을 때 켈반은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에 빈칸이 있으면 중앙은 설비를 폐쇄하라고 할 겁니다.”
그 말에 나는 처음으로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그는 비밀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막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 같았다.
“설비가 폐쇄되면 어떤 일이 생기죠?”
“이 고원에는 경고를 보낼 방법이 없어집니다. 중앙에서 새 장치를 보낼 때까지 적어도 두 달은 걸릴 거예요.”
“이미 사람들이 깃발을 쓰잖아요.” 미라가 말했다.
“깃발은 서류에 있는 공식 방식이 아닙니다.”
미라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나는 그녀가 화를 낼까 걱정했지만 뜻밖에도 조용히 물었다.
“그럼 공식 방식이 사람을 못 구할 때, 사람을 구하는 건 누가 책임지죠?”
켈반은 금색 판을 내려다봤다. 대답하지 못한 그에게 나는 율다와 소하가 천막에서 노인과 임산부를 구조한 장면을 기록한 종이를 보여 줬다. 이 기록에는 공식 경보 대신 손짓과 깃발이 쓰였고, 구조된 두 사람도 직접 확인해 주었다.
“여기 빈칸이 생기면 고원이 폐쇄될 수 있다고요? 하지만 빈칸이 없으면 이미 받은 적 없는 경고가 계속 전달됐다고 기록됩니다.”
“대안을 내시오.”
켈반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거칠어졌다. 나는 그의 화를 당장 누그러뜨릴 수 없었다. 그래서 먼저 구체적으로 물었다. 오늘 그가 실제로 끌 수 있는 장치가 어디까지인지, 주민 명부를 고칠 권한은 누구에게 있는지, 관측대의 오래된 신호선은 남아 있는지.
대답은 뜻밖이었다. 신호선은 남아 있었다. 금색 판을 달기 전에는 세 개의 관측점에서 각각 신호를 보내고 주민이 받았다는 답신을 기록했다. 오래된 체계는 느리고 실수가 많아 폐기됐다고 했다. 그러나 폐기됐다는 것은 완전히 없앴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걸 다시 시험해 볼 수 있습니까?” 헤론이 물었다.
“금색 장치를 멈추면 중앙이…”
“먼저 멈추지 않고 시험하죠. 작동 범위를 겹치지 않게 표시하고.”
켈반은 오래된 수리도면을 꺼냈다. 여기에는 세 관측점을 잇는 선과 ‘영의 자리’라는 작은 방이 그려져 있었다. 영의 자리에는 종도 신호등도 설치되지 않았다. 오직 수신 여부를 적는 빈 판만 있었다.
“이 방은 왜 비워 뒀습니까?” 내가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이전 담당자가 반드시 남겨 두라고 해서…”
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건물 전체가 짧게 떨렸다. 금색 판 위에서 ‘경보 전원 수신 완료’라는 글자가 깜빡였다. 그런데 바깥을 볼 수 있는 좁은 창문에서는 검은 깃발이 여기저기 올라가고 있었다. 공식 경보가 아니라 주민들의 경고였다.
율다가 창가로 달려갔다. 그녀는 손짓으로 도겐을 가리켰다. 소년은 고원 길 끝에서 양팔을 크게 흔들고 있었다. 그의 뒤쪽 바닥이 움직였다. 산의 그림자가 바위에서 떨어져 나오는 것처럼, 오래된 돌다리 하나가 서서히 기울고 있었다.
우리는 문을 향해 뛰었다. 켈반은 우리보다 한발 먼저 출입 장치의 열쇠를 찾았다. 그러나 문 위의 금색 판은 이미 ‘대피 완료’라고 표시하고 있었다. 모든 사람의 이름이 실제로는 아직 건물 안에 있었다.
“당신 장부에 따르면 우린 벌써 나갔군요.” 내가 말했다.
켈반이 열쇠를 돌렸다. 이번에는 그의 손도 떨리고 있었다.
제126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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