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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악당들의 직업소개소 · 80화
PAYLUA ORIGINAL · 제80화

80화. 아무도 대신 거절하지 않는다

악당들의 직업소개소 · 2,413자

오프라인 책장
000번 원본 기록실의 위치는 건물 주소가 아니었다. 나예린이 확인한 보관 목록에는 하나의 기록 식별자만 적혀 있었다. 지훈은 예전처럼 그것을 따라 낯선 장소로 달려가지 않았다. "찾을 수 있습니까?" 강철민이 물었다. "자료 보관 기관에 접수된 기록은 있으니, 정식 열람 절차부터 확인할 수 있겠죠. 아무거나 열 수 있는 열쇠는 아닙니다." 구은정은 '본인의 거절을 증명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출입 조건부터 잘못된 설계라고 지적했다. 거절을 증명하지 못하면 자료를 보러 오라고 하고, 자료를 보려면 거절을 증명하라는 모순된 구조였다. 그 모순 때문에 사람들은 시스템이 제시한 새 계약을 서명하고 들어갔을지도 몰랐다. 지훈은 손에 든 서류를 내려놓았다. "그 방식이라면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제 거절을 증명하기 위해 다른 계약에 서명하지 않겠어요." "그러면 원본을 못 볼 수도 있습니다." 예린이 말했다. "그럴 수 있죠. 하지만 못 보는 것과 남의 권한을 가져오는 건 다른 문제잖아요." 그날의 첫 상담 손님은 한재욱이었다. 세탁소의 공석 유지 서비스가 중단된 뒤, 사용하지 않던 관리 프로그램을 정리하고 싶다고 했다. 지훈은 확인된 계약 내역과 사업자용 문의 절차를 함께 정리했다. 재욱은 서류를 읽은 뒤 직접 서명했다. "이제는 어떤 서비스를 쓰는지도 제가 정해야겠네요." 그가 떠난 자리에는 아무런 숫자도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서류의 끝에 '본인 확인'이라는 작은 글씨가 남았다. 다음 손님은 박이안이었다. 그는 다경의 공구를 빌려 온 것이 아니라, 자신이 구매한 작은 드라이버 세트를 들고 왔다. 아직 손이 서툴렀지만 스스로 수리 절차를 설명할 수 있었다. "저 이제 제가 모르는 걸 안다고 말하지 않아요. 그래서 오히려 손님이 저를 믿어요." 지훈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저도 요즘 배우고 있습니다." 오후에는 구은정이 거래소의 공개 사례에 대한 수정 사실을 알려 왔다. 동의 확인이 안 된 몇몇 사례가 삭제됐고, 오지훈을 자동 시험자로 분류한 안내도 공개 화면에서 내려갔다. 그러나 기록의 사용 경위와 이미 전송된 자료는 여전히 조사 대상이었다. "끝났다고 말할 수는 없겠네요." "네. 하지만 누군가 자기 이름으로 거절하고, 그 거절이 일부라도 반영되는 절차는 시작됐습니다." 그날 저녁 한시온에게서 마지막으로 전화가 왔다. 어머니 정미가 옆에서 인사했다. 시온은 학교 방송 동아리 행사에서 짧은 대본을 읽었고, 처음으로 목소리 때문에 칭찬받았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 말은 안 들렸니?" 지훈이 묻자 소년은 가볍게 웃었다. "조금 들렸어요. 그런데 안 들으려고 했어요. 그냥 오늘 제 이야기가 더 좋았거든요." "그럼 충분하지." "아저씨, 저한테 그 능력이 정말 있는 건지는 아직 모르죠?" "응. 네가 겪는 일을 가볍게 생각하지는 않아. 그렇지만 왜 그런 일이 생기는지 아직 단정할 수 없어." "그럼 괜찮아요. 나중에 알아도 되니까요." 지훈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모든 답을 당장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던 자신에게는 그 말이 낯설었다. 한시온은 더 이상 자신을 증명하려고 누군가의 거절을 들려주지 않았다. 윤솔도 미리 정해진 직업 없이 학교생활을 계속하고 있었다. 강철민은 내일 새벽 반죽을 준비했고, 나예린은 자신의 휴일을 달력에 표시했다. 소개소 안의 빈 의자는 여전히 하나였다. 누가 들어올지 정해지지 않은 의자. 지훈은 그 의자를 옮기지 않았다. 누군가 앉고 싶다고 말하면 앉을 수 있고, 앉지 않겠다고 해도 아무도 대신 앉히지 않을 자리였다. 문을 닫으려는데 오래된 우편함에서 작은 봉투가 발견됐다. 보낸 사람은 없었다. 앞면에는 지훈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도장이 찍혀 있었다. '000번 원본 기록실 / 자진 반환 통지.' 안에는 한 장의 서류와 열 개의 빈칸이 있었다. 첫 번째 칸에는 '관찰', 두 번째에는 '청취'라고 적혀 있었다. 지훈이 그 종이를 예린에게 보여 주자 예린은 표의 맨 아래를 읽었다. '1차 반환 대상: 동의 없이 분리된 권한 2건.' "드디어 돌려준다는 겁니까?" 철민이 물었다. "그 말도 아직 확인해야 합니다." 지훈이 대답했다. 서류 뒷면을 넘기자 짧은 문장이 하나 더 나왔다. '반환 승인 요청자: 오혜숙.' 그 아래에는 익숙한 원칙이 손글씨로 적혀 있었다. '거절은 실패가 아니라 절차 종료다.' 그러나 마지막 줄의 글씨는 전혀 달랐다. '오혜숙은 현재 자신의 거절을 증명하지 못했습니다.' 지훈은 창밖을 바라봤다. 멀리 오혜숙이 다니던 오래된 인쇄소의 불 꺼진 간판이 떠올랐다. 능력의 조각보다 먼저 찾아야 할 것은 또다시 한 사람의 지워진 말이었다. 그는 봉투를 덮고 달력의 내일 날짜를 확인했다. 내일도 소개소는 문을 열 것이다. 다만 누구의 말을 대신 써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직접 말할 자리를 남겨 두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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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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