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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별가루 지도 제작자 · 116화
PAYLUA ORIGINAL · 제116화

제116화 - 이름 대신 보관된 파란 실

별가루 지도 제작자 · 3,697자

오프라인 책장
붉은 실은 미라가 누구보다 빨리 알아보는 물건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녀가 먼저 손을 빼었다. 서랍 안에 놓인 도장 손잡이의 실은 지금껏 발견한 두 종류의 매듭과 달랐다. 가운데로 꺾였다가 두 번 감겨 있었다. “동생은 이렇게 묶지 않아.” 미라가 말했다. “확실해?” “확실한 건 동생이 어릴 때 쓰던 방식과 다르다는 거야. 그 뒤에도 같은 방법을 썼는지는 모르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그 매듭을 동생의 증거로 발표하지 않았다. 대신 미라가 직접 그린 매듭 도안과 실의 꼬임 방향을 따로 보관했다. 오나는 이곳의 물건을 무단으로 반출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도장이 있던 서랍 번호와 실의 상태를 기재한 뒤 상자의 뚜껑을 닫았다. 오후에는 동결 서고 내부의 수장고를 조사했다. 오나는 우리에게 보존 구역을 세 등급으로 나눠 보여 주었다. 첫째는 현재의 문서. 둘째는 앞선 낙성 때부터 옮겨 온 문서. 셋째는 날짜를 정할 수 없는 문서. 나는 세 번째 구역의 표찰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날짜를 모르는 서류이지, 내용이 거짓이라는 뜻은 아니죠?” “물론이에요. 그런데 어느 해부터는 등급이 낮다는 이유로 폐기 목록에 올렸어요.” 그 폐기 목록의 가장 위에는 ‘파란 실 묶음’이 적혀 있었다. 나는 오나의 허락을 받고 목록을 살폈다. 파란 실은 원래 바다에서 건져 올린 젖은 문서를 묶는 재료였다. 붉은 실은 수신처를, 파란 실은 수습 위치를 표시하는 데 쓰였다. 두 색의 용도는 다린의 오래된 선박 수리 장부에도 남아 있었다. “그럼 매듭 색을 보면 누가 썼는지도 알 수 있나요?” 키오가 물었다. “아니.” 다린이 대답했다. “그 표식은 작업의 종류를 알리는 거야. 사람은 여러 명이었지.” 미라가 얕게 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찾는 동생의 신호를 또 한 번 낯선 제도 속에서 발견한 셈이었다. 그녀는 실이 묶인 방식보다 물에서 건져 올렸다는 장소 기록을 더 오래 들여다봤다. 나는 폐기 대장을 들고 오나에게 물었다. 파란 실로 묶은 문서가 실제로 버려진 적이 있느냐고. 오나는 한 번은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날 서고가 얼어붙어 운반 수레가 밖으로 나가지 못했고, 실이 묶인 상자가 서쪽 폐쇄 통로에 남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서쪽 통로에 들어가기 전에 피아의 온도표를 확인했다. 어제의 사고 이후 바닥의 온도는 안정돼 있었다. 다만 안쪽은 강한 냉기가 내려와 오래 머물면 위험했다. 미라는 짧은 밧줄로 돌아올 시간을 표시했다. 테온은 화로를 들고 앞서갔지만 불씨를 원본 기록 가까이 대지 않았다. 헤론은 닫힌 창의 서리 모양을 보며 다른 날짜의 틈이 중간에 겹쳐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길이 바뀌면요?” 내가 물었다. “돌아온 발자국을 확인하면서 물러나야지.” “전에는 당신이 망원경 하나를 버리고 계단을 버텼잖아요. 오늘은 장비부터 놓을 겁니다.” 헤론이 잠시 말이 없다가 웃었다. “내 제자를 잘 가르쳤군.” 우리는 고물 수레의 바퀴 자국을 따라 안쪽으로 갔다. 길은 생각보다 짧았다. 네 번째 굽이에서 바닥이 끊겼고 좁은 수직 틈 아래로 푸른빛이 비쳤다. 미라가 밧줄을 묶고 내려가 보니 상자 하나가 얼음 기둥 사이에 끼어 있었다. 물이 고였다가 얼면서 상자를 밀어 올린 듯했다. 미라가 손끝으로 상자를 건드리자 나무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그냥 들면 안 되겠다.” 나는 서고의 옛 운반 도면을 펼쳤다. 상자가 걸린 자리 바로 옆으로 작은 운반 수로가 표시돼 있었다. 다만 수로가 지금 열려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테온이 가느다란 막대를 넣어 봤다. 예상보다 깊이 들어갔다. 다린은 물살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상자 밑에 천을 밀어 넣자고 했다. 우리는 두 겹으로 포개진 천과 쇠막대를 써서 상자를 지지했다. 미라가 조심스럽게 틈에서 밀어내자 상자가 돌 선반 위에 올라왔다. 상자의 바닥은 젖어 있었지만 뚜껑 안쪽의 파란 실은 아직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자리를 먼저 기록했다. 누군가 나중에 우리가 서랍에서 발견했다고 오해하지 않도록. 그때 우리는 서쪽 통로 벽의 작은 새김도 확인했다. 누군가 벽돌마다 물높이를 표시해 둔 것이었다. 가장 낮은 선 옆에는 ‘사람 먼저’, 가운데 선 옆에는 ‘종이 뒤’, 가장 높은 선 옆에는 ‘짐 포기’라고 적혀 있었다. 그 문장을 보는 순간 나는 이 상자를 끌어내다가 왜 위험해질 뻔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이 통로를 사용하던 사람들은 보관물을 지키되 위험한 수위에서는 반드시 포기하도록 규칙을 만들어 둔 것이었다. 미라가 낡은 눈금을 따라 손을 움직였다. “지금은 가운데 선보다 낮아. 그래서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던 거야.” “누군가 이걸 지우고 '언제든 안전'이라고 써 놨다면요?” “그때는 그 사람을 물에 빠뜨리기 전에 말로 혼내야겠지.” 나는 눈금과 수위의 실제 위치를 그렸다. 우연히 구한 종이 한 상자가 아니라, 종이를 구하려다 사람이 빠질 수 있는 곳이었다. 헤론은 얼음이 뒤틀린 시기를 조사하자고 했다. 새로 쌓인 서리와 오래된 얼음은 투명도가 달랐고, 그 차이가 바닥의 물흐름을 보여 준다고 했다. 나는 계산을 그에게 맡겼다. 누군가는 배를 몰고 누군가는 수위를 재고, 누군가는 그 사실을 받아 적어야 했다. 상자를 열자 문서가 세 묶음 나왔다. 첫 번째는 오래된 항구의 조수표. 두 번째는 구조선 승선자의 이름. 세 번째는 봉인된 편지였다. 봉투에는 수신인의 이름 대신 숫자가 적혀 있었다. ‘세 번째 신호를 받은 사람에게. 일곱 날 후 열어 볼 것. 귀환 확인 전 발송 금지.’ 미라가 봉투를 바라봤다. 손을 뻗었다가 거두었다. “내 동생에게 보낸 것일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사람의 것일 수도 있어.” “그럼 수신자를 먼저 확인하자.” 우리는 봉투를 그 자리에서 열지 않았다. 오나에게 가져가 보관 절차를 밟기로 했다. 그런데 돌아가는 길에 바닥의 푸른빛이 더 짙어졌다. 얼음 아래에 떠오른 것은 문자가 아니라 사람의 그림자처럼 보이는 얼룩이었다. 헤론은 기온 변화로 생긴 빛의 굴절일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그림자를 따라가지 않았다. 우리가 직접 밟고 나온 발자국의 방향만 확인했다. 서고로 돌아왔을 때 피아는 파란 실의 염료를 검사하고 있었다. 오래된 실에는 소금이 깊이 배어 있었고 최근에 만든 가짜 실과는 무게가 달랐다. 하지만 그걸로 문서의 작성자까지 알 수는 없었다. 오나는 봉투를 이중 봉인하며 수신자 조회를 요청했다. 그날 밤 우리는 파란 실을 단순한 색깔로 기억하지 않도록 묶음의 매듭 수까지 적었다. 미라는 직접 같은 매듭을 만들어 본 뒤 오래된 실과 나란히 놓았다. 오래된 실은 염분 탓에 끊어질 듯 약했고 새 실은 아직 탄력이 있었다. 겉보기에는 비슷했지만 같은 물건은 아니었다. 나는 두 표본을 따로 싸고, 그 차이를 확인한 사람의 이름을 기록했다.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신중함이었다. 밤에 다린은 우리에게 뜻밖의 말을 했다. 그가 서고에서 돌아오던 일곱 날 동안 구조한 세 사람 중 아이 하나가 파란 실을 묶어 주었다는 것이다. 다린은 그 아이의 이름을 오래 기억하지 못했지만 최근 갈퀴 부두의 옛 명부에서 다시 찾아냈다고 했다. “이름이 뭐였습니까?” 내가 물었다. “이아. 다만 그 이름이 이 봉투의 주인이라는 뜻은 아니야.” 미라는 파란 실을 보며 조용히 대답했다. “좋아. 우선 이아부터 찾아보자.” 나는 수첩에 수신자 미확정이라고 적었다. 수첩의 종이는 차가웠고, 그 위에 손바닥만 한 빈칸이 남았다. 그 빈칸을 그대로 두는 일이 오늘은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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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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