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결 서고의 편지는 수신인을 기다리는 대신 낮을 세고 있었다. 일곱 번의 낮이 지난 뒤에만 열 수 있다는 오래된 봉인법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낮의 길이 일정하지 않았다. 어떤 날은 두 시간 만에 해가 졌고, 어떤 날은 다음 아침까지 하늘이 밝았다.
“그럼 일곱 번째 낮을 어떻게 압니까?” 내가 물었다.
오나는 작은 청동 고리를 꺼냈다. “서고 바깥 관측탑의 그림자가 기준이에요. 하늘이 아니라 실제 그림자가 일곱 번 같은 선을 지날 때를 세죠.”
헤론은 고리의 위치를 측정했다. 관측탑은 낙성 전에 지어진 건물이었다. 그 뒤로 벽이 세 번 옮겨졌지만 기단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림자가 고리 위를 지나가는 것과 오래된 일지의 관측값을 함께 확인해야 했다. 나는 또다시 숫자를 세는 일이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 싫어졌다.
파란 실로 묶인 봉투를 조사하던 중 피아가 한 가지 발견했다. 봉투의 표면에는 발송자의 이름이 없었지만 봉인 아래에 아주 얕은 홈이 있었다. 다린이 가져온 선박용 고리와 비슷한 표시였다. 미라의 은반지에는 `3·7·0`이 새겨져 있었다. 세 물건을 비교하자 고리의 작은 흠집이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같은 번호인데 왜 다르죠?” 키오가 물었다.
“다른 배에 실린 물건일 수 있지.” 미라가 말했다. “배에서는 같은 표식을 두고도 화물칸에 따라 위치를 달리 표시해.”
다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세 날은 도착을 기다리고, 다음 일곱 날은 구조를 확인하고, 마지막 영은 모른다고 남기는 표시였어.”
우리는 그의 말을 기록했다. 그러나 다른 항구에서도 같은 뜻으로 사용됐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항해사들은 언제나 자신이 쓰던 규칙이 세상의 유일한 규칙이 아니라고 경고했기 때문이다.
관측탑에 올라가는 길은 서고 북쪽의 오래된 목조 다리로 이어졌다. 나는 다리의 기둥 간격을 재고 미라와 함께 밧줄을 확인했다. 피아는 오늘 얼음의 균열 위치를 표시했다. 다리를 건너던 중 뒤에서 급한 발소리가 났다. 보급품을 싣고 오던 남자가 미끄러졌다. 두 번째 기둥의 나무 발판이 이미 썩어 있었다.
“서지 마!” 미라가 외쳤다.
남자는 짐꾸러미를 놓고 난간을 잡았다. 우리는 몸을 낮춘 채 차례로 다가갔다. 테온이 밧줄을 돌기둥에 걸었고 다린은 아래쪽의 얼음이 실제로 견딜 수 있는지 장대로 두드렸다. 나는 보급품을 먼저 구하자는 남자의 말을 듣지 않았다. 짐은 밑으로 떨어졌지만 남자는 무사히 돌아왔다. 그의 이름은 베른이었다. 그는 서고의 식량을 운반해 온 사람이었다.
“경계작성회 물건입니다.” 베른이 바닥을 보며 말했다.
“잃어버렸다고 배상하라면 오늘의 구조기록을 내시죠.” 내가 말했다. “그래도 배상하라고 하면 저희가 증언하겠습니다.”
베른은 웃지 못했다. 그래도 내 손을 꼭 잡았다. 다린이 그를 건너게 도왔고 오나는 서고의 입고 장부에 사람의 귀환과 화물의 유실을 나눠 적었다.
관측탑 위에서 우리는 구름이 열리는 순간을 기다렸다. 빛은 서고의 기단을 지나 작은 청동 고리에 닿았다. 헤론이 각도를 재고 피아가 시간을 적었다. 다른 날짜의 관측표와 비교하자 오늘이 봉인 기준의 다섯 번째 낮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봉투를 지금 열면 안 되는 이유가 있었다. 일곱 번째 낮 전에 발송인이나 수신인이 돌아와 직접 받을 가능성을 남겨 두기 위한 규정이었다.
“그럼 이틀을 기다립니까?” 키오가 물었다.
“대체로 그렇지.” 오나가 대답했다. “하지만 이곳의 이틀이 우리가 아는 이틀과 같을지는 모르겠구나.”
우리는 서고로 내려오며 빈 장부를 만들었다. 발송자를 확인할 수 없는 우편물은 누구의 이름으로도 임의로 개봉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사람의 안전을 위협하는 내용이 있을 가능성에 대비해 봉투의 보존 상태와 관측탑의 진행 시각을 공개하기로 했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합의할 수 있는 선이었다.
관측탑에서 내려온 뒤 우리는 봉투의 바깥쪽에 붙은 작은 봉인띠를 검사했다. 봉인띠는 종이와 다른 재질이었고, 가장자리에는 삼각형의 홈이 있었다. 오나는 이를 수신처가 확인되지 않을 때 쓰는 표준 표식이라고 했다. 미라는 자신의 동생이 쓰던 도구에도 비슷한 홈이 있었다고 기억했지만, 같은 사람이 만들었다고 단정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갈퀴 부두의 오래된 우편 명부를 펼쳤다. ‘이아’라는 이름은 세 번 등장했다. 구조정에서 내린 아이, 열두 해 뒤에 선박 수리부품을 맡긴 사람, 그리고 작년 부두를 지나간 방문객. 세 기록은 같은 사람이었을 수도 있고 동명이인이었을 수도 있었다. 나이와 행색이 서로 달라 바로 이어 붙일 수 없었다. 나는 각 시기의 별도 인물번호를 임시로 붙여 보존하기로 했다.
“이아를 찾으면 편지를 열어도 됩니까?” 키오가 물었다.
“그 사람이 이 봉투의 수신인인지 확인해야지.”
“확인한 뒤에는요?”
“그 사람의 의사를 물어야겠지.”
키오는 한숨을 쉬었다. “세상 구하는 일이 너무 까다롭네요.”
“허술하게 하면 다른 사람의 세상을 망가뜨리니까.”
그때 다린이 바닷물 냄새가 나는 작은 상자를 가져왔다. 일곱 날 동안 구조한 아이들이 쓰던 목패였다. 거기에는 이름뿐 아니라 구조 당시 배 안에서 입던 옷 색깔이 적혀 있었다. 명부의 첫 번째 이아는 푸른 외투를 입고 있었다. 세 번째 방문객의 기록에는 붉은 소매라고 쓰여 있었다. 두 기록을 바로 합칠 수 없다는 증거가 하나 더 생긴 셈이었다.
우리는 수신인 찾기 공고를 쓰기로 했다. 봉투의 내용은 공개하지 않고, 이아라는 이름과 당시에 구조정에서 내린 사람의 목격자를 찾는다는 내용만 남겼다. 미라는 공고 끝에 세 번 울리고 두 번 대답하는 신호를 쓰자고 했다. 하지만 곧 스스로 줄을 그었다. 그 신호를 아는 사람이 많아지면 나중에 진짜 발신자를 확인하기 어려워진다고 했다. 대신 부두 사람들만 알 수 있는 오래된 장소 이름을 적었다.
나는 그녀가 줄을 긋는 모습을 보았다. 누군가를 찾고 싶다고 해서 그 사람만 아는 것을 모두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기다림에도 지켜야 할 경계가 있었다.
그날 밤 미라는 내게 자신의 동생 이야기를 조금 더 했다. 어릴 때 둘은 항구의 종이 서로 다른 날짜에 울리는지 시험하곤 했다고 했다. 동생은 매번 같은 질문을 했다고 했다. ‘언니가 돌아왔는데 아무도 보지 못하면, 언니는 돌아온 걸까?’ 미라는 그때마다 ‘내가 보면 됐지’라고 대답했다.
“이번엔 누가 나를 봐 줄까?” 미라가 중얼거렸다.
“여기 있습니다.” 나는 말했다.
“넌 늘 보고도 믿기 전에 대조부터 하잖아.”
“그럼 제가 먼저 봤다고 적고, 믿는 건 나중에 할게요.”
그녀가 웃었다. 우리는 선실에서 아주 오래 종이 넘기는 소리를 들었다.
다음 날 아침, 관측탑 아래의 얼음에 파란 실이 새로 묶인 작은 나무패가 나타났다. 누군가 밤새 와서 걸고 간 것 같았다. 패에는 날카로운 도구로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일곱 번째 낮을 기다리지 마. 기록을 먼저 옮기면 사람이 지워진다.’
나는 그 문장을 읽고 곧바로 서고를 향해 뛰었다. 기다리는 것이 사람을 보호하기도 하지만, 기다리는 동안 누군가 기록을 가져갈 수도 있었다. 우리는 이제 두 위험 사이에서 길을 찾아야 했다.
제118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