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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별가루 지도 제작자 · 120화
PAYLUA ORIGINAL · 제120화

제120화 - 백스무 번째 지도와 얼음 아래 남은 자리

별가루 지도 제작자 · 4,474자

오프라인 책장
나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지도를 잘 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제는 한 가지를 추가해야 할 것 같았다. 날짜를 마음대로 바꾸는 사람이었다. 지도는 적어도 나침반을 대고 검증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이 미리 써 둔 내일은 어디에 대조해야 할지 쉽지 않았다. 동결 서고에서 빠져나온 우리는 갈퀴 부두로 향하지 않았다. 아직 관측탑의 그림자가 남아 있었고, 서고 안에는 사람들이 돌아온 뒤에도 보존해야 할 원본이 있었다. 다만 모두를 다시 안쪽으로 데려갈 수는 없었다. 오나는 피아와 베른을 맡아 임시 대피소로 갔다. 사르크는 폐쇄 명령서를 정정해야 한다며 우리와 함께 남았다. “당신이 왜 남습니까?” 테온이 물었다. “내가 서고를 닫으라고 했으니까, 누가 무엇을 고쳤는지도 보고해야죠.” 나는 그가 마음을 완전히 바꿨다고 단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실제로 사람을 구하는 데 참여한 것은 확인할 수 있었다. 오늘의 기록에는 그 사실을 적을 수 있었다. 우리는 먼저 두 시계를 비교했다. 관측탑의 그림자 고리는 다섯 번째 낮을 가리켰다. 서고 안쪽의 금색 장치는 일곱 번째 낮을 표시하고 있었다. 헤론은 원래의 수리 일지에 적힌 톱니의 수를 세었다. 금색 장치에서는 두 개의 톱니가 다른 크기로 교체돼 있었다. 한 번 움직일 때 바늘이 조금 더 빨리 도는 구조였다. “누군가 서고의 날짜를 앞당겼군요.” 내가 말했다. “서류의 자동 개봉 시점도 달라졌을 거야.” 헤론이 답했다. 우리는 도선사 다린의 오래된 고리와 관측탑의 시간표를 대조했다. 두 물건이 완전히 같은 기준을 썼다고 증명되지는 않았다. 다만 서고에 남은 원래의 수리 기록에는 외부 고리의 일곱 번째 그림자를 기준으로 봉인을 열도록 되어 있었다. 금색 장치가 계산한 날짜는 그 기준을 따르지 않았다. 그 차이를 오나가 직접 확인하고 서명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서고 정문에 걸린 작은 유리창 안에서 붉은 봉투가 서서히 흔들리고 있었다. 서고 안쪽에는 아직 기계가 닫히지 않은 곳이 남아 있었다. 원본을 꺼내려면 수압이 낮아지는 짧은 시간에 들어갔다 나와야 했다. 미라는 내게 물었다. “이걸 위해 다시 들어갈 생각이야?” “들어가자고 하기 전에 나올 길부터 확인하겠습니다.” 다린은 바깥 수로를 실제로 돌아보겠다고 했다. 테온은 목조 다리의 보수 상태를 확인했다. 사르크는 안전장치를 작동하는 손잡이를 직접 시험해 보였다. 나는 이 모든 행동을 기록한 뒤, 미라와 함께 들어가기로 했다. 아무리 중요한 원본이라도 우리가 돌아올 방법이 없다면 이번에는 포기할 생각이었다. 서고 안쪽은 이상하게 조용했다. 금색 장치의 열이 사라지자 얼음벽은 다시 차가워졌고, 그 안에 낯선 그림자가 여러 개 겹쳐 보였다. 나는 그림자의 주인이 누구인지 상상하지 않았다. 미라가 줄을 잡은 손으로 내 소매를 당겼다. “오른쪽, 발자국 두 개.” 우리는 실제로 남아 있는 발자국을 따라갔다. 서명 보관실 뒤편의 작은 배수로에서 오래된 종이 상자가 발견됐다. 상자에는 루카스의 이름이 있었지만 수령란에는 아무 이름도 없었다. 금색 복제판을 통과하기 전의 원본 서류였다. 상자 안에는 에르안의 관측 중단 원안과 일곱 번째 낮에 열도록 보낸 서신이 있었다. 우리는 수신자 확인 절차를 지키기로 했으므로 봉인을 바로 뜯지 않았다. 대신 겉면에 남은 문장을 읽었다. ‘관측자는 돌아오지 않았고, 기록은 여기까지 돌아왔다. 그 둘을 혼동하지 말 것.’ 그 문장은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맨 경고와 맞닿아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에르안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수십 년 전의 문장을 발견했다고 해서 수십 년 전의 사람이 현재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미라가 상자 아래쪽에서 조그만 목패를 꺼냈다. 목패에는 파란 실이 묶여 있었다. ‘이아 — 구조정 탑승 확인. 갈퀴 부두 상륙 확인.’ 다린이 말했던 아이의 이름이었다. 그 아래에는 또 다른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이아에게서 봉인 수신 확인을 받을 것. 대리 개봉 금지.’ “그 아이가 지금 살아 있다면?” 미라가 물었다. “직접 물어봐야겠지.” “살아 있지 않다면?” “그 사실도 확인해야 하고. 그러기 전엔 누구 이름으로도 열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상자를 들고 돌아섰다. 방 안쪽에서 낮은 진동이 울렸다. 나는 가슴이 철렁했지만 이번에는 미라가 먼저 발을 멈췄다. 바깥에서 사르크가 안전장치를 시험하는 소리였다. 우리는 정해 둔 신호로 응답하고 미리 확인한 배수로를 따라 나왔다. 서고의 밖에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피아는 오나와 함께 수기 온도표를 가져왔고, 다린은 우리 배가 있는 곳까지 안전한 수로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을 때 나는 발견한 사실을 순서대로 설명했다. 서고의 금색 시간 장치는 조작돼 있었다. 다린의 첫 귀환증은 사람의 귀환이 아니라 부표의 회수 기록이었다. 루카스의 자료 인수는 확인됐지만 본인의 귀환은 아직 미확정이었다. 에르안의 관측 중단은 원안에서 확인됐지만 그의 현재 행방은 알 수 없었다. “결국 아무것도 완성되지 않은 거군요.” 베른이 말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오늘 살아 나온 사람들의 기록은 완성됐어요. 오래된 사건은 아직 확인 중이고요.” 헤론은 동결 서고의 원본을 보존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각 문서의 존재와 위치를 세 사람이 다른 종이에 기록하고, 하나는 서고에, 하나는 갈퀴 부두에, 하나는 별의 전당에 두는 것이다. 오나는 거기에 한 가지 조건을 더했다. 그 문서를 보관하는 사람이 기록의 주인이 될 수는 없다는 조항이었다. 테온이 웃었다. “그건 왕실에도 필요한 규칙이겠군요.” 미라는 내게 붉은 실과 파란 실을 나눠 보여 주었다. 어느 것도 동생의 생존을 증명하지 못했다. 그러나 누군가 다른 날짜에 실제로 메시지를 옮겼다는 경로는 조금씩 확인되고 있었다. 그녀는 그 사실을 슬퍼하지도, 기뻐하지도 않고 조용히 받아들였다. 저녁이 되자 다린은 우리에게 옛 이송 장부의 마지막 장을 보여 주었다. 거기에는 서고에서 더 북쪽으로 향한 관측대의 출항 기록이 있었다. 목적지는 ‘종 없는 고원’. 바다를 건너간 사람 중 한 명이 실제로 돌아와 갈퀴 부두에 흔적을 남겼지만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다. 다린은 그 길을 끝까지 가 보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그럼 이번에도 처음부터 확인해야겠네요.” 내가 대답했다. 헤론은 출항 기록의 날짜를 세며 얼굴을 굳혔다. “여기 보게. 이 기록은 첫 낙성의 날짜보다 앞서 있네.” “그렇다고 누가 미래를 다녀왔다고 단정할 수는 없죠.” “그래. 기록의 연대부터 따져야겠지.” 나는 백스무 번째 지도의 한 귀퉁이에 서고에서 실제로 돌아온 열일곱 사람의 길을 그렸다. 다른 쪽에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북쪽 항로를 빈칸으로 남겼다. 그리고 지도의 가장 아래에 작은 문장을 적었다. ‘돌아온 기록과 돌아온 사람은 다르다.’ 별가루가 그 문장의 가장자리를 조용히 반짝였다.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내지는 않았다. 대신 오늘 우리가 실제로 오간 화물문과 관측탑의 목조 다리가 희미하게 빛났다. 나는 그 빛을 보며 조금 웃었다. 지도 제작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지도 제작자가 세계를 지운다.’ 아르켄이 사라지던 날 봤던 예언이 문득 떠올랐다. 당시에도 나는 그 문장을 문자 그대로 믿을 뻔했다. 하지만 왕도는 땅에서 사라지고도 사람들과 함께 다른 곳에 남았다. 예언이 거짓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그 뜻을 틀리게 읽었다. 마지막 별의 문장도 그러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멋대로 해석을 바꿔 안심할 이유는 없었다. “네가 또 혼자 무서운 생각을 하네.” 미라가 말했다. “내가 그린 지도 때문에 누군가 사라지면 어떡하지 싶어서요.” “오늘은 네 지도를 보고 열일곱 명이 나왔어.” “그건 지도가 한 일이 아니라 사람들이 직접 걸은 일이죠.” 미라가 기다렸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다면 내일도 사람들이 직접 걸을 수 있게 그려. 그 이상은 네가 독차지할 일이 아니야.” 테온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옛 왕실의 이름으로 모두의 선택을 대신하려 했던 사람들, 금색 사본에 남의 귀환을 찍은 사람들. 그들의 실수는 미래를 본 데 있지 않았다. 자기 판단 하나로 다른 사람의 자리를 닫아 버린 데 있었다. 나는 예언이 두렵다고 해서 펜을 놓지는 않기로 했다. 대신 한 사람의 손으로 결말을 완성하려는 유혹을 더 경계하기로 했다. 밤이 깊자 서고의 흰 탑 위에서 열 번째 별이 다시 보였다. 헤론은 그 빛의 각도를 측정했다. 미라는 출항을 준비했다. 테온은 원본 서류를 여러 사람에게 나눠 맡겼다. 키오는 누보에게 줄 뜨거운 빵을 챙겼다. 나는 펜을 들고 다음 지도의 첫 빈칸을 바라봤다. 그곳에 아직 이름을 적지 않았다. 그리고 어딘가 아주 먼 곳에서 종소리 없는 진동이 바다를 건너왔다. 얼음의 표면에 한 줄의 오래된 글씨가 드러났다. [종 없는 고원 — 마지막 별의 관측을 중단한 자가 지나간 장소] 나는 그 문장을 천천히 읽었다.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더 이상 단순한 보관소가 아니었다. 처음으로 관측을 멈춘 사람이 실제로 걸어간 길의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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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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