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원에서 세 번째 밤을 보내던 날, 나는 종이 울리는 소리를 꿈에서 들었다. 쇳소리가 한 번, 두 번, 세 번. 마지막에는 어릴 적 아르켄의 시장 종이 섞였다. 꿈에서까지 고향이 이사를 다니다니. 눈을 뜨니 지붕이 낮은 진료소였고 미라가 내 이마에 차가운 천을 얹고 있었다.
“자면서 자꾸 누가 종을 쳤냐고 묻더라.”
“누가 쳤습니까?”
“아무도. 넌 꿈을 꿨어.”
나는 입술을 닫았다. 확인되지 않은 소리를 들었다고 장부에 쓰지 않겠다고 그렇게 떠들고 다녔는데, 정작 내 귀가 먼저 실수를 한 셈이었다.
율다는 아침부터 검은 천을 여러 장 꿰매고 있었다. 종을 대신할 깃발이라고 했다. ‘정지’, ‘화물 이동’, ‘서쪽 낙석’, ‘의료 지원’의 네 가지 신호를 모양으로 구분했다. 도겐은 고원의 아이들이 쓰는 손짓을 가르쳐 줬다. 말을 하다가 손으로도 말하게 되니 키오는 두 배로 시끄러워졌다. 음성은 한 명 몫인데 손까지 더해진 것이다.
헤론은 종창고에서 가져온 탁본을 펼쳤다. 세 개의 기호, 일곱이라는 숫자, 비워 두라는 영. 그는 고원의 관측대가 소리를 신호로만 사용한 게 아닐 수도 있다고 했다. 천문학자들은 먼 곳의 빛이 지형에 따라 도달하는 시간 차이를 측정할 때 종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소리가 전달되지 않는 공간에서는 그런 방식이 무너진다.
“그래서 관측을 중단했을까?” 테온이 물었다.
“가능성이네. 하지만 관측자가 직접 적은 이유를 찾아야겠지.”
정오에 우리가 진료소 앞에서 신호 연습을 하던 중, 멀리 있는 큰 종 하나가 갑자기 반대로 흔들렸다. 바람은 북동쪽에서 불었지만 종은 남서쪽을 향해 몸을 틀었다. 이번에는 율다도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손가락 두 개로 눈을 가리킨 뒤 서쪽 골짜기를 가리켰다.
“낙석 경고인가요?” 내가 물었다.
“아뇨. 눈으로 보는 시간을 잃을 수 있어요.”
그녀의 말뜻을 묻기도 전에 고원 아래에서 하얀 안개가 밀려 올라왔다. 안개는 낮게 깔리지 않았다. 사람 키 높이에서 팽팽한 천처럼 움직였다. 그 속으로 들어간 작은 새 한 마리가 날개를 펼친 채 순간적으로 멈춰 보였다. 다음 순간 새는 이미 반대편 바위에 앉아 있었다. 내 눈이 그 사이를 보지 못한 것이었다.
미라가 즉시 사람들을 진료소 벽 쪽으로 물렸다. “뛰지 마. 앞에 뭐가 있는지 보이지 않아.”
율다는 가장 큰 검은 깃발을 폈다. 인근 집들이 차례로 같은 깃발을 내걸었다. 종을 듣지 못한 사람들도 깃발만큼은 볼 수 있었다. 나는 고원 입구에 남긴 안전선부터 확인했다. 조금 전까지 있던 돌계단의 윗부분이 안개 뒤에서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사라진 것인지 보이는 순간이 잘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율다의 어린 조카 소하가 뛰어왔다. 그녀는 양손을 마구 흔들었다. 서쪽 진료 천막에 환자가 두 명 남아 있다는 신호였다. 율다는 그 천막을 어제 실제로 방문했고, 나는 그녀가 보여 준 길의 일부를 지도에 따로 적어 두었다. 하지만 지금의 안개가 통로를 막았을 수 있었다.
우리는 구조조를 둘로 나눴다. 나는 율다와 소하의 안내를 받아 천막 쪽으로 갔고, 미라는 테온과 함께 우회로의 발판을 확인했다. 헤론과 키오는 높은 지붕에서 깃발을 이어 보냈다. 누가 어디에 있는지 서로 보일 수 있도록 밧줄 한 가닥을 길게 풀었다.
천막 앞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세 걸음 앞에 있던 소하가 눈앞에서 사라졌다가 내 오른쪽으로 나타났다. 그녀가 뛰어간 것도 아니었다. 내 기억 속에는 그 사이의 장면만 비어 있었다. 나는 놀라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소하는 고개를 저으며 손짓했다. ‘나 여기 있었어. 아저씨가 나를 못 본 거야.’
안개 속에서 눈을 믿지 못한다면 무엇을 믿을까. 나는 몸을 낮춰 바닥을 살폈다. 소하의 장화 자국이 흙에 이어져 있었다. 내 손에 든 줄도 끊어지지 않았다. 별가루 지도를 펼치자 여전히 어제 확인한 짧은 길이 점선으로 남아 있었지만, 지금 위험한 구간은 빛나지 않았다. 나는 소하에게 발을 멈추라고 손짓하고 장대로 앞쪽 흙을 눌렀다. 발판 하나가 속으로 푹 꺼졌다.
“여기!” 내가 소리쳤으나 바로 옆에서도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손짓으로 다시 확인했다. 나는 무너진 발판 왼쪽의 단단한 땅을 손으로 쓸었다. 율다가 먼저 밟아 보고 안전하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 길을 따라 천막까지 도착했다. 안에 남은 사람은 기침이 심한 노인과 다리를 다친 채 숨을 고르던 임산부였다. 두 사람 모두 스스로 이동할 의사가 있었지만 빠르게 걸을 수는 없었다.
미라가 반대편에서 나타났다. 그녀는 커다란 천으로 접이식 운반 들것을 만들고 있었다. 테온은 들것 밑의 지지대가 사람 무게를 버틸 수 있는지 시험했다. 나는 노인에게 어디가 가장 아픈지 물었고, 율다는 입술을 읽는 대신 그에게 손바닥에 답을 써 달라고 했다. 불규칙하게 흐르는 안개 속에서는 시선과 목소리 모두를 믿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천막의 뒤편에 묶인 물통을 확인했다. 물이 반쯤 남아 있었지만 손잡이가 헐거워서 들것에 함께 실을 수 없었다. 미라는 천막에 표시를 남겨 다음 구조조가 물을 회수할 수 있게 하자고 했다. 지금 당장 사람을 안전하게 옮기는 일과 필요한 물자를 잃지 않도록 기록하는 일을 나눠 맡아야 했다.
우리는 두 사람을 차례대로 옮겼다. 바람이 세게 불자 안개가 둘로 갈라졌고, 그 사이로 고원 아래의 깃발들이 줄지어 보였다. 가까운 집부터 먼 집까지 서로 다른 모양의 깃발이 차례로 올라갔다. 누군가 종을 듣지 못했다고 해서 멈춘 마을이 아니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서로를 확인하는 다른 방법을 만들어 왔다.
진료소에 돌아와 인원을 세었을 때 소하가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노인과 임산부도 각각 직접 대답했다. 율다는 그들에게 마실 물을 건넸다. 나는 드디어 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관측대에서 금색 빛이 한 번 반짝였다. 그곳에서 내려온 전령이 문 앞에 섰다. 그는 켈반의 서류를 펼쳐 보였다. 오늘 고원 전체에 경고 종을 세 번 울렸으므로 대피 완료 처리를 하겠다는 통지였다.
“우리 아무도 못 들었어요.” 소하가 외쳤다.
전령은 곤란한 얼굴로 말했다. “장부에는 울렸다고 나왔는데요.”
율다는 종을 실제로 보았던 사람들의 이름과 깃발을 보고 움직인 사람들의 이름을 나누어 적기 시작했다. 노인은 검은 깃발을 보지 못했지만 소하가 손을 잡아 줬다고 했다. 임산부는 바닥에서 진동이 느껴졌지만 그게 종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전령은 그렇게 자세한 기록을 들고 올라가도 정정되지 않을 거라고 했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곧바로 화가 났다가, 그가 단지 통지서를 전달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그렇다면 원본을 같이 보러 가겠습니다.”
미라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이번엔 그냥 가면 안 돼. 올라갈 길부터 확인해야 해.”
“알고 있어요. 오늘은 제가 먼저 그 말을 하려고 했는데.”
그녀는 믿지 않았다. 나도 나를 조금 믿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급하게 지도통을 펼치지 않았다.
나는 소하가 남긴 발자국의 빈 구간을 바라봤다. 그 아이는 실제로 지나갔지만, 나는 그 순간을 보지 못했다. 본 적 없는 순간을 보았다고 적지 않는 것. 그게 지도 제작자의 일이었다.
그리고 고원 전체에 퍼지는 흰 안개 속에서, 종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세 번 크게 떨렸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발밑의 돌이 그것을 먼저 알려 주었다.
제125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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