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오전 열 시, 새 출발 직업소개소의 의자 세 개가 새로 닦였다.
지훈은 일부러 학교가 끝나는 시간 전에는 연락하지 않았다. 솔과 미정이 먼저 정한 약속은 토요일 낮, 사람들이 드나드는 상담실에서 만나자는 것이었다. 동행 여부도 미정과 솔이 상의해 정했다. 철민은 상담실 문 앞에 '예약 상담 중' 팻말을 걸었지만 안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갈지 묻지 않았다.
"여기가 그 직업소개소예요?"
솔은 문패를 보고 웃었다.
"생각보다 작아요."
"장래가 촉망되는 회사라서요. 아직 장래만 있어요."
지훈의 대답에 미정이 처음으로 긴장을 풀었다. 솔은 책상 앞에 앉자마자 굴러다니던 색연필을 가지런히 놓았다. 지훈은 그 행동을 보고도 어떤 적성이 있다고 단정하지 않았다.
"먼저 중요한 말을 할게. 여기서는 학생의 직업을 정해 주지 않아. 나는 네가 보고 있는 것이 뭔지도 정확히 몰라."
솔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저씨는 원래 다 아셨다면서요?"
"숫자가 보였지. 하지만 그 숫자대로 살라는 말은 아니었어."
솔은 조심스럽게 지훈을 바라봤다. 눈앞에 글씨가 떠올랐다.
[오지훈 / 직업 적성 분석: 원본 제공자]
[권한 복귀: 보유자 확인 필요]
[현 직업: 직업상담사]
[표시 정확도: 검증되지 않음]
"마지막 줄이 있어요. 정확하지 않을 수 있대요."
지훈은 미정과 눈을 마주쳤다.
"그 문장을 기억해 줬으면 좋겠네. 능력은 정확한 정보라는 보증서가 아니야."
솔이 자신이 본 내용을 스스로 말해도 된다고 했기에 지훈은 몇 가지를 적었다. 이름과 직업 비율이 보이지만, 사람의 지난 일을 보지는 못한다.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마다 수치가 바뀌기도 한다. 솔의 친구 한 명은 '무용 96%'였다가 친구의 발목이 아파 쉬는 동안 '식물 기록 93%'로 달라졌다.
"그러면 그 친구는 무용을 그만둬야 할까?"
솔이 곧장 고개를 저었다.
"걔는 춤추는 걸 좋아해요. 쉬면 되잖아요."
"바로 그거야. 수치가 바뀌어도 사람의 마음은 그 사람에게 있어."
미정은 상담실을 한 바퀴 둘러봤다. 벽에는 노동 관련 기관의 안내문, 무료 교육과정 정보, 자필로 적힌 '본인 의사 필수'라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제 딸에게서 이런 게 보이는 이유가 선생님과 관련 있다면, 우리한테 무슨 일이 생기는 건가요?"
"모른다는 게 제일 정확한 답입니다. 그래서 더 조심하려고 합니다. 연락 온 사람이 어떤 계약서를 내밀더라도 당장 결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솔이의 학교나 일상을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솔이 갑자기 손을 들었다.
"그럼 저는 진로 상담 말고 다른 거 물어봐도 돼요?"
"그럼."
"요즘 화분이 자꾸 죽어요. 식물에 물 주는 간격을 어떻게 알아요?"
지훈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우리 아래층 빵집 사장님은 식물을 잘 못 키워. 대신 건물 옥상 텃밭을 관리하는 경비 아저씨를 아는데, 그분에게 물어볼까? 네가 원하면."
솔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직업 적성이라는 무거운 문제보다 그에게는 창가의 바질이 더 중요했다.
잠시 쉴 때 철민이 아래층에서 직접 만든 빵 두 개를 가져왔다. 미정이 먼저 먹어도 괜찮겠냐고 물었고 솔이 하나를 골랐다. 지훈은 철민을 소개하며 말했다. '이분은 오래 전혀 다른 일을 했지만 지금은 빵을 굽고 계셔.' 솔은 철민의 어깨 너머로 뜬 수치를 읽고 놀랐다. '제빵 98.7%'라는 숫자 뒤에 '선택에 따라 변화함'이라는 작은 문장이 있었다. 솔은 그 말을 노트에 적었다. 철민은 자기 수치가 뭐냐고 묻지 않았다. 대신 손바닥의 반죽 자국을 보며 말했다. '아직 더 배워야 합니다. 오늘은 설탕을 두 번 넣을 뻔했어요.' 숫자만큼 선명한 것은, 스스로 새 일을 배우겠다는 그의 태도였다.
상담을 마치고 일어나려던 솔이 문득 지훈의 뒤쪽을 보았다. 벽에 아무도 없는데 글씨 한 줄이 떠올랐다.
[적성 분석 관찰자 / 접속 대상 확인]
[윤솔 / 임시 보유 종료 시점: 6일 후]
솔의 표정이 굳었다.
"아저씨. 저한테 일주일밖에 안 남았대요."
"뭐가?"
"이 숫자들이요. 아니…… 숫자를 볼 수 있는 제가요."
지훈은 즉시 정정했다.
"그 문구가 너를 없애거나 바꿀 수 있다는 증거는 없어. 우선 무슨 의미인지 확인하자."
미정이 솔의 손을 잡았다.
소녀의 눈앞에서는 보이지 않는 시계가 조용히 초를 세기 시작했다.
제6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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