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규가 받은 통지에는 오전 열 시부터 열 시 삼십 분까지의 '운영 공백'이 기록돼 있었다. 그 시각 박 씨는 빵집 뒤편에서 잠깐 약을 먹고 쉬고 있었다. 강철민이 계산대를 지켰고, 빵집은 문을 닫지 않았다.
"내가 화장실만 다녀와도 사장이 바뀌겠네."
박 씨가 분통을 터뜨렸다.
"오늘은 약을 먹었으니까 반나절 쉬어야겠습니다. 그럼 우리 빵집은 누가 가져가요?"
철민이 진지하게 물었다.
"아마 먼저 온 손님이 사장님 자리를 사겠죠."
박 씨가 밀가루 묻은 행주를 던졌다. 철민은 웃으면서도 눈은 웃지 않았다. 그가 예전에 속했던 회사에서는 아프다고 쉰 날에도 벌금이 붙었다. 쉬는 시간을 돈으로 계산하는 방식은 새롭지 않았다. 다만 이제 그 계산이 누구의 이름으로 돌아가는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구은정은 소개소로 올라와 문서 하나를 놓았다. 지방 산업단지와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공석관리 시범사업 설명서였다. 제도 취지는 인력 부족 시 긴급 대체자를 소개하는 것이었다. 병가나 휴식으로 생긴 업무 공백을 신고하면 본인이 요청한 범위에서 대체 인력과 연결해 준다는 내용도 있었다.
"처음의 목적은 나쁘지 않았어요."
은정이 말했다.
"그런데 지금 운영 화면은 누가 요청했는지를 확인하지 않습니다. 공백이 생겼다는 사실만으로 다음 사람을 연결하죠."
"그럼 박 사장님이 쉰 것도 누군가가 대신 일하겠다고 신청한 걸로 바뀝니까?"
"그런 정황이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됐는지는 해당 운영 기록을 받아 확인해야 해요."
예린은 공개된 계약 설명서를 분석하며 숫자를 세었다. 4,812는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공석의 최대 개수였다. 하지만 프로그램은 공석이 없어져도 그 자리를 바로 지우지 않았다. 기존 자리를 '해결됨'으로 닫고, 그 자리를 메웠던 사람의 이전 자리를 새로운 공석으로 만들었다.
"누군가 자리를 옮기면 그 사람이 있던 곳이 또 비었다고 계산하네요."
"사람이 이사 가면 빈집이 생기는 건 맞죠."
철민이 말했다.
"그런데 집주인 허락도 없이 세입자한테 이사 명령을 보내면 안 되잖아요."
예린이 철민을 바라봤다.
"그 비유, 오늘 회의록에 써도 돼요?"
"제 이름 붙여 주세요. 제빵사 강철민."
박 씨가 아래에서 외쳤다.
"빵부터 구워!"
웃음이 번졌지만, 은정은 다시 서류를 살폈다. '공석 승계'라는 용어는 첫 버전의 계약서에 없었다. 초기에 쓰인 것은 '대체 근무 연결'이었다. 이후 공석을 운영 자산으로 기재하는 조항이 들어갔고, 마침내 '공석 이전 권한'이 생겨났다.
"누가 그 조항을 넣었습니까?"
지훈이 묻자 은정이 서명란을 가리켰다.
'제도 설계 검토 — 황주석.'
백도식이 말했던 남자였다. 000번 테이프를 자료실에서 반출한 사람. 한때 채용 시스템을 바꾼 사람.
그날 밤, 지훈은 황주석에게 공식 연락을 요청하는 문서를 준비했다. 반환을 요구하거나 회유할 생각은 없었다. 어떤 조항을 왜 바꾸었는지 설명을 듣고 싶었다.
답장은 예상보다 빨랐다.
'공석이 상품이 된 이유를 듣고 싶습니까? 4,812개의 자리에는 아직 값을 치르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첨부된 사진에는 창고에 쌓인 빈 의자들이 찍혀 있었다. 의자 등받이마다 작은 종이표가 붙어 있었다.
'보유자 / 사용권 / 대체자.'
그리고 사진 가장 앞의 의자에는 익숙한 이름이 적혀 있었다.
'오지훈 — 사용권 회수 예정.'
오혜숙은 사진을 한참 바라보다가 말했다.
"의자에 사용권이라고 적었다고 사람이 물건이 되는 건 아니지요. 하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문제예요."
그녀는 자신의 공책을 펼쳤다. 가장 오래된 000번 기록 옆에는 작은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누군가 상담실을 떠나면서 의자를 다시 밀어 넣은 모양이었다.
"이걸 보세요. 의자가 비어 있으면 다음 사람이 올 수 있잖아요. 그걸 왜 빚이라고 부를까요?"
지훈은 사진 속 자신의 이름 위에 손가락을 놓았다가 떼었다.
"이번에는 내 자리가 아니라, 내 눈을 회수한다고 합니다."
혜숙이 놀라 그를 바라봤다. 지훈은 그제야 숨기지 않고 말했다.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일에서, 자신도 두려움을 숨기고 있었음을.
제44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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