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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별가루 지도 제작자 · 117화
PAYLUA ORIGINAL · 제117화

제117화 - 돌아오지 않은 서기의 서명

별가루 지도 제작자 · 3,526자

오프라인 책장
동결 서고에는 유난히 비싼 잉크가 있었다. 열을 가하면 검게 변하고 차가워지면 다시 푸른빛을 띠는 잉크였다. 나는 가격표를 보고 잠시 정신을 잃을 뻔했다. 종이 한 장에 그런 잉크를 쓰려면 아르켄에서 한 달은 굶어야 했다. “누가 이런 걸 사죠?” 오나가 대답했다. “기록을 나중에 바꾸려는 사람과, 바꿨다는 사실을 막아 보려는 사람이요.” 둘 다 설명이 불길했다. 오나는 구분하는 방법이 있다며 작은 시험지를 꺼냈다. 오래된 원본에서는 잉크의 결정이 종이 깊숙이 남아 있었다. 최근 만든 사본은 표면에만 색이 묻어 있었다. 보존된 서류가 진짜라는 뜻은 아니지만, 적어도 어느 시기에 기록됐는지는 추적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루카스의 자료 인수 기록이 남은 서류함을 찾아갔다. 서류함은 얼음 벽 안에 박혀 있었고, 안쪽에는 종이가 아니라 얇은 납판이 여러 겹 들어 있었다. 첫 판에는 서류를 받은 사람이 적혀 있었다. ‘루카스 — 인수.’ 두 번째에는 ‘에르안 — 관측 중단.’ 세 번째에는 아무 글도 없었다. 네 번째에는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문구가 열기에 따라 나타났다. ‘자료 운송은 귀환이 아니다. 수신자 확인 전 완료 사본 제작 금지.’ 헤론이 긴 숨을 내쉬었다. “우리가 의심했던 구분이 이곳에도 남아 있군.” “하지만 이게 루카스가 직접 쓴 것이라는 증거는 아직 없습니다.” 내가 말했다. 오나는 제본 안쪽의 작은 구멍을 보여 주었다. 그곳에는 당시 서기들이 쓰던 압인 방식이 남아 있었다. 서로 다른 글씨를 가진 사람이 납판 세 곳을 각각 눌러 만들었다는 것이다. 같은 도장을 찍었다면 홈의 방향이 똑같았겠지만 달랐다. 나는 탁본을 세 장 만들고 원본 위에는 아무것도 긋지 않았다. 이때 페르딘이 나타났다. 별의 전당에서 동결 서고로 보낸 원본 대조 요청서를 들고 왔다고 했다. 오나는 그를 들어오게 할지 망설였지만, 그의 실제 신원과 오늘 도착 사실을 확인한 뒤 열람실까지만 허가했다. 페르딘은 납판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경계작성회 본부의 기록에는 이런 판이 없습니다.” “없다고 말하는 건 본부에서 못 봤다는 뜻이죠?” 내가 물었다. “맞습니다.” 그는 씁쓸하게 답했다. “이제는 그 차이를 알아들어요.” 그는 본부에서 새로운 명령이 내려왔다고 했다. 미확정 서류는 보존 비용이 많이 드니 금색 사본으로 통합하고, 출입 장치를 정상화하라는 내용이었다. 만약 오늘까지 처리하지 않으면 서고의 식량 공급을 중단하겠다는 조항도 있었다. 피아가 그 말을 듣고 입술을 깨물었다. 서고 바깥에는 추위에 고립된 주민도 있었고 식량은 대부분 본부를 통해 들어왔다. “문제를 알고도 명령대로 합치면요?” 테온이 물었다. “내 자리는 지킬 수 있을 겁니다.” 페르딘이 말했다. “그럼 나중에 기록에 없는 사람이 생기겠죠.” 그날 오후 우리는 창고의 실제 식량을 먼저 세었다. 밀가루 두 자루, 말린 생선 여섯 묶음, 소금과 조개껍질 연료 몇 상자. 다린은 갈퀴 부두로 돌아가면 이틀치 식량을 보낼 수 있다고 했다. 미라는 ‘어제의 파도’의 비축분 중 일부를 내놓겠다고 했다. 나는 항해 비용을 계산했다가 수첩을 덮었다. 세상이 사라지면 채권도 소멸한다는 사실을 이미 아르켄에서 배웠다. 오나는 명령서를 받아 들었다. 그는 아직 어느 기록을 이관할지 결정하지 않았다. 대신 본부에 오늘의 입장 장치 오작동과 구조 기록을 통보하자고 제안했다. 페르딘은 한참 고민하다 그 문서의 수령 확인자로 서명했다. “당신이 쓴 서류라면 사람들이 믿을까요?” 키오가 물었다. “아마 덜 믿겠지.” 그가 말했다. “그래도 내가 실제로 본 건 적어야 하니까.” 식량 문제를 해결하려고 우리는 우선 선박의 비축 목록을 펼쳤다. ‘어제의 파도’에 남은 마른 빵은 삼십 인분이었다. 오나는 서고 근무 인원과 갈퀴 부두에서 보급받을 수 있는 시간을 계산했다. 그 결과 하루치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 다음 배가 오기 전까지 버틸 수 있었다. 나는 내 몫을 양보하겠다고 했지만 미라가 단호하게 거절했다. “넌 굶으면 지도가 더 이상해져.” “원래 좀 이상한데요.” “그러니까 먹으라고.” 페르딘은 그 계산을 지켜보다 자신도 도울 일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본부 명령에 붙은 식량 반출 조건을 다시 읽었다. 원본을 당장 합치지 않으면 보급을 끊는다는 문구 아래에 작은 예외 조항이 있었다. 인명 구조와 시설 위험이 정식으로 보고되면 공급 중단을 재심사하도록 되어 있었다. 서명을 합치는 기술보다 그 문장을 발견하는 능력이 오늘은 더 중요했다. 우리는 피아와 오나의 실제 진술을 바탕으로 위험 보고서를 작성했다. 나와 헤론은 손으로 확인한 수문 위치를 그렸고 사르크가 설치한 덧판은 어디에서 발견했는지 표시했다. 페르딘은 자신이 현장에 오기 전에 있었던 일은 증언으로만 기록하고, 직접 보고 난 뒤의 장치 상태에는 자기 이름을 적었다. “승인될까요?” 피아가 물었다. “그건 저도 모릅니다.” 페르딘이 답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진술을 빼고 작성한 보고서보다는 낫겠죠.” 그가 오늘 처음으로 상관의 직인보다 피아의 서명을 먼저 받은 순간이었다. 나는 그 장면이 작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행동이 바뀌는 건 거대한 예언보다 분명한 사건일 때가 있었다. 저녁이 되자 서고 바깥에서 작은 화톳불이 켜졌다. 우리는 주민들과 함께 빵을 나눠 먹으며 출입 장치가 고장 났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수기 장부를 만들었다. 한 사람은 이름을 읽고, 한 사람은 얼굴을 확인하고, 한 사람은 들어온 시간을 적었다. 어떤 항목을 확인할 수 없는 사람은 미확정이라고 적었다. 간단한 절차였지만 모두가 기꺼이 도왔다. 그 밤 오나는 우리에게 서고 지하의 ‘서명 보관실’을 보여 주었다. 그곳에는 오래된 서기들의 필체 표본이 모여 있었다. 루카스의 표본도 있었다. 나는 납판의 글자와 표본을 나란히 놓았다. 필체의 흔들림과 압인의 방향이 비슷했다. 그러나 납판에 문장을 실제로 누른 사람이 누구인지는 단정하지 않았다. 오나는 표본을 검증해 줄 서기 가문의 후손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서명 보관실의 마지막 서랍을 열었을 때 흰 종이 한 장이 나왔다. 종이에는 고칠 수 없는 검은 잉크로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루카스는 원본을 받은 날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돌아오지 않았다는 기록을 남길 사람을 보냈다.’ 누가 썼는지, 그 사람이 돌아왔는지에 관한 칸은 비어 있었다. 나는 종이를 뒤집었다. 뒷면에는 바닷물에 젖었다 마른 손자국 하나가 있었다. 헤론이 그것을 유심히 보았다. “이 손자국, 푸른 유리 만의 세 손바닥 중 가장 작은 것과 닮았네.” “닮았다는 것까지만 적읍시다.” 우리는 손바닥의 폭과 손가락 간격을 따로 측정했다. 첫 지도 제작자의 이름이 이곳에 남았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지금 확인한 것은 단 한 가지였다. 사람의 귀환 대신 종이의 귀환을 기록한 날, 누군가는 그것을 바로잡으려고 애썼다는 사실. 그날 밤 납판 아래에 숨어 있던 작은 글자가 얼음처럼 푸르게 떠올랐다. [자료 수신 후 보관 대기 — 일곱 번째 낮이 올 때까지 봉인] 일곱 날. 다린의 기록에서 비어 있던 기간과 같았다. 이번에는 그 숫자를 우연이라고 흘려보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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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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