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린이 처음 273이라는 숫자를 봤을 때는 사람 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환급 안내의 첨부 목록을 한 장씩 대조해 보니 같은 사람이 두 개의 계약을 가진 사례가 있었고, 반대로 한 계약에 여러 명의 이용자가 묶여 있는 사례도 있었다. 외부에 공개된 자료만으로 실제 인원수를 산출할 수 없었다.
"그럼 273명이라는 말은 틀린 거네요?"
지훈이 물었다.
"적어도 확인되지는 않았어요. 정확하게는 원천 제공자 미식별 항목 273건이에요."
예린은 자신이 만든 요약표 제목을 고쳤다. 철민은 '숫자 하나 가지고 그렇게 오래 고민하냐'고 했다가, 곧 말을 바꿨다.
"생각해 보니 나도 117명 중 하나였죠.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안 보이고."
"그래요. 번호가 사람을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면 안 되니까."
그날 오후, 소개소에는 오랜만에 평범한 구직 상담 예약이 들어왔다. 서른여덟 살 김수빈은 요양시설에서 십 년 동안 일했고, 허리가 아파 같은 일을 지속하기 어려웠다. 수빈은 돌봄 경력을 버리지 않으면서 몸에 부담이 적은 업무를 찾고 싶다고 했다.
"컴퓨터는 잘 못해요. 그래서 저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나 봐요."
지훈은 숫자 없이 질문했다.
"동료들이 가장 자주 부탁하던 일은 뭐였나요?"
"근무표를 제가 짰어요. 갑자기 빠지는 사람이 있으면 일정 조정하고요."
"그건 단순한 일이 아니에요. 다만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는 직접 해 봐야 알겠죠."
수빈은 하루 동안 모의 일정표를 만들었다. 지훈은 기본 컴퓨터 교육 과정과 근로조건을 확인할 수 있는 채용 공고 몇 개를 함께 살폈다. 수빈이 '오늘은 지원까지 하지 않겠다'고 하자 지훈은 서류를 덮었다.
"다음 주에 다시 와도 되죠?"
"물론이죠."
수빈이 돌아간 뒤 다경이 문을 열었다. 그녀는 이안과 함께 라디오의 접촉 불량을 수리하고 있었다. 작업 속도는 예전만 못했지만, 이제는 어느 부분이 자기 감각이고 어느 부분이 연습에서 온 것인지 조금씩 알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내 기술을 어떻게 되찾느냐가 문제였는데, 여기 오니까 다른 사람은 일을 어떻게 바꿔야 하나 고민하고 있네요."
지훈이 웃었다.
"소개소는 원래 그런 데니까요."
수빈이 나간 자리에는 고쳐 쓴 이력서가 한 장 남았다. '주요 업무: 어르신 생활 지원' 아래에 '근무 일정 조율, 인수인계표 작성, 신규 직원 교육 보조'가 추가됐다. 지훈은 아무 날짜도 적지 않은 다음 상담 예약 카드를 꺼냈다. 수빈이 원하는 때 연락하겠다고 했으니 빈 칸은 빈 칸으로 두었다. 문득 백도식이 사람의 공란을 손실이라고 부르던 때가 떠올랐다. 오늘 이 빈 칸은 손실이 아니었다. 아직 선택하지 않은 사람을 위한 자리였다. 철민은 탁자에 떨어진 빵 부스러기를 치우며 '우리 소개소에도 그런 빈자리가 있어야겠네요'라고 말했다.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솔의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솔은 오늘 학교에서 스스로 숫자를 보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동안 잠시 머리 위 글씨가 흐려졌다고 했다. 미정은 그것이 우연인지 알 수 없지만 아이가 안도했다고 전했다.
예린은 새로 도착한 거래소 자료에서 273건 가운데 반복되는 세 글자를 찾아냈다.
'관찰대기.'
적성 제공자와 이용자 사이에 들어간 새로운 역할이었다. 거래소는 재능을 파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관찰하게 만든 뒤 그 결과를 팔고 있는 듯했다.
더 아래에는 별도의 분류가 있었다.
[관찰대기 / 미성년 보유자: 9건]
지훈은 화면을 다시 읽었다.
"솔이 하나가 아니군요."
"그럴 가능성이 있어요. 이 숫자는 인원이 아니라 기록 건수일 수 있습니다. 개인정보를 함부로 조회할 수는 없으니 공적 확인 절차가 필요해요."
지훈은 솔의 이름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필요한 범위의 사실관계만 담당 기관에 전달하기로 했다.
그날 밤 소개소 우편함에는 발신인 없는 봉투가 들어 있었다.
안에는 구직 광고가 아니라 어린아이의 손글씨로 쓴 질문이 있었다.
'저는 커서 무엇이 될지 아직 못 정했는데, 왜 벌써 제 직업을 샀다고 하나요?'
제65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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