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온의 전화가 온 다음 날, 오지훈은 소개소 문에 '오후 두 시 상담 재개'라는 종이를 붙였다. 오전에는 새로운 의뢰를 받지 않기로 했다. 이전이라면 단 한 명의 구직자라도 놓칠까 봐 문을 잠그지 못했을 것이다.
"뭐 하십니까?"
식빵 상자를 들고 올라온 강철민이 물었다.
"제 기록 보러 가려고요. 오늘 오전 상담은 쉬겠습니다."
철민이 잠깐 놀랐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 빵은 오후에 드세요. 오전에 먹으면 쉬는 게 아니잖아요."
지훈이 웃었다. 철민이 자신보다 휴식을 잘 배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은정은 상담 기록 019의 열람을 위해 필요한 절차를 설명했다. 원본 보관 기관에 제출한 열람 요청이 접수되었고, 개인정보가 섞인 부분을 제외한 사본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음성의 진위는 별도 감정이 필요했다.
"오 년 전 제 퇴사 얘기까지 남아 있을까요?"
"퇴사라는 표현이 있었다는 사실은 확인됐어요. 하지만 무슨 일을 그만둔다고 말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오전 열한 시, 세 사람은 작은 회의실에서 기록을 열람했다. 영상은 없었다. 저음질 음성 일부와 서류 작성 시각이 나란히 기록돼 있었다.
[발언자: 오지훈 / 확인 대기]
'저는 그 일은 안 하겠습니다. 상담은 계속할 수 있어요. 그런데 사람을 번호로 넘기는 업무는 안 하겠습니다.'
지훈은 의자 팔걸이를 움켜쥐었다. 말투가 낯익었다. 놀랍게도 문장도 낯익었다. 한때 자신이 구직 지원 사업의 단기 상담원으로 일하면서 사람을 실적표에 입력하라는 지시를 거부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돌아왔다.
"저는 그때 직업 자체를 그만두겠다고 한 게 아니군요."
"기록에 의하면 그랬을 가능성이 있죠."
은정이 말했다.
이어진 문서는 더 이상했다. 음성에는 '그 일은 안 하겠다'는 거절이 남아 있었는데, 표준화된 상담 기록에는 '상담사 직무 전환 희망'이라고 적혀 있었다. 반영 시각은 원본 발언보다 세 분 뒤였다.
예린이 양쪽을 나란히 놓았다.
"거절을 승계 신청으로 바꾼 겁니다. 누가 했는지 확인할 로그가 필요해요."
지훈은 화면 아래의 이름을 읽었다.
'검토자: 백도식. 작성 권한 위임자: 원천관리계정.'
백도식에게 확인을 요청하자 그는 늦은 오후 직접 나타났다. 거친 태도 대신 수첩과 수리한 시계를 들고 있었다. 그는 음성 기록의 앞부분을 듣고 눈을 감았다.
"자네가 이런 말을 했던 건 기억나네."
"그런데 왜 저를 반환 심사자 후보로 적었습니까?"
"내가 모든 걸 직접 입력한 건 아니었어. 하지만 위임 승인에 서명했지. 그건 사실이네."
"거절한 사람에게 일을 배정해도 되는지 묻지 않으셨습니까?"
백도식은 선뜻 답하지 않았다. 철민이 1층에서 빵을 옮기는 소리가 복도로 들렸다. 백도식은 그 소리를 들으며 말했다.
"내가 그때는 사람이 거절하면 그 일을 할 다른 사람만 찾으면 된다고 생각했네. 누가 무엇을 원치 않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어."
"지금은요?"
"이제는 그 말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 알 것 같네. 그렇다고 없던 일이 되지는 않겠지."
지훈은 사과를 곧바로 받아들이지도, 상담을 중단하지도 않았다. 이 기록은 백도식에게 책임을 묻는 자료인 동시에 그가 스스로 선택을 바꿀 기회이기도 했다.
그날 저녁 예린은 문서 변경 시각을 다시 확인하다 이상한 사실을 발견했다. 당시 '원천관리계정'의 인증 장치가 발행된 장소는 백도식의 회사가 아니었다.
'발행처: 공석관리재단 실험사업부 / 항목명: 거절 음성 자산화.'
열람 목록에는 설명이 짧게 덧붙어 있었다.
'입력 불가 문장을 새로운 직무로 변환하는 시험.'
지훈은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이 거절한 직업이 어디로 갔느냐는 질문보다 더 무서운 질문이 생겼다. 그들은 사람의 거절마저 무엇인가 팔 수 있는 것으로 만들고 있었다.
제7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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