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다경은 그날 극장에 가지 않았다.
"무리하면 기계가 망가질 수도 있어요. 제 손이 이상하다는 사실보다, 제가 그걸 모르고 만지는 게 더 무섭습니다."
그녀는 고객에게 점검 연기를 알리고 이미 약속한 방문 비용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상대는 당황했지만 다른 기술자를 구해 보겠다고 답했다. 전화를 끊은 다경은 한동안 손바닥만 바라봤다.
지훈은 소개소 책상에서 고장 난 휴대용 라디오를 꺼냈다. 지난해 창고 정리 때 발견한 물건이었다.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고 배터리 덮개가 조금 깨져 있었다.
"이걸 만져 보실래요? 꼭 고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정말 안 고쳐도 됩니까?"
"네. 지금은 뭘 할 수 있고 뭘 어려워하시는지 확인하려는 거예요."
다경은 라디오를 뒤집었다. 작은 나사 두 개를 풀고 케이스를 열어 보더니 바로 닫았다.
"전에는 이렇게 열면 안쪽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요. 납이 들뜬 자리나 배선이 얇아진 지점이 눈에 들어왔고요. 지금은 그냥 부품이에요."
"기억까지 사라진 건가요?"
"아니요. 도구 이름은 알아요. 작업했던 극장도 기억합니다. 그런데 고장이 날 때 손이 먼저 알아채던 감각이 끊겼어요. 딱 삼 초쯤 머뭇거리다가요."
그 말이 끝날 무렵 빵집에서 전화가 왔다. 강철민이었다.
"상담사님! 점심 먹으러 온 청년이 아까 그 행사장 사람이랍니다. 지금 아래층에 있어요. 그런데 울고 있습니다."
지훈이 내려가자 박이안이 소보로빵을 앞에 놓고 앉아 있었다. 박선규는 그에게 따뜻한 물을 건넸다.
"어떻게 찾아왔어요?"
"아까 행사장에서 선생님이 저 보셨죠. 저도 봤어요. 나갈 때 여기 간판을 봤습니다."
이안은 오른손을 부여잡았다.
"아까는 믹서를 고쳤는데, 다시 해 보라니까 못 했어요. 세 번이나요. 내가 배운 적이 없으니까 당연한데…… 그 사람들이 저더러 장난치냐고 화를 냈어요."
"카드를 잡은 다음에는 어떻게 됐습니까?"
"모르겠어요. 손이 움직였는데 제가 한 일 같지 않았어요. 누군가 예전에 만졌던 기계가 눈앞에 겹쳐 보였어요. 빨간 테이프 붙은 선, 무대 오른쪽의 검은 상자 같은 것들요."
다경의 눈이 번쩍 뜨였다.
"검은 상자에 흰색으로 3이라고 써 있었나요?"
"네. 맞아요."
"그건 제가 십 년 전에 쓰던 이동형 랙이에요. 오른쪽에 빨간 절연테이프를 붙여 놓았죠."
이안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설마 제가…… 선생님 기억을 가져간 겁니까?"
지훈이 손바닥을 들어 그를 말렸다.
"아직 그건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안 씨가 누군가의 경험을 빼앗으려고 지원한 것도 아니잖아요."
"그냥 일하고 싶었어요."
이안은 울음을 삼켰다. 그런 말에 사과해야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지훈은 싫었다.
예린은 행사장 안내문과 두 사람의 통화 시각, 카드 사용 시각을 나란히 놓았다. 다경이 작업 감각을 잃었다고 말한 시각과 이안이 손을 움직이기 시작한 시각이 세 분 안쪽으로 겹쳤다.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었다.
"이건 단순한 경력 정보 복사가 아닐 가능성이 있어요."
"그럼 재능을 진짜로 옮긴다는 겁니까?"
"섣불리 결론 내리진 않겠습니다. 다만 검증 없이 사람을 현장에 투입할 수 없는 체험이라는 건 분명해요."
다경은 이안의 앞에 앉았다.
"그 일을 진짜 배우고 싶어요?"
"네. 그런데 이렇게 배우는 건 싫어요."
"그럼 내일 아침에 다시 와요. 나도 어차피 내가 아는 걸 다시 확인해야 하니까. 우리 둘 다 처음부터 배웁시다."
이안이 눈을 들었다.
"제가 선생님께 배워도 됩니까?"
"지금은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마요. 나도 모르는 게 생겼거든."
다경은 처음으로 웃었다. 그때 그녀의 휴대전화에 알림이 떴다.
[양도 대상 적성 1차 검증 완료]
[잔여 이전 가능량: 84%]
[다음 이용자 예약: 17:30]
다경은 웃음을 멈췄다. 누군가는 한 사람의 손끝에서 아직 가져갈 것이 남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53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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