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 당일 아침, 새 출발 직업소개소 앞에 낯선 취재 차량이 세워졌다. 기자들은 지훈에게 거래소의 청취 능력을 보여 달라고 요청했다. 그 가운데 한 명은 한시온의 얼굴이 나오는 사진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 사진을 어디에서 받으셨습니까?"
지훈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제보자 보호 때문에 말하기 어렵습니다. 진짜 능력이 있다면 사진 한 장쯤 보여 줄 수 있지 않습니까?"
"미성년자를 검증 대상으로 내세우지 않겠습니다. 사진도 공개하지 말아 주세요."
기자는 카메라를 내리지 않았지만 질문을 멈췄다. 예린은 해당 사진의 공개 중단을 요청할 수 있는 절차를 정미에게 안내했다. 누구의 잘못인지 섣불리 추측하지 않았다.
한편 거래소의 공개 행사는 예정대로 시작됐다. 원천 제공자와 청취자가 모두 비어 있었지만 주최 측은 빈 의자 두 개를 무대에 올렸다. 화면에는 '거절을 되찾을 마지막 기회'라는 문구가 번쩍였다.
행사 진행자는 참가자들이 제출한 사례를 소개했다. 세탁소 직원의 퇴사, 병원 간호사의 야간 근무 거절, 공장 직원의 안전 점검 중단 요청. 모두 개인 사정이 얽힌 이야기였다. 그런데 화면에서는 거절했던 부분만 삭제된 문장이 정답처럼 출력됐다.
'본인 의사 확인 완료.'
"확인한 적이 없는데요."
세탁소 사장 한재욱은 휴대전화로 화면을 보다가 중얼거렸다. 그는 행사 주최 측에 어떤 자료도 제출하지 않았다. 예전 프로그램에 남아 있던 문서가 어디선가 거래소에 넘어갔을 가능성이 있었다.
재욱은 자신의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냥 넘기지 않았다. 공개된 사례의 근무 시간과 공석 처리 날짜가 자기 세탁소 자료와 일치했다. 그는 정식으로 사용 경위를 문의했다.
그 사이 지훈은 작은 상담실에서 서다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경은 자신의 기술을 빌려 쓰던 박이안이 오늘 처음 단독으로 작은 라디오를 고쳤다는 소식을 전했다. 아직 전문가 수준은 아니지만, 고장이 난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이안 씨가 제가 하던 일을 똑같이 하진 못해도 괜찮아요. 그분은 자기 방식으로 배우고 있으니까요."
지훈은 그 말을 기억해 두었다. 실제 일을 배우는 일과 누군가의 경험을 상품으로 가져가는 일 사이에는 크고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오후 두 시, 행사는 갑자기 중단됐다. 구은정이 정식 절차로 제출한 이의 제기와 관련 자료 보존 요청이 운영사 측에 전달됐고, 주최 측은 '운영 정책 검토'를 이유로 일부 사례를 비공개 처리했다. 지훈은 이것을 전체 서비스의 중단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실제로 확인된 것은 몇 개 사례의 공개가 멈췄다는 사실뿐이었다.
하지만 무대 위 빈 의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날 밤 백도식이 지훈을 찾아왔다. 처음과 달리 그는 사무실 문을 노크하고 들어왔다.
"자네가 못 본 자료가 있네. 원천관리계정이 왜 청취 기능을 만들었는지 말이야."
그는 오래된 회의록 사본을 내밀었다.
'취업 이탈 방지를 위한 거절 예측 기능. 실제 거절 발언이 확인되지 않을 경우 예상 거절문으로 대체 작성한다.'
지훈은 문장을 읽고 멈췄다.
"이건 과거의 말을 복원하는 게 아니군요."
"그래. 말하지 않은 말을 만들기도 했지."
백도식은 손을 모았다.
"내가 그 결정에 찬성했네. 인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었어. 사람을 붙들어 두는 것이 회사를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했지."
"그럼 실제로 하지 않은 거절을 들었다는 사람이 나타나면 어떻게 했습니까?"
"기록이 맞다고 주장했어. 원본은 더 이상 없다고 했지."
지훈은 회의록을 복사하지 않고, 제공 권한과 출처를 확인한 뒤 필요한 범위에서 보관 절차를 밟았다. 백도식의 진술만으로 모든 사실이 확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조사해야 할 명확한 질문을 만들었다.
밤 아홉 시, 한시온이 어머니와 함께 짧은 통화를 요청했다.
"아저씨, 오늘은 아무 말도 안 들렸어요. 그래서 좋았어요."
"다행이네."
"그런데 저번에 들었던 그 말 있죠. '난 누구의 인생도 대신 정하지 않겠습니다.' 거기에는 뒤에 한 문장이 더 있었어요."
"어떤 말이니?"
시온은 천천히 대답했다.
"'내가 상담을 그만둬도, 그 사람이 선택한 건 남아 있어야 한다.'"
지훈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것이 자신의 과거 발언이든, 시온이 만들어 낸 문장이든, 이상할 만큼 자신이 지금 배우고 있는 일과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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