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것은 진열장의 유리판이었다.
박 씨가 손전등을 켜고 서 있었다. 유리판 아래에는 누군가 던진 돌멩이가 굴러다녔다. 다친 사람은 없었다. 철민은 돌을 집으려다 멈췄다. 예린이 먼저 손대지 말자고 했다.
"이건 신고해야죠."
지훈이 말했다.
박 씨는 겁을 먹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예린이 깨진 현장을 촬영하고, 지훈이 경찰에 신고했다. 건물 관리인에게는 차단기가 내려간 상황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모두가 하나씩 할 일을 나눴다.
철민에게는 가장 어렵고도 단순한 일이 주어졌다.
"사장님 옆에 있어 주세요."
누군가를 쫓아가 때리는 일이 아니었다. 그저 가게 주인 곁에서 기다리는 일. 철민은 두 손을 맞잡고 박 씨와 나란히 앉았다.
경찰이 도착했을 때 건물 관리인이 차단기함을 살폈다. 잠금장치가 파손되어 있었다. 정확한 경위는 조사해야 했다. 박 씨는 정리한 영상과 사진을 제출했고 지훈은 무단 채용 광고와 협박 메시지 사본도 함께 정리했다.
밤 열한 시가 지나 가게에 불이 들어왔다. 박 씨는 깨지지 않은 진열장에 남은 빵을 옮겼다.
"오늘 장사는 글렀네."
철민이 말했다.
"내일은 제가 새벽부터 돕겠습니다."
"몸은 괜찮아?"
"아직 반죽 순서가 헷갈립니다. 그래도 설거지는 할 수 있습니다."
박 씨는 앞치마 하나를 더 건넸다.
"그럼 설거지부터. 밀가루는 도망 안 가니까."
다음 날 아침, 철민은 정말로 설거지부터 했다. 따뜻한 물의 온도를 손끝으로 가늠할 때마다 무언가 익숙한 감각이 돌아왔다. 반죽을 만지지 않아도 주방의 질서를 이해할 수 있었다.
지훈은 그 모습을 보며 창을 확인했다.
[강철민 / 표현 가능 수준 61% → 67%]
[확인: 타인이 정한 직무가 아닌 자발적 선택]
좋은 징후였다. 그러나 숫자가 오른다고 무조건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지훈은 그 점을 철민에게 설명했다.
"손이 회복되어도 충분히 쉬어야 합니다. 갑자기 무리해서 일을 늘리지는 마세요."
철민이 투덜거렸다.
"제 몸은 제가 압니다."
"그렇죠. 그러니까 몸이 보내는 신호도 본인이 결정해서 들으세요."
잠시 후 두 사람은 웃음을 터뜨렸다.
오전 열한 시쯤, 정태식에게서 급한 연락이 왔다. 그의 딸이 피아노 건반에 손을 올리기만 해도 구토할 것 같은 공포를 느낀다는 내용이었다. 지훈은 의료적 원인부터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상담소의 이상한 능력만으로 모든 일을 설명할 수 없었다.
태식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면 제 딸도 꼭 회장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거군요."
"아직 모르죠. 하지만 아이가 아픈데 가설부터 증명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태식은 전화를 끊기 전 조용히 고맙다고 했다.
같은 날 오후, 김지연이 작은 옷가지를 들고 왔다. 딸 점퍼의 소매였다. 그녀는 바늘귀에 실을 꿰는 데 성공했고, 한 땀만 박았다. 그다음 손이 다시 멈췄다.
"왜 한 땀밖에 못 하지?"
지연이 얼굴을 감쌌다.
"한 땀도 작지 않아요."
지훈은 말했다.
"이건 남이 대신 해 준 것도 아니고, 지연 씨가 직접 고른 일이잖아요."
지연이 손수건으로 눈을 닦았다.
"전에는 하루에 셔츠 백 벌도 고쳤는데요."
"오늘은 아이 소매 한 땀이 목표였고요. 내일은 또 다를 수 있죠."
그 순간 지훈에게 낯선 메시지가 떴다.
[김지연 / 잠금 유지 원인 재평가]
[대가 수령: 회사 선지급금]
[소속 재확인: 유효]
[서명: 본인 의사 검증 실패]
이상했다. 계약의 세 조건이 모두 충족되어야만 잠금이 유지된다는 태식의 가설이 맞다면, 지연의 경우 하나가 깨진 셈이었다.
그런데 왜 완전히 돌아오지 않는 걸까.
지훈은 태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계약은 세 부분으로 나뉘는 게 아니라, 세 부분이 서로를 대신하고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하나가 흔들려도 나머지가 붙잡는 식으로요."
태식은 바로 알아들었다.
"그렇다면 원본을 찾아야겠군요. 부분 계약이 아니라 맨 처음의 문장을."
"원본이 어디 있습니까?"
"계약관리실에 보관됩니다. 서류철이 아니라 서버 기록과 종이 대장이 함께 있어요. 한쪽을 없애도 다른 쪽이 남도록요."
지훈이 한숨을 쉬었다.
"회사에 허락 없이 들어갈 수는 없겠네요."
"그렇죠. 하지만 근로자 당사자들이 자기 계약서 사본을 요청할 수는 있어요. 그리고 저는 제가 작성한 계약서 양식 원본이 있습니다."
태식은 예전 개인 업무 파일에서 템플릿을 찾았다고 했다. 민감한 정보가 없는 빈 양식이었다.
예린은 그 양식을 열자마자 표정이 굳었다.
"여기 '직무 반환' 항목이 있네요."
"어디요?"
"문서 끝입니다. 작은 글씨로."
'퇴직 및 직무 반환 요청은 최초 권한 부여자의 승인에 의한다.'
"최초 권한 부여자라면 백도식 회장 아닙니까?"
지훈이 물었다.
태식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 계약서에는 회장 이름이 없습니다. 제가 들어갔을 때부터 없었어요."
지훈은 창밖의 빵집을 봤다. 철민은 느린 동작으로 그릇을 닦고 있었다. 불빛 아래로 보이는 손은 여전히 컸고, 여전히 조심스러웠다.
자기 인생을 되찾기 위해 애쓰는 저 손이 누구의 '권한'으로 묶여 있다는 말인가.
그날 밤, 지훈의 눈앞에 처음으로 검은색 문장이 떠올랐다.
[118번 예정 직무: 반환 심사자]
[지정 목적: 이탈자 재분류]
지훈은 자신이 백도식에게 필요한 이유를 조금 이해했다.
백도식은 그의 능력을 없애려는 게 아니었다.
그 능력을 이용해 도망친 사람들을 다시 배치하려는 것이었다.
제8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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