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의 학교는 평소와 다름없이 시끄러웠다.
점심시간 복도에서 우유 팩이 터졌고, 학생회는 축제 포스터를 붙였다. 솔은 친구 채윤과 급식 줄에 섰다. 능력을 얻은 뒤 처음으로 학교가 무서운 곳처럼 느껴졌다. 모르는 사람들의 숫자가 너무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너 왜 자꾸 위를 봐?"
채윤이 물었다.
"그냥."
"나 머리 위에 뭐 묻었어?"
솔은 고개를 저었다. 채윤의 머리 위에는 '동화 삽화 94%'라는 수치가 떠 있었다. 그런데 솔은 채윤이 지난달 미술대회에서 상을 받지 못해 그림을 한동안 그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숫자를 말하면 도움이 될까. 아니면 또 다른 부담이 될까.
채윤이 먼저 털어놓았다.
"나 축제 포스터 안 그릴래. 사람들이 계속 넌 그림 잘 그리잖아 하거든. 좋아하는 건 맞는데 맨날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솔은 마음속에서 숫자를 접어 넣었다.
"응. 싫으면 안 해도 되지."
"근데 아예 안 하면 아쉽기도 해."
"그럼 오늘은 구경만 하자."
두 아이는 도서관으로 갔다. 수업이 끝난 뒤 솔은 지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다른 사람한테 숫자가 보인다고 무조건 말하면 안 되죠?' 지훈은 답했다. '말하기 전에 상대가 듣기를 원하는지, 말해도 안전한지 생각해 보자. 굳이 말할 의무는 없어.'
도서관에서는 진로 탐색 책을 읽기로 했다. 채윤이 '어른들은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라고 하면서, 직업이 되면 끝까지 책임지라고 말하는 게 이상해' 하고 투덜댔다. 솔은 책을 펴다가 자기도 모르게 채윤의 머리 위를 다시 보았다. 수치 아래에 전에 없던 작은 화살표가 나타났다. 누군가 새 정보를 받아 적는 듯한 느낌이었다. 솔은 고개를 숙였다. 채윤이 걱정스레 물었지만 솔은 '나 요즘 너무 많은 생각을 했나 봐'라고만 말했다. 채윤은 더 묻지 않고 북마크 하나를 건넸다. 거기에는 손글씨로 '하고 싶으면 하고, 오늘 싫으면 쉬기'라고 적혀 있었다. 솔은 그 작은 종이를 주머니에 넣었다. 다른 사람의 진로에 대해 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꺼내 볼 생각이었다.
같은 시각, 예린은 임시 보유 종료 시점이라는 문구가 어디서 시작됐는지 찾고 있었다. 거래소에서 공개한 서비스 약관에는 '관찰자 보유 기간 7일'이라는 문장이 있었다. 대상자의 자격이나 동의 조건은 제대로 설명돼 있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눈을 일주일 빌려줬다는 거네요."
철민이 말했다.
"그렇게 표시한 문서예요. 실제로 무엇이 일어나는지는 아직 몰라요."
예린은 무리하게 운영 시스템에 들어가지 않았다. 당사자가 제공한 안내 문자와 공개된 상품 소개, 회사 회신을 비교했다. 그 결과 한 가지 이상한 점을 찾았다. 솔에게 갔다는 권한은 능력을 사용하는 권한이 아니라 '관찰 결과 제출 권한'으로 분류돼 있었다.
"단순히 보라고 준 게 아니었어요. 보이는 결과를 누군가가 받을 수도 있습니다."
지훈은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
"솔이에게는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대요."
"네. 하지만 전송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어요."
둘은 미정과 상의해 솔의 휴대전화에 설치된 최근 앱 목록과 권한을 점검했다. 새로운 앱은 없었다. 낯선 서비스 로그인 기록도 찾지 못했다. 솔은 그동안 아무것도 누르지 않았다고 했다.
"그럼 저는 보고만 있었는데도 정보를 보낸 걸까요?"
"그럴 가능성 때문에 확인하는 거야. 네가 잘못했다는 뜻이 아니야."
지훈이 대답했다.
잠시 뒤 솔이 스스로 제안했다.
"내가 안 보고 있으면요? 사람을 쳐다보지 않으면 숫자가 안 가겠죠?"
"그걸 증명하려고 네 생활을 바꿀 필요는 없어. 다른 방법을 찾자."
하지만 그날 밤, 거래소 서비스 관리 화면의 공개 공지에 새로운 항목이 떴다.
[관찰 결과 누적: 46건]
[관찰자: 윤솔]
[기록 제출 완료: 46건]
예린의 손이 멈췄다.
솔이 말한 사람 수와 정확히 같은 숫자였다. 아무 앱도 누르지 않았는데, 어딘가에는 이미 마흔여섯 사람의 미래가 상품 목록처럼 쌓여 있었다.
제63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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