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훈은 우편함에서 나온 봉투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손을 떼었다.
'000번 원본 기록실 / 자진 반환 통지.'
열 개의 빈칸 중 두 개만 채워진 서류. 반환 승인 요청자는 오혜숙. 그런데 마지막 문장은 그녀가 자기 거절을 증명하지 못한다고 선언하고 있었다.
강철민이 봉투를 집으려다 멈췄다.
"회장님 때처럼 또 도장이 찍혀 있네요. 뜯으면 계약되는 건 아니겠죠?"
"뜯는 행동만으로 계약이 성립한다는 근거는 없어요. 하지만 어떻게 발송됐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지훈은 봉투와 내용물을 각각 사진으로 남기고 발견 시각을 적었다. 나예린은 서류 하단에 인쇄된 열람 식별자를 확인했다. 주소도 전화번호도 없었다. 대신 작은 일련번호가 있었다.
'000-R-002 / 출력처 미확인.'
"무슨 일을 하라는 통지가 아니라 무슨 일을 했다고 기록된 통지 같은데요."
예린이 말했다.
"혜숙 선생님이 승인 요청을 하셨다는 것부터 모르잖아요."
지훈은 먼저 오혜숙에게 전화를 걸었다. 혜숙은 낮에 인쇄소에 다녀왔다고 했다. 그 사실은 인정했지만 승인 신청서를 작성한 적은 없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반환할 수 있는지 물어보기만 했어요.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것을 승인할 수는 없지요."
"직접 만날 수 있을까요?"
"내일 아침이면 됩니다. 단, 제가 한 말을 먼저 적어 두세요. '문의'와 '승인'은 다릅니다."
통화를 마치자 예린이 화면 두 개를 나란히 놓았다. 예전에 지훈을 시험 참가자로 등록하던 문서와 새 통지서였다. 겉모양은 전혀 달랐지만 처리 상태를 표시하는 칸이 같았다.
[당사자 확인 전 / 요청 간주]
"이 칸을 보세요. 대답을 기다리는 상태를 대답한 상태처럼 분류하네요."
철민이 얼굴을 구겼다.
"안 나왔으니까 출근한 걸로 치겠다는 소리랑 똑같잖아요."
"그것도 확인해야 해요. 이전 건과 같은 프로그램인지 아직 몰라요."
지훈이 말을 맺을 때, 아래층에서 빵을 구울 준비를 마친 박선규가 올라왔다. 철민이 부탁했던 식빵 틀을 가지러 온 길이었다. 서류를 보던 박선규가 무심히 물었다.
"반환이면 물건을 가져간 사람이 돌려줘야 하는 거 아냐? 왜 돌려받는 사람한테 승인을 받는대?"
아무도 바로 답하지 못했다.
그날 오후 지훈은 상담 손님을 한 명 받았다. 정비사로 십이 년 일한 여성은 육아 때문에 낮 시간대 일자리를 찾고 있었다. 그녀는 지난 회사에서 '교대 근무 가능'에 체크한 서류가 지금도 남아 있어 곤란하다고 했다.
"그때는 가능했어요. 지금은 안 돼요. 그런데 채용 담당자가 그걸 변심이라고 하네요."
지훈은 새로운 조건을 종이에 적었다. '오후 다섯 시 이전 퇴근, 토요일 근무 협의 불가.' 그리고 물었다.
"예전 선택을 바꿔도 되는지 확인받으러 오신 건 아니죠?"
"그렇죠. 일을 찾으러 왔죠."
그녀는 처음으로 웃었다.
상담이 끝난 뒤 지훈은 반환 통지서의 빈칸을 다시 보았다. 능력이든 직업이든 과거의 서류는 지금 사람의 의사보다 앞설 수 없었다.
그때 예린에게 한 통의 회신이 도착했다. 원본 기록실 보관 담당 부서가 식별번호 존재만 인정했다. 내용 열람은 별도 심사를 거쳐야 한다는 답이었다.
그런데 회신 맨 아래에 이상한 문장이 있었다.
'000-R-002는 발송 문서가 아니라 반송 문서입니다.'
지훈은 봉투의 앞뒤를 확인했다. 수취인 칸이 텅 비어 있었다. 누군가에게 보내려고 만든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받지 않았다고 처리한 서류였다.
"그럼 누가 이걸 거절했다는 거죠?"
예린은 천천히 화면을 확대했다.
[반송 사유: 수령인 의사 미확인]
[수령인: 오혜숙]
혜숙은 받겠다고도, 받지 않겠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빈 대답 하나가 또 다른 계약의 출발점이 되고 있었다.
제81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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