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민서는 소개소 상담실에 들어오자마자 의자를 문 옆으로 옮겼다.
"어제부터 밀폐된 방에 앉아 있는 게 싫어요. 모르는 사람들이 제가 뭘 잘할 거라고 계속 말해서요."
지훈은 의자를 옮기는 것을 돕고 창문을 조금 열었다. 강철민은 아래층에서 빵을 구워 올라왔다. 막 구운 단팥빵 냄새가 실내에 퍼지자 민서가 웃었다.
"제가 어제 지원한 회사가 뭘 하는 곳인지 알아요?"
"계약서에 적힌 이름은 확인했지만, 실제 채용 주체와 업무 범위는 아직 확인 중입니다."
"사람을 일시키는 회사가 아니라, 자리만 사고파는 회사 같아요."
민서는 면접 당시의 질문을 떠올렸다. 컴퓨터를 다룰 수 있는지, 전화를 잘 받는지, 야근이 가능한지. 그다음부터는 이상했다. "오늘 본인이 없어도 회사가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나왔고, 면접관은 그녀가 '네'라고 대답하자 만족스럽게 웃었다.
"저는 제가 없어도 회사가 돌아가야 한다는 뜻으로 말했어요. 아파도 쉬지 못하는 직장은 싫으니까요."
"그런데 상대는 다른 의미로 기록했군요."
예린이 면접 안내문을 펼쳤다. '대체 가능성이 높은 지원자 우선 채용.' 그 아래에는 '본인 의사 확인 대체 절차'라는 모호한 항목이 있었다.
지훈의 눈앞에는 민서의 적성이 떠올랐다.
[류민서 / 잠재 적성: 다국어 안내·상담 97.8%]
[보유 재능: 낯선 상황 설명, 갈등 완충, 정확한 전달]
[현재 배정 직무: 산업 설비 안전관리]
[적합도: 8.4%]
높은 숫자가 마음을 흔들었다. 지난번 강철민의 제빵 재능을 발견했을 때처럼, 지훈은 당장 새로운 길을 보여 주고 싶었다. 하지만 숫자를 말하는 순간 민서가 다시 누군가의 판단에 끌려갈 것 같았다.
"다음 일자리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이 뭡니까?"
민서는 오래 생각했다.
"제가 잘 모르는 일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곳이요. 그리고 한국어가 서툰 사람에게 천천히 설명해 주는 일을 좋아해요. 예전에 회사에서 외국인 직원에게 근태 신청을 알려 줬거든요."
지훈은 그제야 웃었다.
"그런 일을 하는 기관 몇 군데를 찾을 수 있습니다. 교육이나 경력 요건부터 같이 살펴보죠."
민서는 휴대전화에서 자신이 작성한 이력서를 열었다. '영어 가능, 베트남어 기초.' 그 문장 아래에는 오랫동안 숨겨 둔 경험이 있었다. 지역 외국인 지원센터에서 토요일마다 통역 자원봉사를 해 왔다는 사실이었다.
"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안 적었어요. 돈을 받은 것도 아니고."
"일의 대가를 받았느냐와 해 본 일이 있느냐는 다르죠."
민서가 이력서에 한 줄을 추가했다.
그날 오후, 지훈은 민서와 성욱의 동의를 각각 따로 받아 외부 배치 자료의 정정 요청을 도왔다. 예린은 요청 접수번호만 기록했다. 누구도 민서의 이력서를 공석관리재단에 전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접수 확인 메시지가 도착하자 지훈의 능력창이 바뀌었다.
[류민서 / 공석 승계 거절: 접수]
[한성욱 / 재직 이의: 접수]
[자동 보전 대상: 14건 → 28건]
"왜 두 배가 돼요?"
철민이 물었다.
지훈은 침묵했다. 거절한 기록이 다른 사람을 찾는 신호로 전환되는 듯했다. 누군가 떠나지 않겠다고 말할 때마다 시스템은 그 사람을 대신할 사람을 더 많이 요청하고 있었다.
예린이 공개된 운영 공고의 개정 이력을 살피다가 한 줄을 발견했다.
'배치 실패 시 동일 계열 대체 인력 2인 추천.'
"실패라고 적네요."
민서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전 일하겠다고 한 적도 없는데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래층에서 박선규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지훈 씨! 우리 가게에도 채용 통지가 왔어요. 내가 오늘 오전에 출근을 안 했다고!"
빵집 문은 아침부터 열려 있었다.
제43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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