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 대조반으로 이어지는 배수로를 찾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실제로 그 길을 걷는 데는 열세 걸음이면 됐다. 나는 지도가 얼마나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지 새삼 깨달았다. 길이 짧다고 찾는 시간까지 짧으리라는 법은 없었다.
미라가 밧줄을 잡고 먼저 물살을 살폈다. 도안과 모엘은 임시로 수조를 연결했고 테온은 바위에 닻을 박았다. 헤론은 세 시기의 물시계 기록을 탁본해 현재의 수위와 비교했다. 그 기록 가운데 오늘과 맞지 않는 줄에는 붉은 표시를 해 뒀다. 우리는 오늘 실제로 물이 흐르는 방향만 따라갔다.
좁은 통로 끝에는 문이 아니라 물에 잠긴 선반이 있었다. 세 개의 나무 상자가 층층이 놓여 있었는데, 가장 아래 상자는 물에 떠오른 채 흔들리고 있었다. 니아는 둘째 상자에 달린 매듭을 가리켰다. “저거예요. 제가 봤던 상자.”
상자에는 왼쪽으로 꺾인 붉은 실이 묶여 있었다. 누군가 수신처를 표시할 때 사용했다던 매듭이었다. 하지만 상자 바깥에 적힌 이름은 루카스도 에르안도 아니었다. ‘전당 동쪽 원본 대조실, 수신인 미확정.’
“우리가 찾는 건 아닐 수도 있겠군요.” 키오가 말했다.
“그래. 그래서 열어 봐야 할 이유를 먼저 찾아야지.” 내가 대답했다.
모엘은 전당의 보관 담당자였다. 타린은 운반 기록의 당사자였다. 니아는 최근에 이 상자를 직접 보았다고 증언했다. 세 사람이 각기 확인할 수 있는 범위에서 입회하기로 했다. 미라는 상자를 움직일 때 내용물이 훼손되지 않도록 밧줄을 걸었고 도안은 물이 더 차오르지 않도록 배수관을 조절했다.
그때 뒤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페르딘이 경비병 둘을 데리고 나타났다. 그는 보존단의 재산이므로 상자를 즉시 인계하라고 말했다. 테온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여기에는 보존단의 소유를 증명할 서류가 없어요.”
“왕실 직인이 있습니다.”
“그 직인의 사용 권한부터 문제가 되고 있죠.”
페르딘은 목소리를 높였다. “왕자님이 권위를 부정하시면 누가 절차를 지킵니까?”
테온은 잠깐 침묵했다가 말했다. “권위라는 말을 하면 없는 귀환이 생깁니까? 그렇지 않다면 저도 절차를 따라야 합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가슴이 조금 뭉클했다. 루메르를 되찾기 위해 오래도록 왕관을 들고 다닌 사람이, 사람 하나의 신원을 자기 왕관보다 더 무겁게 여기게 되었다. 물론 나는 그에게 감동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괜히 왕세자의 자부심에 불을 붙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페르딘은 더 가까이 오지 않았다. 대신 경비병 하나가 상자 옆의 쇠줄을 건드렸다. 줄은 오래된 장치와 연결돼 있었고, 갑자기 밑의 선반이 아래로 꺼졌다. 물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우리는 상자를 지키느라 사람을 놓칠 수는 없었다.
“뒤로!” 미라가 외쳤다.
도안이 수문 손잡이를 붙잡았다. 니아의 발이 미끄러져 물에 빠지려는 순간 타린이 그녀의 팔을 잡았다. 그러나 타린도 다친 발목 때문에 균형을 잃었다. 테온이 두 사람을 밀어 올렸고 나는 키오와 함께 뒤쪽 밧줄을 당겼다. 미라는 마지막으로 상자에 감긴 밧줄을 느슨하게 풀어 물이 지나갈 자리를 만들었다. 잠시 뒤 사람들은 안전한 돌턱에 모였다.
그 사이 첫 번째 상자는 물에 떠내려갔다. 미라는 한숨을 쉬었다. “상자를 잡을 수도 있었는데.”
“사람부터 잡았잖아.” 내가 말했다.
모엘도 고개를 끄덕였다. “남은 상자의 상태와 흐른 방향은 적을 수 있어요. 누가 가져갔다고 단정하지 말고.”
우리는 물이 안정될 때까지 기다렸다. 페르딘의 경비병은 자신이 줄을 건드렸다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선반이 꺼질 줄 몰랐다고 했다. 모엘은 장치가 안전하지 않다는 점을 기록하고 이동을 중지시켰다. 페르딘 역시 사고 뒤에는 무리하게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았다.
남은 둘째 상자를 꺼내는 데 성공한 것은 정오가 지난 뒤였다. 모엘이 봉인 상태를 확인하고 모두의 입회 아래 천을 걷었다. 안에는 얇은 돌판 두 장과 붉은 인끈, 낡은 원통 하나가 있었다. 돌판 첫째에는 관측 중단일과 실제 측각값, 둘째에는 원본 인계일과 수신처가 적혀 있었다. 원통에는 종이 한 장이 돌돌 말려 있었다.
헤론은 손을 떨며 글씨를 읽었다.
‘에르안의 귀환은 확인되지 않았다. 서기 루카스는 관측 자료를 인수했으나 귀환자 서명란을 비워 둔다.’
우리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적어도 이 문서를 작성한 사람은 두 사건을 분리하려 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이 종이가 진본인지, 언제 쓰였는지 더 살펴야 했다. 라이나는 종이를 만든 재료가 오래된 전당 수리일지와 비슷하다고 했다. 헤론은 문장에 쓰인 천문학 용어가 세르안의 제자들이 사용하던 표현과 맞는다고 보았다.
그때 원통 안쪽에서 작은 종이띠 하나가 더 나왔다. 앞면에는 ‘제삼 수신처 — 확인되지 않은 사람의 기록’이라고 적혀 있었다. 뒷면에는 붉은 잉크로 두 줄이 적혔다. 첫째는 관측 도중 중단된 사람의 번호, 둘째는 그 자료를 보관하도록 지명된 담당자의 자리였다. 이름은 없었다.
“이걸로 에르안의 행방을 알 수 있습니까?” 키오가 물었다.
“행방을 바로 알지는 못해.” 내가 말했다. “하지만 서류만으로 귀환을 완료했다는 주장을 반박할 근거는 생겼어.”
우리는 둘째 상자의 내용물을 물에서 꺼내 말리기로 했다. 모엘은 원본을 전당에 보관하고, 탁본과 읽은 기록을 서로 다른 장소로 보내자고 제안했다. 테온은 루메르 왕실이 남긴 기록을 대조할 수 있는 담당자들을 찾겠다고 했다. 미라는 선박을 준비해 사본을 무월항으로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해 질 무렵 페르딘이 다시 접수대에 나타났다. 그는 우리가 발견한 원본이 왕실 대리 보존단의 권한을 침해한다고 항의했다. 그러나 타린은 직접 자신이 인수했던 서류의 흔적을 확인했고, 모엘은 상자가 놓여 있던 장소를 설명했다. 페르딘은 그 말을 듣고 잠시 침묵했다. 그런 뒤 뜻밖의 말을 했다.
“나는 원안을 없애라는 명령을 받은 적은 없습니다.”
“그럼 무엇을 지시받았습니까?” 내가 물었다.
“완료된 사본이 공개되기 전까지 원안의 열람을 중지하라는 지시였죠.”
“그 명령을 누가 내렸습니까?”
“동쪽 대조반.”
그가 말한 이름은 장소인지 부서인지조차 불분명했다. 다만 금색 원판의 제조처와 같았다. 나는 그 말을 직접 인용해 적었다. 페르딘이 어떤 의도로 사실을 밝힌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밤에 미라와 나는 배의 선실에 앉았다. 미라는 젖은 매듭을 말리면서 말했다. “동생이 쓰던 방법이 여기저기 남았다는 걸 알게 되니 더 불안해.”
“무슨 뜻이야?”
“내가 알아보는 신호가 누구의 손에서 나왔는지 아직 모르니까. 언젠가 진짜로 만나도 바로 믿지 못할까 봐.”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잠시 생각했다. “그럼 확인할 방법을 함께 만들자. 네 동생만 알고 있던 일을 네가 묻는 거야. 대답이 다르더라도 먼저 듣고.”
미라는 피식 웃었다. “넌 사람 만나는 데도 조사표부터 꺼내는구나.”
“내가 잘하는 건 그거 하나니까.”
그날 밤 지도통 속 빈 페이지가 조용히 펼쳐졌다. 새 길이 아니라 이미 확인한 둘째 상자의 보관처와 세 가지 기록 항목이 나타났다. 그러나 마지막 항목의 끝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문장 하나가 그 아래 떠올랐다.
‘첫 관측자의 귀환을 확인하지 못한 자는 동쪽 대조반의 원본을 찾아라.’
나는 지도통을 덮었다.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에르안이 돌아왔다는 증명서가 아니라, 그를 기다려야 한다고 적었던 사람의 기록일지도 몰랐다.
제10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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