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없는 고원은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고 했다. 이상하게도 그곳으로 가는 첫걸음은 배를 타는 일이었다.
“북쪽이라면서 왜 남쪽으로 틀어?” 키오가 선미에서 물었다.
미라는 방향타를 놓지 않았다. “북쪽 얼음은 지금 저쪽으로 흐르거든. 배가 땅처럼 움직여 줄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잖아.”
나는 갑판 위에 펼친 지도를 붙잡았다. 갈퀴 부두의 오늘 수로는 다린이 직접 확인해 주었고, 동결 서고에서 관측탑까지의 목조 다리는 우리 발로 건넜다. 하지만 고원으로 이어진다는 항로는 낡은 이송 장부에 남은 이름뿐이었다. 별가루를 떨어뜨려도 그쪽에는 선이 생기지 않았다.
“안 보이는 길을 보이게 만드는 비법은 없습니까?” 키오가 물었다.
“있으면 내가 지금쯤 왕실 지도국장이겠지. 그리고 당신은 내 사무실 청소를 하고 있을 거야.”
“안 보여도 괜찮겠네요.”
미라가 웃었다. 헤론은 웃지 않았다. 그는 동결 서고에서 탁본한 출항 장부를 햇빛 아래 들고 있었다. 공식 첫 낙성일보다 앞선 날짜가 쓰여 있었지만 종이의 연대와 관측 기준이 같다고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연대가 오래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시간을 거슬러 갔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오나는 서고에 남아 보관함을 지키기로 했다. 피아는 안전장치를 수리하고 사르크는 원본을 빼돌리지 못하도록 자신의 폐쇄 명령서에 예외 조항을 적겠다고 했다. 다린은 한쪽 다리를 보호하는 보조기를 고쳐 매고 우리에게 짧은 수로까지만 동행했다. 자신이 가 본 마지막 지점이 어딘지 정확히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두 시간이 지나자 얼음 사이로 검은 갈대가 나타났다. 얼어붙은 바다의 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부드럽고, 육지라고 하기에는 물결이 깊었다. 다린은 닻을 내리라고 손짓했다.
“여기까지는 내 발로 확인했어. 저 언덕 아래에서 보급품을 넘겼지. 그다음은 고원의 운반꾼들이 맡았어.”
“그 운반꾼들은 돌아왔습니까?” 테온이 물었다.
“둘은 그날 저녁 돌아왔어. 하나는 여기서 본 적 없고. 죽었다는 뜻은 아니야. 다른 나루로 갔을 수도 있으니까.”
그는 옛 나무 말뚝 세 개를 보여 주었다. 가운데 말뚝에는 철고리가 남아 있었고, 양옆은 파도에 닳았다. 낡은 장부에는 가운데 말뚝에서 짐을 넘긴 흔적이 있었다. 다린은 말뚝의 흠집을 손으로 더듬더니 오래전에도 있었던 균열을 찾아냈다.
미라가 끼어들었다. “잠깐. 왼쪽 말뚝 아래 물이 거꾸로 움직여.”
자세히 보니 해류의 방향과 다른 거품이 수면 아래에서 올라왔다. 갈대밭 뒤로 땅이 잠겼다가 다시 떠오르고 있었다. 우리는 그대로 건너가지 않았다. 미라는 가벼운 빈 통을 물에 띄워 흐름을 확인했다. 통은 세 번 제자리를 맴돌다가 차가운 물속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육지처럼 보여도 거긴 물이다.” 미라가 말했다.
그 순간 갈대밭에서 짧은 비명이 들렸다. 젖은 외투를 입은 소년이 작은 짐수레를 끌다가 앞바퀴를 수면 아래 빠뜨린 것이다. 수레의 반대쪽은 갈대 뿌리에 걸렸고, 소년은 수레와 함께 기울어져 있었다. 물이 허리까지 차오르자 소년이 뒤로 넘어졌다.
“움직이지 마!” 미라가 소리쳤다.
그녀는 장대를 물에 찔러 깊이를 확인하고 밧줄을 던졌다. 나는 서둘러 별가루를 펼쳤다. 지도에는 소년 앞의 갈대밭이 흐린 먹빛으로만 보였다. 내가 실제로 걸어 본 길도, 확인된 보행 흔적도 없었다. 그 빈칸을 상상으로 메우는 대신 소년이 붙잡을 수 있는 말뚝과 밧줄의 위치를 표시했다.
테온이 판자 두 장을 엮어 임시 발판을 만들었다. 미라는 판자의 하중을 빈 자루로 시험했고, 헤론은 조수 변화가 멎는 간격을 세었다. 소년은 손이 굳어서 줄을 놓칠 뻔했다. 키오가 그의 이름을 물었다.
“도, 도겐!”
“좋아, 도겐. 오른손 말고 왼손으로. 네가 잡은 갈대는 뽑히고 있어.”
소년은 미라가 던진 매듭에 손목을 걸었다. 우리는 수레를 포기하고 그를 먼저 끌어냈다. 수레는 잠시 뒤 바닥이 꺼지는 소리와 함께 가라앉았다. 도겐은 잃은 짐을 보고 울먹였다. 수레 안에는 건조한 약초와 빈 편지 봉투가 들어 있었다고 했다.
“그래도 넌 건져 올렸잖아.” 미라가 말했다.
“그 편지가 고원에 꼭 가야 하는데요.”
나는 도겐의 말에 멈칫했다. 편지 봉투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건 쉬웠다. 하지만 배달해야 할 약을 기다리는 사람의 사정은 아직 몰랐다.
도겐은 마을에서 약을 실어 고원으로 올라가는 견습 운반꾼이었다. 서쪽 등성이의 임시 진료소가 환자를 돌보고 있다고 했다. 어제 고원에서 내려온 사람이 남쪽 길은 막혔으니 갈대 나루로 돌아가라고 알려 줬단다.
“그 사람은 누군데?” 내가 물었다.
“얼굴은 못 봤어요. 종을 달고 있었거든요.”
“종?”
“네. 그런데 소리가 안 났어요. 그래서 고원 사람이 맞겠구나 했죠.”
도겐이 가리킨 방향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뿐이었다. 나는 그 말을 그대로 수첩에 적었다. ‘도겐이 들은 안내. 안내자 미확인. 소리 나지 않는 종을 달았다고 진술.’
테온이 마른 외투를 빌려 주었다. 고원까지 약을 옮기는 일은 아직 가능할지 몰랐다. 수레는 잃었지만 도겐이 집에 보관한 여분 약상자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미라는 배를 안전한 말뚝에 묶고, 다린과 함께 물길을 되짚어 도겐의 집까지 가기로 했다. 나와 테온, 헤론, 키오는 도겐이 실제로 다닌 서쪽 둑의 발판을 확인했다. 오래된 돌계단 일곱 개가 갈대 속에 묻혀 있었고, 끝의 두 개는 물에 잠겨 있었다.
우리는 길가에 버려진 작은 등잔도 발견했다. 등잔 안쪽에는 소금이 굳어 있었고 바깥에는 손톱으로 긁은 듯한 다섯 줄이 남아 있었다. 도겐은 고원 운반꾼들이 짐을 내려놓을 때 그을음으로 날짜를 세곤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등잔을 누가 놓았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나는 등잔을 원래 자리에 두고 위치만 남겼다.
우리는 물 밖의 다섯 계단에만 표시했다. 여섯 번째가 보이는 순간에도 곧바로 길을 잇지 않았다. 헤론이 구름과 바람을 살폈고 키오는 도겐이 기억한 홍수 날짜를 대조했다. 어떤 길이 어제 존재했다는 사실은 오늘의 안전을 보증하지 않았다.
저녁에 우리는 도겐의 집 헛간에 모였다. 미라는 내게 작은 항해일지를 내밀었다. 다린이 마지막으로 물건을 넘긴 장소를 그림으로 그려 준 것이었다. 잉크가 오래돼 번져 있었지만 말뚝과 검은 갈대 사이의 거리는 오늘 직접 잰 길이와 거의 같았다. 그때서야 지도에 나루의 짧은 선이 생겼다.
밤이 찾아오자 북쪽 언덕 너머에 검은 띠가 드리워졌다. 띠의 위쪽에는 건물인지 바위인지 모를 수많은 그림자가 서 있었다. 그런데 바람이 강해져도 종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도겐은 그 그림자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가 종 없는 고원이에요. 원래는 종이 수백 개 걸려 있었다는데, 어느 날부터 아무도 못 듣게 됐대요.”
“종이 사라졌다는 말이 아니군.” 헤론이 중얼거렸다.
“그렇죠. 눈에는 보여요.”
나는 젖은 지도 가장자리에 작은 글자를 썼다. ‘고원으로 가는 나루 — 다린과 도겐의 서로 다른 시기 증언, 오늘 일부 구간 확인.’ 그리고 종 없는 고원에 대해서는 아무 선도 그리지 않았다.
그날 밤 별가루 지도통 안쪽에서 낯선 무늬가 떠올랐다. 모양은 동그란 종 같았지만 가운데를 울려야 할 추는 없었다. 그 아래에는 짧은 문장이 적혔다.
[종을 듣지 못하는 것은, 종을 울린 사람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나는 그 뜻을 알아냈다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어쩐지 고원에서 사라진 것이 소리만은 아닐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제121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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