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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별가루 지도 제작자 · 123화
PAYLUA ORIGINAL · 제123화

제123화 - 세 번 묶인 줄의 종지기

별가루 지도 제작자 · 3,587자

오프라인 책장
율다가 손짓으로 알려 준 방향에는 높고 검은 지지대가 서 있었다. 그 위에서 흔들리는 종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러나 종에 매달린 굵은 밧줄만큼은 바람과 다른 방향으로 당겨졌다. “사람이 있어.” 미라가 말했다. “어디?” “종 위쪽. 아래만 보지 마.” 나는 고개를 들었다. 가는 철제 사다리 끝에 한 사람이 매달려 있었다. 회색 외투의 밑자락이 지지대에 걸렸고, 그는 한 손으로 밧줄을 붙잡은 채 우리를 향해 무언가 외치고 있었다. 여기서는 들릴 리 없는 외침이었다. 키오가 달려 나가려 하자 율다가 그의 팔을 잡았다. 그녀는 발밑에 놓인 판을 들어 보였다. ‘가장 가까운 사다리는 반쯤 잘려 있다.’ 글자를 읽고 나서야 나는 벽 옆에 쓰러진 낡은 사다리를 보았다. 아랫부분만 멀쩡하고 위쪽의 경첩은 심하게 휘어 있었다. “왜 저 사람은 아래로 내려오지 못합니까?” 테온이 물었다. 율다가 손짓을 했고 도겐이 통역했다. “종을 놓으면 위에 있는 경고 깃발도 떨어져요. 서쪽 골짜기 사람들한테 위험을 알려야 한대요.” 종이 울리지 않는데 경고를 하겠다니. 나는 이곳의 사람들이 절망한 게 아니라 다른 방법을 찾았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위에 매달린 사람은 굵은 밧줄을 이용해 종 위의 흰 깃발을 흔들고 있었다. 먼 골짜기에서는 그 깃발을 보고 대피한다고 했다. 우리는 곧바로 구조 방법을 정했다. 테온이 사다리의 멀쩡한 부분을 분리해 지지대로 붙였고, 미라는 배에서 가져온 등반 밧줄의 매듭을 검사했다. 나는 위쪽 사람의 위치를 스케치했지만 그리면서 마음이 급해졌다. 위에 있는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이쪽으로!” 내가 외쳤다. 물론 그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율다가 두 손을 번쩍 펼쳤다. 손바닥을 좌우로 세 번 움직이자 그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한쪽 발을 조금 옮겨 철판 위에 올렸다. 그때 종이 크게 흔들렸고 지지대 아래에 있던 작은 바위들이 떨어졌다. 미라는 사람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향을 바꾸자고 했다. 종의 바로 아래는 위험했다. 우리는 뒤쪽 바위에 닻을 박고 줄을 삼각형으로 연결했다. 미라가 먼저 몸을 지지대 중간에 올렸다. 그녀는 바다에서 돛을 고칠 때처럼 침착하게 발판을 찾았다. 테온은 밧줄의 무게를 받고, 헤론은 깃발의 움직임을 기록해 골짜기로 전달할 수 있도록 했다. 율다는 바깥에서 손짓으로 상황을 알렸다. 마침내 미라가 그 사람에게 닿았다. 그녀는 종줄을 다른 고리에 묶어 깃발이 계속 움직이도록 한 뒤 그의 허리에 구조 밧줄을 걸었다. 둘은 아주 천천히 내려왔다. 바닥에 닿자 남자는 주저앉아 한동안 손가락을 펴지 못했다. “이름이 뭐죠?” 내가 물었다. 그가 입술을 움직였지만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소리가 돌아오는 구역으로 옮기자 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라슈. 종지기.” 라슈는 사흘 전부터 종지기 일을 대신하고 있었다. 원래의 종지기였던 아버지는 무릎을 다쳐 진료소에 누워 있다고 했다. 오늘 새벽에는 서쪽 골짜기의 얼음층이 들뜨기 시작했다. 소리가 전달되지 않으니 깃발로 알려야 했고, 밧줄이 끊어지면서 지지대 위에 갇혔단다. “왜 내려오지 않고 깃발을 계속 흔들었습니까?” 헤론이 물었다. “골짜기 사람들 중엔 종을 눈으로만 보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저 깃발마저 멈추면 아무도 위험을 몰라요.” 그가 말을 마치자 율다는 작은 판을 들어 보였다. ‘서쪽 골짜기 대피 완료. 다섯 가구 확인.’ 라슈는 눈을 감았다. 그는 무사히 돌아왔다는 기록보다 먼저 다른 사람들이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싶어 했다. 율다는 라슈의 손가락을 하나씩 펴서 굳은살을 살폈다. 엄지 밑의 피부가 찢어져 있었지만 움직이는 데 큰 문제는 없다고 했다. 라슈는 곧바로 다시 종을 관리하겠다고 주장했다. 미라가 그에게 적어도 오늘은 다른 사람이 깃발을 흔들게 하라고 하자 그는 처음으로 웃었다. “종지기라서 종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제가 누굴 지켜야 하는지 배웠네요.” 우리는 라슈의 손가락에 온기가 돌기를 기다렸다가, 위험한 사다리를 누가 언제 고쳤는지 물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사다리는 한 달 전만 해도 멀쩡했고, 최근 관측대에서 온 회색 마차가 지나간 뒤 경첩이 휘어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자신이 직접 본 것은 아니므로 확실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회색 마차. 백동상회도 경계작성회도 그런 색의 차량을 쓴다. 나는 이것을 곧바로 범인의 표시로 쓰지 않았다. 그런데 라슈가 외투 안쪽에서 작은 목패 하나를 꺼냈을 때는 마음이 달라졌다. 목패에는 ‘일곱 번째 고원종 — 관측 중단 완료’라고 적혀 있었다. 라슈는 관측 중단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일주일 전부터 매일 이 패가 같은 자리에 나타난다고 했다. 날짜는 새로 찍혀 있었지만 아래쪽의 손자국은 아주 오래된 것 같았다. “종을 울리지 말라는 명령 아닙니까?” 테온이 물었다. “아뇨.” 라슈가 목패를 뒤집었다. “종을 울렸다고 보고하라는 명령입니다.” 뒤쪽에는 ‘소리 확인: 완료. 수신인: 고원 전체’라고 적혀 있었다. 실제로는 누구도 종소리를 듣지 못했다. 누군가 소리를 보내지 못한 종을 보냈다고 기록하고, 듣지 못한 사람들을 들은 사람으로 처리하고 있었다. “수신인이 ‘고원 전체’라면 어느 집에서 들었는지도 묻지 않겠군요.” 내가 말했다. 율다가 종의 진동 범위를 그려 보였다. 실제 소리가 닿는 곳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이 날마다 달랐다. 한 개의 종으로 모두에게 경고를 보냈다고 처리하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라슈는 어깨를 굽혔다. “기록을 고치려 했어요. 그런데 관리소에서는 이미 전달 완료된 경고를 왜 다시 확인하냐고 하더군요.” 나는 그의 말을 듣다 손가락 끝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동결 서고의 사람 입고표, 별의 전당의 귀환증, 이제는 소리까지. 행정적인 ‘완료’가 현장의 위험을 가려 버리고 있었다. 미라가 라슈에게 밧줄의 상태를 다시 물었다. 끊어진 섬유 안쪽에는 새 칼자국과 오래된 마모 자국이 함께 있었다. 누군가 잘랐을 수도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고의성을 단정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잘린 조각을 따로 보관하고 라슈에게 직접 본 부분만 적게 했다. 저녁에 라슈는 우리를 관측대 아래의 창고로 안내했다. 창고에는 수백 개의 종추가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각 종추마다 해당 종의 번호와 ‘반납’ 날짜가 붙어 있었다. 문제는 반납한 사람의 칸이 모두 똑같은 필체였다는 것이다. 일곱 번째 종추의 표찰에도 라슈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는 반납한 적이 없었다. “제가 가져온다고 확인했으니까 이제 제 책임이 되는 건가요?” 라슈가 물었다. 나는 표찰을 떼지 않았다. 대신 그의 설명을 바로 옆에 적었다. 표찰을 지워 버리면 나중에 그 서명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으니까. 그날 밤 라슈의 아버지는 진료소 침대에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율다가 내게 손짓으로 옮겨 주었다. ‘종을 멈추게 한 날, 관측대에는 세 명이 있었어. 그런데 돌아온 사람은 한 명이 아니었지.’ 나는 그의 말뜻을 묻고 싶었지만 그는 다시 잠들었다. 세 명 중 누가 돌아왔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다만 다음 날 아침 그는 오래된 열쇠 하나를 보여 줄 수 있다고 했다. 관측대 창고의 밤은 깊었다. 멀리 있는 종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그 그림자 사이에서 세 번 묶인 줄 하나가, 바람과 반대로 천천히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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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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