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을 예약한 사람은 약속 시간보다 십 분 일찍 도착했다. 쉰을 갓 넘긴 여성은 작은 가방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문 쪽을 몇 번 바라봤다.
"이름은 서류에만 적고 싶어요. 화면에는 띄우지 말아 주세요."
오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예전 사건은 말씀 안 하셔도 됩니다. 오늘 원하는 일을 먼저 물어볼까요?"
여성은 잠깐 놀란 눈을 했다. 아마도 자신이 과거 사건을 증명하러 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이 돌봄 일을 오래 했어요. 지금은 허리가 좀 안 좋아서 하루 종일 서 있는 일은 어렵고요. 책 정리 같은 일을 하고 싶어요."
지훈은 지역 도서관과 작은 출판사의 공개 채용 조건을 함께 확인했다. 서류 작업, 분류 업무, 근무 시간. 특별한 적성 수치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여성이 잘해 온 일이 한 장의 경력표에 채워졌다.
"사람들이 제가 예전에 일을 거절한 걸 자꾸 물어요. 그때는 아이가 아팠어요."
여성이 먼저 말했다.
"그 말을 증명하려고 여기 오신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적어 두고 싶다면 적을 수 있습니다."
여성은 잠시 생각하다가 빈 종이에 짧게 썼다.
'그때는 일할 수 없었다. 오늘은 다시 일하고 싶다.'
그리고 종이를 접어 자기 가방에 넣었다.
지훈은 접힌 종이의 앞면도 보지 않았다. 상담자는 그 종이를 채용 지원서에 첨부할 필요가 있는지 물었다. 지훈은 반드시 필요한 자료가 아니며, 본인이 제출할지 결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건 제가 갖고 있을게요."
"네."
그녀가 돌아간 뒤 지훈은 상담 기록에 이름 대신 예약 번호를 적었다. 필요한 연락처는 별도 보관했고, 과거 사건을 원본 기록실 조사 자료에 넣지 않았다. 도움을 청하러 온 사람이 증거를 제공할 의무는 없었다.
같은 날 오후, 심사위원회는 오혜숙의 과거 발언을 재검토할 수 있다는 통지를 보냈다. 그러나 재단 쪽에서는 혜숙의 서명을 받은 '능력 분리 보관 승인'도 함께 제출해 달라고 요구했다.
구은정은 요구 사항을 읽고 고개를 저었다.
"과거 기록을 정정하는 일과 지금 권한을 보관하는 일은 분리해야 한다고 여러 번 설명했는데요."
지훈은 혜숙에게 내용을 전달했다. 혜숙은 곧 답장을 보냈다.
'현재 권한을 받을 생각이 없습니다. 다만 보관이 필요한지 판단하기 전에 누구에게 어떤 영향이 있는지 알려 주세요.'
지훈은 그 답장을 읽고 예린을 바라봤다.
"설명이 먼저네요. 승인부터 받을 일이 아니라."
예린은 소유자가 특정되지 않은 두 권한에 대한 위험 평가를 요청했다. 어떤 사람에게 권한이 새로 옮겨질 수 있는지, 기록을 보는 기능이 계속 작동하는지, 사용을 중지하면 데이터가 어디에 남는지. 답변이 올 때까지 어떤 권한도 이전하지 않는 방안을 제안했다.
저녁에는 한시온이 어머니 정미와 함께 소개소에 잠깐 들렀다. 그는 지역 방송 동아리에서 직접 녹음한 짧은 안내 방송을 들려주었다.
"잃어버린 물건은 방송실에 맡겨 주세요. 이름은 방송하지 않습니다."
철민이 활짝 웃었다.
"잘하네. 진짜 라디오 진행자 같아."
"그냥 동아리예요. 직업은 아직 모르겠어요."
시온이 대답했다.
지훈은 그 말을 듣고 웃었다. 아이가 무엇이 될지 정하지 않아도, 오늘 잘한 일을 칭찬할 수 있었다.
시온이 돌아간 뒤 예린이 노트북 화면을 가리켰다. 보존지원실에서 보낸 상태표가 바뀌어 있었다.
[000번 반대 의사 표현: 재검토 대상 등록]
[권한 분리 보관: 영향 평가 진행]
결론은 아직 없었다. 하지만 한 사람의 말과 두 개의 권한이 더 이상 같은 칸에 적히지 않았다.
지훈은 소개소 문을 닫기 전에 여성이 앉았던 의자를 정리했다. 오늘 그 의자에 앉은 사람은 자신의 과거를 증명하기 위해 온 증인이 아니었다. 앞으로 일하고 싶은 평범한 구직자였다. 그 사실을 잊지 않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제88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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