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결 서고에서 가장 추운 곳은 얼음 방이 아니었다. 이름표가 비어 있는 선반 앞이었다. 거기에는 서랍이 넷 있어야 했다. 내가 들고 온 청동판에는 출발, 귀환, 대기, 미확정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하지만 실제 선반에는 세 개의 손잡이만 보였다.
“네 번째는 어디 있죠?” 내가 물었다.
오나는 선반 아래의 금색 덧판을 가리켰다. “최근에 입고 분류를 간소화했다며 붙였어요.”
“그런 단어를 들을 때마다 누군가 위험해집니다.”
헤론은 손잡이 주변의 얼음을 관찰했다. 덧판 바깥은 낡았지만 고정 못은 새것이었다. 떼어 낼 수는 있을 것 같았다. 다만 오나가 원본 보존 규정을 보여 주기 전에는 손을 대지 않기로 했다. 금속의 위치와 못 길이를 먼저 측정해 복사본을 만들었다. 피아는 자신의 온도표를 가져와 금색 덧판이 설치된 날부터 보관실의 온도가 불규칙해졌다고 말했다.
“새 장치가 열을 내나요?” 테온이 물었다.
“조금요. 얼어야 할 잉크가 마르지 않아요.”
우리는 이상한 점을 확인하기 위해 가까운 빈 선반으로 갔다. 오래된 문서들은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글씨가 또렷했다. 그런데 최근 추가된 금색 사본에는 날짜가 옅어졌다가 다시 진해지는 흔적이 있었다. 나는 손가락을 대지 않았다. 몸의 온기가 종이의 상태를 바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헤론은 작은 거울을 이용해 잉크의 표면을 살폈다.
“열을 주면 글씨가 나타나는 특수 잉크로군.”
“그럼 누군가 기록을 바꿔 놓고 다시 차갑게 식힌 겁니까?” 키오가 물었다.
“아직 그건 몰라. 하지만 원본을 보호하던 온도 조건이 달라진 건 확실해.”
오나는 출입 대장을 가져왔다. 덧판이 설치된 날 방문자로 등록된 사람은 두 명. 경계작성회 수리 담당과 백동상회 운송 담당이었다. 이름은 서명 대신 부서 직인으로 처리돼 있었다. 오나는 그날 자신이 직접 본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고 했다. 얼굴에 천을 두른 기술자가 수문을 고쳤다. 다른 담당은 종이상자만 두고 갔다고 했다.
“한 명을 봤는데 두 명이 들어왔다고 적힌 거군요.”
“그렇죠. 그때는 제가 실수한 줄 알았어요.”
“실수일 수도 있죠. 아직은 서로 다른 두 기록이 있는 겁니다.”
우리가 대조를 끝내려던 순간 서고의 남쪽 벽이 낮게 울렸다. 얼음에 갇힌 물이 팽창하면서 틈이 벌어지고 있었다. 온도실 사고 때 닫혔던 수문이 다시 닫힌 탓이었다. 피아가 경보종을 쳤다. 건물 안에 있던 보관 직원들이 입구로 모였지만 자동 장치는 그들을 이미 ‘귀환 완료자’로 인식해 바깥 문을 잠갔다.
“이제 그 자동 승계라는 걸 좀 싫어해도 되겠죠?” 내가 외쳤다.
“나도 원래 싫었어!” 오나가 대답했다.
우리는 확인한 화물 통로를 대피로로 정했다. 먼저 피아와 기침하던 노인 두 명을 내보냈다. 미라는 출구의 수위가 오르지 않는지 살폈고, 다린은 지렛대가 걸린 구멍을 다시 고정했다. 나는 직원들에게 본인 이름과 지금 위치를 소리 내어 확인하게 했다. 대피 인원은 열한 명. 정문의 목록에는 열세 명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머지 둘은 실제로 서고 안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 사실 때문에 대피를 멈추지 않았다. 먼저 나온 사람을 세고, 오나와 함께 남은 창고를 확인했다. 둘은 오늘 근무하지 않는 외부 수리공이었다. 그들의 출입증은 어제부터 맡겨 두었으나 사람은 오지 않았다는 증언을 들었다. 오나는 본인이 직접 확인하지 않은 부분을 따로 표시했다.
대피를 준비하던 사이 오래된 서고 직원 비르가 금색 덧판을 손끝으로 가리켰다. 그는 새 분류 장치를 처음 설치할 때 서랍을 막아도 괜찮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했다. 미확정 기록은 오래되면 자동으로 귀환 칸으로 옮겨진다는 것이었다.
“오래된 사람은 결국 돌아온다는 건가요?” 내가 물었다.
비르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럴 리 없지. 다만 누구도 찾아오지 않으면 보관료만 늘어나니까.”
그는 원래 네 번째 칸을 따로 지키던 직원이 있었다고 했다. 이름은 해마. 마지막으로 근무하던 날에 휴가 신청서를 냈으며, 이후 귀환 여부는 비르도 알지 못했다. 나는 그 이름을 폐기된 목록에서 찾았다. 목록에는 ‘미확정 관리 종료’라고만 쓰여 있었다. 해마가 실제로 어디 갔는지에 관한 칸은 없었다.
오나는 그 말을 들은 뒤 폐기 목록과 오늘의 서랍 위치를 나란히 보존하기로 했다. 그녀가 어릴 때부터 익힌 규정은 보관 공간이 부족하면 오래된 걸 밀어 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빈 자리를 없애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직접 보았다. 나는 비르에게 해마의 마지막 편지를 보관한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비르는 다른 사람의 서랍을 찾으려면 허가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 말은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아직 누군가의 기록을 지키는 규칙이 살아 있었다.
선반 깊숙한 곳에서 갑자기 작은 소리가 났다. 종이를 접는 듯한 소리였다. 우리는 사람이 있는지 불렀다. 대답 대신 벽 안쪽에서 물이 흘렀다. 헤론은 바닥에 남은 물자국을 보고 오래된 배수로가 금색 덧판 뒤쪽과 연결됐을 가능성을 말했다. 미라는 장대를 집어 넣어 실제 깊이를 쟀다. 좁은 공간이 있었다.
오나는 금속 덧판을 떼어 내는 절차를 승인했다. 입회자로 헤론과 피아가 서명했고 나는 덧판의 위치를 기록했다. 테온이 쇠못을 하나씩 뽑는 동안 우리는 다른 선반을 받쳤다. 덧판 뒤에는 네 번째 손잡이가 드러났다. 손잡이에는 오래된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미확정.’
서랍을 열자 얇은 회색 종이들이 차곡차곡 놓여 있었다. 어떤 것은 이름이 적혀 있었고 어떤 것은 비어 있었다. 빈 종이 아래에는 회색 가루가 눌어붙어 있었다. 별가루와 비슷해 보였지만 나는 바로 손을 대지 않았다. 헤론이 작은 병에 표본을 넣고 날짜를 적었다. 미라가 서랍 뒤쪽의 물소리를 들었다.
“이곳이 막혀서 수압이 올라간 것 같아.”
피아가 원래의 배수도면을 확인했다. 금색 덧판이 네 번째 서랍뿐 아니라 그 아래의 오래된 환기구까지 막고 있었다. 우리는 서랍의 내용물을 보존용 상자로 옮기고 좁은 환기구를 열었다. 얼음벽의 압력이 서서히 줄어들자 남쪽 벽의 울림도 잦아들었다.
사람들은 모두 안전한 대피실에 모였다. 오나는 마지막으로 숫자를 대조했다. 실제 서고 안에 있던 열한 명은 전원 나왔다. 문서상의 열세 명 가운데 나머지 둘은 입장 사실이 미확인이라고 적었다. 그동안 ‘완료’ 도장이 찍혀 있던 기록과 오늘의 구조 기록은 다른 서랍에 보관했다.
나는 회색 서랍 속에서 한 장의 서류를 읽었다. 수십 년 전 누군가 기록한 문장이었다.
‘귀환이 미확정인 사람에게는 보관 공간을 남겨 둘 것. 공간이 부족하다고 귀환을 확정하지 말 것.’
그 뒤에는 짧은 비고가 있었다.
‘에르안 — 관측 중단. 본인 귀환 확인 없음. 자료 인수는 루카스가 대행.’
내가 별의 전당에서 보았던 사실과 맞아떨어졌다. 그러나 서류에는 날짜가 두 번 덧칠돼 있었다. 원본의 날짜를 밝혀낼 수 없다면 같은 사건의 다른 사본일 가능성도 남았다.
“이제 찾은 겁니까?” 키오가 물었다.
“우리는 이 서랍이 있어야 했다는 걸 찾았지.”
나는 문서의 위치를 적었다. 사람의 행방까지 찾았다고 쓸 수는 없었다. 하지만 기록을 지워서 빈칸을 없애는 방식이 실제 구조를 방해했다는 사실은 모두가 보았다.
그리고 서랍 맨 아래에는 이상한 도장이 하나 놓여 있었다. 도장 손잡이에는 글씨 대신 단단히 묶인 붉은 실이 있었다. 오른쪽도 왼쪽도 아닌, 가운데로 매듭이 꺾여 있었다.
제115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