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도겐의 집을 나서려는데 누군가 우리 짐 위에 작은 쇳조각을 올려놓았다. 손바닥만 한 종의 혀, 그러니까 종을 치는 추였다. 밑부분은 세모꼴로 갈렸고 윗부분에는 낡은 파란 실이 두 번 감겨 있었다.
“귀하신 손님에게 아침 선물인가?” 키오가 물었다.
“그럴 리가.” 나는 쇳조각을 손가락으로 뒤집었다. “우린 아직 요금도 안 냈어.”
미라는 단번에 만지지 않았다. 파란 실이 동결 서고에서 발견한 실과 닮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염료와 매듭 수가 다르다는 사실도 바로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지난번처럼 작은 종이봉투에 넣고 발견 장소와 시간을 적었다.
도겐의 어머니가 그것을 보고 얼굴이 하얘졌다. 고원 입구의 종추를 손에 쥐고 올라가는 사람은 길을 잘못 든 운반꾼이라고 했다. 종추는 원래 종 아래에 달려 있어야지, 사람이 들고 다니는 물건이 아니었다.
“누가 가져온 건가요?” 내가 물었다.
“모른다. 하지만 고원에 종이 안 울리기 시작한 해부터, 한밤중에 문 앞에 저게 놓이곤 했지.”
우리는 도겐을 데리고 새벽에 약상자를 꾸렸다. 어머니는 그가 어제 빠질 뻔한 수로를 다시 건너지 않도록, 동쪽 둑의 옛 돌길을 가르쳐 주었다. 길을 아는 사람이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은 고마웠지만 그것도 오늘의 길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미라와 나는 빈 짐수레를 먼저 굴려 경사를 시험했다. 바퀴가 두 번이나 돌틈에 걸렸다. 테온이 쐐기를 박고 판자를 고쳐서야 약상자가 안전하게 움직였다.
고원으로 올라가는 길은 생각보다 가팔랐다. 돌과 돌 사이에 검은 가루가 쌓여 있었다. 첫 낙성 뒤 바람에 날려온 별의 먼지라는 말도 있었지만 헤론은 확대경으로 살펴보더니 광산의 쇳가루와 섞여 있다고 했다. 바위에 붙은 것과 바닥의 것을 따로 채집하고, 출처는 미확정으로 남겼다.
세 번째 굽이에서 우리는 첫 종을 보았다. 사람 키의 두 배는 되는 청동종이었다. 두꺼운 들보에 묶인 종이 바람에 크게 흔들렸지만 소리는 나지 않았다. 안을 들여다보니 종추가 빠져 있었다. 흔들리는 건 겉껍데기뿐이었다.
“그래서 종 없는 고원인가?” 키오가 말했다.
“지금 확인한 건 종 하나야.” 헤론이 대답했다.
그 뒤로도 종이 열두 개나 보였다. 셋은 혀가 빠져 있었고 둘은 바위에 틀어박힌 채 움직이지 않았으며, 나머지는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을 만큼 높은 곳에서 서로 부딪칠 듯 흔들렸다. 그런데 마지막 일곱 개의 종에는 추도 달려 있었다. 미라가 밧줄을 당겨 가장 작은 종을 흔들었다. 눈앞의 금속이 진동하는데도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녀가 곧바로 줄을 놓았다.
“이건 달라.”
헤론은 금속의 떨림을 손끝으로 느끼고 내게 수첩을 펼쳐 보였다. 종의 진동이 없어진 게 아니었다. 진동은 분명히 있었다. 다만 귀로 전달되지 않았다. 우리가 서 있는 돌길 전체가 어딘가 무거운 천으로 덮인 것처럼 조용했다.
키오가 입을 벌려 무언가 말했다. 입술은 움직였지만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내 가슴이 철렁했다. 미라가 종의 매듭을 놓고 뒤로 두 발짝 물러나자 다시 그가 소리쳤다.
“왜 다들 저를 무시해요!”
“방금 소리가 안 들렸으니까!”
“제가요?”
“당신 목소리도.”
우리는 돌길에 줄을 긋고 소리가 사라지는 경계를 조사했다. 헤론은 모래알을 금속판 위에 뿌리고 작은 망치로 판을 두드렸다. 모래가 떨리는 모습은 보였지만 두 걸음 안쪽에서는 소리가 사라졌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도 그 경계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소리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듣는 쪽으로 오지 못하는 거군요.” 내가 말했다.
“적어도 지금 관측한 현상은 그렇네.” 헤론이 대답했다. “원인을 단정하긴 이르지.”
우리는 손짓 신호를 정했다. 주먹 하나는 멈춤, 손바닥 둘은 뒤로, 팔을 크게 휘두르면 사람이 다쳤다는 뜻. 도겐은 어릴 때부터 이 근처를 드나들어 수신호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안내해도 되느냐고 물었고, 미라는 약상자를 운반하는 동안만 함께해 달라고 했다.
종 사이의 계단은 어제 비가 내려 미끄러웠다. 아래쪽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틈이 있었다. 길이 제자리인지 확인하려는데 뒤편에서 갑자기 커다란 바위가 미끄러졌다. 키오가 발을 헛디뎌 난간에 매달렸다. 입술은 분명히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내가 달려들려 하자 테온이 먼저 바닥에 엎드려 밧줄을 잡았다. 미라는 발 디딜 곳을 짚었고 도겐은 손짓으로 오른쪽 길이 끊겼다고 알렸다. 나는 수첩에 있는 오래된 길을 펼쳤다가 즉시 접었다. 방금 무너진 길이 그려져 있었다. 이제는 사용할 수 없는 길이었다.
우리는 왼쪽에 남은 좁은 돌난간을 따라 줄을 늘렸다. 테온이 키오의 손목을 잡았고 미라는 뒤에서 몸을 받쳤다. 키오는 올라오자 한참 동안 바닥만 보았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에서 무너지는 바위를 봤다는 사실이 그를 더 떨게 했다.
“괜찮아?” 미라가 물었다. 귀가 다시 들리는 곳에 나온 뒤였다.
키오가 고개를 끄덕였다가 울상을 지었다. “아뇨. 제가 비명도 못 질렀잖아요.”
“그러니까 다음엔 손을 흔들어.”
“평소에는 말이 너무 많다고 하시더니요.”
“그건 평소 이야기지.”
고원 초입에는 양철 지붕의 진료소가 서 있었다. 문 앞에서 기다리던 여성은 우리를 보고 안도했다. 그녀는 자신을 ‘율다’라고 소개하고 도겐이 가져온 약을 빠르게 확인했다.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하던 그녀가 손으로 이상한 동작을 했다. 도겐도 같은 동작으로 답했다.
“여긴 모두 그렇게 말합니까?” 내가 물었다.
율다는 내 손을 잡아 자신의 귀 옆으로 가져갔다. 그녀는 왼쪽 귀에는 소리가 들리지만 오른쪽은 오래전에 손상됐다고 설명했다. 어떤 날에는 종 사이에 들어가지 않아도 고원 전체에서 말소리가 사라진다고 했다. 그래서 주민들은 소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손으로 대화하는 법을 배웠다.
“종을 고쳐야 할까요?” 내가 물었다.
“어떤 종은 고치면 안 돼요.” 율다가 대답했다.
“왜죠?”
그녀는 진료소 뒤쪽을 가리켰다. 평평한 지면 위에 종 일곱 개가 원형으로 매달려 있었다. 그중 한 개의 쇠추는 종 아래가 아니라 그 위쪽 지지대에 묶여 있었다. 마치 누군가 일부러 종을 울리지 못하게 해 놓은 것 같았다.
“고원에는 옛 관측대가 있어요. 낙성을 살펴보던 사람들은 종으로 시간을 알려 주었죠. 그런데 마지막 관측을 중단한 밤, 누군가 추를 빼고 이렇게 적었습니다.”
율다는 벽에서 작은 목판을 꺼냈다. 그 위에는 칼끝으로 새긴 짧은 문장이 있었다.
‘듣지 못한 사람의 귀환을, 들었다고 쓰지 말라.’
나는 그 문장을 세 번 읽었다. 누가 남긴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종이 울리지 않는 이유가 모두 같은 것은 아니었다. 어떤 종은 망가졌고, 어떤 종은 소리가 닿지 않았으며, 어떤 종은 누군가의 의지로 울지 않게 돼 있었다.
저녁에 미라는 도겐이 잃어버린 약상자와 새로 가져온 약의 수량을 따로 장부에 적었다. 율다는 실종된 약이 주민의 생존에 어떤 위험을 주는지 설명했고, 다행히 이번 약으로 급한 환자들은 며칠 버틸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현지 운반꾼에게 손짓 신호를 배우기로 했다.
나는 높은 종 아래에서 별가루 지도를 펼쳤다. 오늘 실제로 걸어온 둑과 계단만 가느다란 선으로 남았다. 소리가 사라졌던 두 걸음은 위험 표시로 남겼다. 그런데 목판의 문장을 필사하던 순간, 지도통 가장자리에 내가 쓰지 않은 글자가 떠올랐다.
[첫 관측 중단 — 발신인 셋, 수신인 영]
셋과 영. 미라의 은반지에 적힌 숫자가 머리를 스쳤다. 하지만 가운데 ‘일곱’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성급하게 뜻을 붙이지 않았다.
그때 고원 위의 가장 큰 종이 흔들렸다. 우리는 모두 그것을 보았다. 아무도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러나 율다만은 갑자기 고개를 들어 관측대 쪽을 가리켰다. 그녀의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였다.
‘저건 바람이 아니에요. 누군가 지금 저기서 줄을 당겼어요.’
제12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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