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연의 첫 출근 전날, 출판사에서 책 한 상자가 도착했다. 회사에서 미리 읽어 보면 좋겠다고 보낸 교정 견본이었다. 도연은 표지를 들여다보다가 지훈에게 사진을 보냈다.
'제가 정말 이 일을 하게 됐네요.'
지훈은 짧게 축하한다고 답했다. 그날 도연의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글자 사이에서 오래전의 긴장이 조금 풀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반면 원천관리계정의 시험 채용소 문제는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구은정이 확보한 자료를 검토한 결과, TEST-000은 가상의 지원자를 시험하기 위한 영역이었는데도 실제 상담 기록의 일부 항목을 참조한 흔적이 있었다. 누구의 동의로 참조했는지, 그 정보가 삭제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예린은 설명 화면을 그려 보였다.
"사람에게 적당한 공석을 추천하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해 봅시다. 통상은 지원서를 확인하고 후보를 찾겠죠. 그런데 이 기능은 먼저 공석을 정하고, 조건에 맞는 후보의 이력을 끼워 맞췄을 가능성이 있어요."
"그러면 사람에게 없던 경력도 생겨요?"
철민이 물었다.
"가능성은 있지만 아직 증명되지 않았어요. 도연 씨 서류처럼 내용이 실제로 바뀐 사례는 있죠. 그 원인을 하나씩 확인해야 해요."
지훈은 종이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의 능력이 있었을 때 눈앞에 뜨던 '제빵 98.7%'가 생각났다. 그 숫자도 사람이 선택하기 전에 가능성을 보여 줬다. 자신은 그걸 강요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누군가는 같은 종류의 가능성을 확정된 답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오후, 한림물류의 채용 담당자가 지훈에게 연락했다. 조경섭이 직접 지원한 서류를 받았고 면접 일정을 조율 중이라는 이야기였다. 동시에 과거 자동 발송 문자의 상태를 정정했다는 확인도 전달했다.
지훈은 두 사안의 기록 번호가 분리돼 있는지 물었다.
"지원은 지원대로, 정정은 정정대로 남았습니까?"
"네. 구직자가 지원하지 않았던 이력도 정정했습니다. 이번 지원은 본인이 새로 제출한 서류예요."
전화를 끊자 예린이 말했다.
"그래도 시스템을 한 번에 다 끊자는 말이 안 나오네요."
"좋은 지원도 있으니까요. 잘못된 추천을 지운다고 사람이 고른 일자리까지 지워서는 안 되죠."
그날 저녁 독립 검토위원회에서 중간 결과가 나왔다.
'배정 기능 14건 가운데 외부 전달 흔적 7건 확인. 6건은 발송 보류 상태. 1건은 내부 시험 처리 후 상세 확인 중.'
숫자는 맞아떨어졌다. 과거 외부 전달 6건, 박람회로 발송된 1건, 그리고 이번에 보류된 6건과 내부 시험 1건. 다만 외부 전달 일곱 건이 일곱 명을 뜻하지는 않았다. 중복된 사람이나 동일 문서의 재전송 여부도 조사해야 했다.
그날 밤, 공석추천 서비스를 사용하는 한 업체가 예린에게 공지문을 보냈다. 새로운 모듈 사용 신청을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차세대 공석 예측 시스템 시범 적용]
[후보자 응답 이전에 합류 가능성 자동 산정]
예린은 그 문장을 여러 번 읽었다. 미래에 지원할 가능성을 예측한다는 아이디어 자체가 불법인 것은 아닐 수 있다. 문제는 그 예측이 사람의 현재 의사처럼 취급되는 순간이었다.
"시범 신청 안내에는 '예측 결과는 채용 의사 표시를 대체하지 않는다'라고 적혀 있네요."
지훈이 읽었다.
"그런데 이 문장이 실제 운영에서도 지켜질까요?"
예린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걸 검증할 수 있어야죠. 일단 지금은 14건의 사전배정부터 정리해야 해요."
창밖에는 빵집 불빛이 희미했다. 철민이 내일 아침 반죽을 위해 남겨 둔 불이었다. 지훈은 그 조그만 불빛을 보며 생각했다. 사람의 미래를 미리 맞히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내일 마음을 바꿀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원천관리계정의 최신 상태표에서는 '예측'이라는 단어가 아직 아무 기능에도 붙어 있지 않았다. 나머지 기능은 몇 개나 있었는가. 누구도 확실히 알지 못했다.
제98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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