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미의 남편 한재욱은 동네에서 십오 년째 세탁소를 운영했다. 하루 종일 다림질하고 옷을 분류하는 일이 익숙했지만, 직원이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던 날만큼은 또렷이 기억했다.
"대학생이었어요. 취업 준비 때문에 야간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겠다고 하더군요. 잡지 않았습니다. 대신 남은 급여를 정확히 계산해서 줬죠."
그런데 세탁소가 쓰던 오래된 인력 관리 서비스에는 '퇴사 요청 불허'라는 문구가 남아 있었다. 한재욱은 몇 년 전 무료 체험 기간에 설치했던 프로그램이었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쓰지 않지만, 관리 업체가 바뀌었다는 안내를 여러 번 받았다.
지훈과 예린은 한정미의 허락을 받아 사업자 명의로 조회할 수 있는 범위의 문서만 살폈다. 과거 아르바이트생의 이름이나 연락처를 가져오지 않았다. 확인되는 것은 한 가지였다. 그 직원이 그만두었다는 사실과 프로그램에 기록된 처리 결과가 서로 달랐다.
"혹시 회사가 돈을 청구한 적 있습니까?"
예린이 물었다.
"지난해부터 소액이 빠져나갔어요. '공석 유지 서비스'라는 이름이었죠. 오래된 계약인 줄 알고 냈습니다."
지훈은 계산서를 보았다. 한 달에 만 이천 원. 큰돈이라고 할 수도, 무시할 돈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적어도 본인이 이해하지 못한 서비스에 돈을 내고 있었다.
한재욱은 창고에서 낡은 약관을 꺼냈다.
'퇴사자 발생 시 해당 직무를 보유 공석으로 등록하며, 사업장 요청이 있을 때까지 공석 상태를 유지합니다.'
"전 아무것도 요청하지 않았는데요."
"그렇다면 언제, 누가 이 계약을 신청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지훈은 답했다.
옆에서 듣던 한시온이 조용히 말했다.
"그날 직원이 했던 말은 안 들려요. 아빠가 '그만둬도 된다'고 한 말만 들려요. 그런데 그 뒤에 다른 소리가 붙어요. '빈자리는 남겨 두십시오.'"
"누가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니?"
"모르겠어요. 테이프를 빨리 감는 것 같아요."
지훈은 시온에게 더 들으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재욱이 가진 계약서와 청구 내역을 보존하고, 현재 관리 업체에 서면으로 사실관계를 물었다. 정당한 서비스 신청이 있었는지 확인하고, 원치 않는 부과를 중단하는 절차도 안내했다.
다음 날 업체에서는 예상 밖의 답변을 보냈다.
'계약자 확인 불가. 최초 서비스 제공 계정은 원천관리계정이며, 공석 유지 대금은 미래재능거래소에 양도되었습니다.'
철민은 계산서를 보고 한참 침묵했다.
"삼 년 전에 그만둔 직원의 자리에 지금까지 월세를 내고 있었네요."
"그 사람이 돌아올 자리를 남겨 둔 것도 아니에요. 누구든 들어갈 수 있는 빈자리라고 팔았겠죠."
지훈은 4,812라는 숫자를 떠올렸다. 그때는 전국의 처리 상한선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 숫자 뒤에는 누구의 거절이 왜곡되었는지 모르는 소규모 사업장들이 숨어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 그 연결을 증명할 자료는 없었다.
저녁에 지훈은 세탁소의 출입문을 지나며 시온에게 말했다.
"시온아, 오늘 네가 소리를 들었다고 해서 우리가 이 문제를 확인한 건 아니야. 아버지가 보관한 종이가 있었기 때문에 확인할 수 있었어."
"그럼 제 능력은 쓸모없어요?"
"아니. 다만 네가 쓸모를 증명해야 할 의무는 없어."
시온은 한참 생각하다 물었다.
"그러면 저도 오늘은 그냥 아들이어도 되죠?"
"그럼."
세탁소 안에서 다리미의 김이 희미하게 올라왔다. 재욱은 낡은 금속 옷걸이를 정리하며 아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날 밤, 거래소의 광고 문구가 바뀌었다.
'거절 재생 서비스 출시 기념 — 첫 번째 성인 시험자 공개 모집.'
지원자 소개란에는 이미 작성된 이름이 있었다.
'오지훈 / 원천 제공자 / 참가 동의 대기.'
제74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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