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곱 시 반, 연화정밀 정문 앞에는 출근 버스 두 대가 줄지어 섰다. 손에 보온병을 든 직원들이 출입증을 찍고 지나갔다. 그 평범한 풍경이 어젯밤의 경보보다 이상하게 느껴졌다.
지훈은 한성욱과 먼저 약속한 구내 회의실에서 만났다. 성욱은 작업복 차림이었고, 밤샘 때문에 눈이 충혈돼 있었다. 공장 측 담당자와 외부 안전 점검 인력이 설비 가동 중단 사유를 확인하고 있었다. 지훈은 그 조사에 끼어들지 않았다.
"어제 설비는 다시 돌렸습니까?"
"아직요. 점검 결과가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인사 전산 담당자는 제가 퇴사한 게 아니라 재단 쪽 표기가 잘못된 것 같다고 하네요."
"그건 다행입니다. 실제 기록이 남아 있는 거니까요."
성욱은 고개를 저었다.
"문제는 다른 데 있어요. 저희 회사는 교대자를 정할 때 외부 인력 운영 화면을 참고합니다. 제 자리가 비었다고 뜨니까 다음 주 야간조 편성에서 제 이름이 빠졌어요."
그는 인쇄한 교대표를 보여 줬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열두 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한성욱이 있던 칸에는 연필로 류민서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하지만 민서의 서명은 없었다.
"누가 연필로 적었습니까?"
"팀장이요. 화면을 믿고 적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지웠어요."
그때 회의실 문이 열렸다. 작은 가방을 꼭 안은 여자가 들어왔다. 류민서였다. 서른한 살. 지역 물류업체에서 고객 응대 일을 해 왔고, 어제는 사무관리직 채용 면접을 보러 왔다고 했다.
"저도 안전관리자 자리에 지원한 적 없어요. 그런데 첫 출근을 안 했다고 위약금을 물 수 있대요."
지훈은 조건을 묻기 전에 서류를 볼 수 있는지 허락을 구했다. 민서는 휴대전화로 받은 안내 메시지만 보여 줬다. 채용회사 이름은 '미래연결센터', 근무지는 '연화정밀', 직무는 '공석 승계 담당'이었다. 맨 아래에는 아주 작은 글씨로 '지원자는 배치 가능 직무에 포괄적으로 동의한 것으로 간주'라고 적혀 있었다.
"이건 근로계약서인가요?"
"모르겠어요. 서명은 안 했는데 채용이 됐다는 문자만 왔어요."
지훈은 두 사람에게 각각 종이를 한 장씩 내밀었다. 하나에는 '내가 실제로 한 일', 다른 하나에는 '내가 동의한 일'이라고 적혀 있었다. 성욱은 첫 종이에 어제 설비 정지 조치와 대피 안내를 적었다. 두 번째 종이에는 '퇴사 동의 없음'이라고 썼다. 민서는 첫 종이에 '면접 참석, 공장 출입 없음', 두 번째 종이에는 '사무관리직 상담만 동의'라고 적었다.
두 사람의 종이는 닮은 구석이 없었다. 그런데 재단 화면은 같은 자리를 두 사람에게 이어 놓았다.
지훈의 눈앞에 얇은 선 두 개가 나타났다.
[자리: 연화정밀 안전관리]
[한성욱 — 재직 기록 확인 필요]
[류민서 — 배치 동의 없음]
[연결 사유: 공석 자동 보전]
민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가 여기 안 와도 되면, 제 일자리 찾기는 어떻게 돼요? 어제 면접에서 일주일 안에 출근 가능하냐고 물었거든요."
그 한마디가 지훈을 붙들었다. 잘못된 배정을 지우는 일과 민서의 다음 일자리를 찾는 일은 서로 달랐다. 잘못된 서류를 바로잡아도 그 사람의 생활비가 생기지는 않았다.
"사무관리직 면접은 별도로 확인해 보죠. 조건이 괜찮은 곳도 같이 찾아드릴게요. 여기 배정을 거절했다고 다른 지원까지 취소될 이유는 없습니다."
민서가 처음으로 웃었다.
그날 오후, 예린이 회사가 공개한 공석관리 프로그램의 안내문을 찾아냈다. 공석 생성 기준은 퇴사나 휴직만이 아니었다.
'작업 중지, 승인권자 부재, 휴식 시간 초과, 임시 이탈.'
"사람이 자리를 잠깐 비우기만 해도 공석으로 잡을 수 있다는 뜻이에요?"
철민이 물었다.
예린이 대답했다.
"일단 문서에는 그렇게 쓰여 있어요. 실제 배정에 얼마나 반영되는지는 더 확인해야 합니다."
지훈은 어젯밤 성욱이 누른 비상 정지를 떠올렸다. 사람이 위험한 설비를 멈추는 순간, 누군가는 그 시간을 채워 넣을 상품으로 보고 있었다.
그리고 화면 한구석에 작은 숫자가 떴다.
[연화정밀 임시 공석: 1 → 14]
한 사람의 거짓 퇴사가 열네 개의 빈자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제42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