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 바다는 흰색이 아니었다. 회색도 아니었다. 새벽에는 연필심처럼 검다가, 해가 올라오면 얇은 비늘을 뒤집은 물고기처럼 푸르게 빛났다. 나는 배 난간에 기대어 그 모습을 한참 보다가 손가락 끝을 호호 불었다.
“너무 추워서 지도가 안 그려져요.”
미라가 돛의 매듭을 조이며 대답했다. “그럼 손 대신 코로 그려.”
“그 말은 기록하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어제의 파도’를 댄 곳은 동쪽 대조반에서 북쪽으로 반나절 거리의 조그만 어촌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갈퀴 부두’라고 불렀다. 방파제 끝에서 얼음이 갈퀴 이빨처럼 다섯 갈래로 갈라지기 때문이었다. 해류가 바뀌는 날에는 그 다섯 갈래 중 네 갈래가 물 아래 잠겼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도 맨 서쪽 것만 바다 위에 남아 있었다.
코반이 보내 준 소개장은 한 장이었다. ‘도선사 다린에게 지도를 요구하지 말 것. 먼저 그의 말을 들을 것.’ 나는 소개장을 읽고 기분이 나빴다. 요즘 만나는 사람들은 왜 다들 내가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을 거라고 미리 짐작할까. 미라가 옆에서 웃었다.
“네가 원래 지도부터 펼치잖아.”
“편견입니다. 오늘은 아침 식사부터 펼쳤습니다.”
테온은 말없이 밧줄을 부두 기둥에 묶었다. 헤론은 창백한 해를 올려다보며 별의 위치를 가늠했다. 해가 떠 있는데도 북쪽 하늘의 별 하나는 사라지지 않았다. 관측표에서는 오래전 삭제됐던 열 번째 별이었다. 헤론은 이번에는 일부러 그 자리를 측정하고 수첩에 남겼다.
부두에는 오래된 날짜판이 일곱 장 걸려 있었다. 저마다 숫자가 달랐고, 칠판 아래 작은 종이주머니에는 빈 표찰이 들어 있었다. 오늘 입항을 담당한 소녀는 자신을 레티라고 소개했다.
“왜 날짜판이 일곱 개죠?”
“배가 오던 날이 일곱 번 반복돼서요.”
“같은 날이요?”
“아니요. 날은 달랐어요. 같은 배를 기다리는 일이 일곱 번 있었을 뿐이에요.”
나는 곧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레티는 입항 장부를 보여 주었다. 똑같은 선명 아래 서로 다른 날짜가 일곱 개 적혀 있었다. 다만 실제로 닻이 내려졌다는 표식은 세 칸뿐이었다. 나머지에는 ‘시야 내 확인’, ‘소리만 확인’, ‘소문’이라고 나뉘어 있었다.
좋은 장부였다. 도착하지 않은 배를 도착했다고 쓰지 않았다. 나는 입을 다물고 레티에게 장부를 돌려주었다.
“다린 씨는 어디 계십니까?”
“얼음 아래요.”
나는 심장이 철렁했다.
“물속에 계시다고요?”
“아니요. 배를 고치러요. 아래 정비굴에 있어요.”
미라가 배꼽을 잡고 웃었다. 나는 딱히 억울해하지 않았다. 이 세계에서는 ‘얼음 아래’라는 말이 수영을 뜻할 때와 수리를 뜻할 때를 구분하는 편이 목숨에 유리했다.
정비굴로 가는 길에 우리는 부두의 작은 수리 시장을 지났다. 낡은 나침반을 파는 상인은 내가 지도통을 메고 있는 것을 보더니 아주 비싼 가격을 불렀다. 미라가 값을 깎으려 하자 상인은 반대로 값을 올렸다. “여기선 북쪽을 가리키는 바늘보다, 북쪽이 바뀐 날을 적은 바늘이 더 귀하거든.”
나는 바늘을 사지 않았다. 대신 그가 언제 어느 방향에서 물건을 건졌는지 물었다. 상인은 조금 놀라더니 새벽에 얼음에 걸린 채 떠내려온 것을 주웠다고 했다. 같은 종류의 바늘을 이틀 전에 산 사람도 있었다. 다만 그 사람이 실제로 북쪽으로 출항했는지는 보지 못했다고 했다. 내가 수첩에 '구입 사실과 출항 여부 별개'라고 적자 상인은 혀를 찼다.
“그렇게 까다롭게 굴면 장사 못 해.”
“저도 원래 그랬습니다. 그래서 장사가 망했죠.”
미라는 나를 향해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나는 그 격려가 칭찬인지 놀림인지 따로 기록하지 않았다.
정비굴 입구에는 두 겹의 계단이 있었다. 하나는 나무, 다른 하나는 얼음이었다. 레티가 나무 계단의 세 번째 발판을 장대로 쳤다. 단단한 소리가 났다. 얼음 계단은 유리잔을 두드린 것처럼 높은 소리가 났다. 그녀는 지금 안전한 통행로가 나무 계단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실제로 내려간 흔적을 확인한 뒤 한 명씩 걸었다.
굴 안에서는 한 남자가 배의 밑창을 뒤집어 놓고 못을 뽑고 있었다. 갈색 수염에는 얼음이 붙어 있었고 한쪽 다리는 무릎 아래부터 나무로 만든 보조기를 차고 있었다. 그는 코반의 소개장을 읽은 뒤 내 얼굴부터 살폈다.
“레이븐?”
“예.”
“지도부터 보여 주지 마.”
“이런 대접은 처음이 아닙니다.”
“나도 지도 때문에 다리를 잃은 건 처음이었어.”
미라의 웃음이 그쳤다. 남자는 다린이었다. 그는 사고가 있었던 날을 이야기해 주겠다고 했다. 다만 우리에게 먼저 한 가지를 확인했다.
“너희는 동결 서고가 어디 있는지 이미 아나?”
“이름과 이관 기록만 압니다.”
“그럼 아직 출발하지 마. 거기는 얼음의 모양이 아니라 사람들이 걸어간 계절로 찾아가는 곳이거든.”
다린은 선반에서 작은 철제 고리를 꺼냈다. 고리 안쪽에는 ‘3·7·0’이 새겨져 있었다. 미라의 은반지와 같은 숫자였다. 나는 두 물건을 바로 겹치지 않았다. 크기도 제작 방식도 달랐으니까. 다린은 그 숫자를 보고 얼굴을 찡그렸다.
“저건 길이 아니다. 기다리는 순서야.”
그가 설명을 이어가려던 순간 굴 바깥에서 얼음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레티가 뛰어 들어왔다. 부두 끝에 걸려 있던 일곱 날짜판 중 세 번째가 떨어졌다고 했다. 날짜판을 주우려던 아이 하나가 갈라진 틈 너머에 고립돼 있었다.
다린이 보조기를 조이며 일어섰다. “장부는 나중이야.”
우리는 밖으로 뛰었다. 틈은 아직 넓지 않았으나 그 아래에는 검은 바닷물이 움직이고 있었다. 미라는 밧줄을 두 겹으로 묶어 기둥에 고정했다. 테온은 얼음 가장자리에 서지 않고 나무 방파제의 힘을 받는 지점에 몸을 붙였다. 나는 부두 보수 장부에서 지난주 교체한 쇠고리 위치를 확인했다. 실제로 쇠고리가 남아 있는지 레티가 장대로 두드려 검증했다.
고립된 아이의 이름은 누보였다. 그는 주운 날짜판을 품에 안고 있었다.
“그건 놔!” 미라가 소리쳤다.
“오늘 날짜가 없어지잖아요!”
“오늘은 네가 돌아오면 내일 다시 쓸 수 있어!”
아이의 손이 풀렸다. 날짜판이 물에 빠졌다. 우리는 밧줄을 잡은 채 누보를 한 걸음씩 끌어왔다. 마지막 순간 얼음턱이 무너졌지만 테온이 나무 기둥 뒤에서 줄을 받아 주었다. 누보가 부두 위로 올라왔을 때 미라의 손바닥은 까져 있었다. 나는 젖은 장부가 아니라 그 손부터 살폈다.
사고를 기록하는 동안 누보는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나는 그에게 잃어버린 날짜판이 어떤 날을 가리켰느냐고 묻지 않았다. 먼저 뜨거운 국물을 마시게 했다. 다린은 아이에게서 직접 오늘의 구조 경위를 들은 뒤 레티와 함께 서명했다.
해가 저물자 부두의 남은 여섯 판은 각각 다른 그림자를 드리웠다. 하나는 물 위, 하나는 나무 아래, 나머지는 얼음벽 안쪽으로 뻗었다. 다린은 그 그림자들을 가리켰다.
“내가 돌아온 날짜가 두 개인 이유를 내일 말해 주지. 먼저 오늘 누가 돌아왔는지 정확히 적어 둬.”
나는 수첩에 썼다. ‘누보 — 갈퀴 부두 세 번째 균열에서 구조. 본인 확인. 레티·다린 입회.’ 별가루 지도의 여백에서 나무 계단과 보수 쇠고리 사이의 짧은 길만 밝아졌다.
동결 서고로 향하는 길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작은 글자가 떠올랐다.
[일곱 날 — 출발과 귀환 사이, 확인되지 않은 간격]
나는 그 글씨를 오래 바라봤다. 잃어버린 칠 일은 누구의 것이었을까. 그리고 누가 그 사이를 함부로 완료했다고 적었을까.
제111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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