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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악당들의 직업소개소 · 40화
PAYLUA ORIGINAL · 제40화

40화. 아무도 앉히지 않는 의자

악당들의 직업소개소 · 3,223자

오프라인 책장
밤 열 시 오십칠 분, 새 출발 직업소개소의 전등은 모두 켜져 있었다. 구은정은 빈 의자 앞에 섰다. 오혜숙과 문하나, 정태식이 한쪽 테이블에 앉았고 강철민은 박선규에게 부탁해 아래층 빵집 문을 잠그고 올라왔다. 예린은 노트북 화면을 정리하고 있었다. "열한 시가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철민이 물었다. "아직 모릅니다." 지훈이 대답했다. "모르는데 왜 다 모였습니까?" "이번엔 모른다고 말해 줄 사람이 많아야 하니까요." 은정이 웃었다. 철민도 잠깐 웃었지만 곧 표정을 굳혔다. 117명을 붙잡던 계약, 118번의 반환 심사자, 그 위에 있다는 000번 원칙.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철민은 이런 단어들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누군가 시키는 일에 출근했고, 받는 돈으로 밥을 먹었다. 지훈은 사람들에게 준비한 문서를 나눠 주었다. 거기에는 오늘의 목적이 적혀 있었다. '새 출발 직업소개소는 어떠한 강제 직무 승계도 승인하지 않는다. 각 당사자가 본인의 직업과 근로조건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하며, 참여하지 않는 것은 새로운 직무 배정에 대한 동의가 아니다.' 각 사람은 문서를 읽고 자신이 확인할 수 있는 부분만 서명했다. 누군가는 동의했고 누군가는 문구 수정을 요청했다. 정태식은 '모든 근로자의 대리인'이라는 표현을 지우자고 했다. 그들은 모든 사람을 대표할 수 없었다. 예린은 그 부분을 수정한 뒤 다시 출력했다. "이거, 회사 감사보다 오래 걸리네요." 철민이 중얼거렸다. "그래서 우리가 아직 회사 하나를 못 세웠나 봅니다." 지훈이 대답했다. 열 시 오십구 분, 적성창이 열렸다. [공석 승계 거래 준비] [승인권자: 백도식] [이전 예정 직위: 강제 배정 승인권] [118번 심사자 대체 지정 필요] 백도식은 소개소에 없었다. 그가 과거에 피해를 준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 마음대로 들어올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대신 공식 절차로 제출한 중단 요청서의 접수 여부를 확인해 전달했다. 예린의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재단 사업 위탁 계약에 대한 이의 접수가 확인됐어요. 효력이 바로 정지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날짜와 접수 사실은 남았습니다."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서류를 내고 확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검은 창은 그보다 빠르게 흘러갔다. [승계 후보 지정 요청] [예상 후보: 문하나 / 김지연 / 오민규] "또 우리 이름이네요." 문하나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 후보에 올라간 사람들 모두 거절했죠?" "예. 각자 자신의 범위를 명확히 남겼습니다." 지훈은 그들을 대신해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대신 자신에게 떠 있는 118번 지위와 자신이 실제로 동의한 사항을 확인했다. 그리고 아주 작은 항목 하나를 찾았다. [심사자의 권한을 증명하십시오] 지훈이 화면을 향해 말했다. "제가 가진 권한은 제 이름으로 계약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뿐입니다. 다른 사람을 지정할 권한은 없습니다." 검은 창이 흔들렸다. [권한 미충족] [대체 지정 권한 요청] "요청하지 않겠습니다." 다시 화면이 흔들렸다. [공석 유지 불가] "왜 불가능하죠?" 이번에는 구은정이 빈 의자를 가리켰다. "저 의자는 비어 있어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자리를 비워 둘 수 없다는 건 의자가 아니라 그 자리를 팔려는 사람의 사정이에요." 지훈은 순간 자신의 능력이 바뀌는 것을 느꼈다. 늘 머리 위에 보이던 적성 퍼센트가 사라졌다가, 사람들 사이에 얇은 선이 떠올랐다. 누구의 명령이 누구의 기록을 바꾸는지 이어진 선들이었다. 그중 절반 이상은 허공에서 끊겼다. [관계 오류 감지] [부여받지 않은 대리 권한 14건] [당사자 미확인 승인 23건] 숫자 자체가 최종 결론은 아니었다. 지훈은 무작정 삭제를 누르지 않았다. 그가 아는 것은 자신이 승인한 적 없는 관계가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검토될 때까지 제 이름으로 새로운 결정을 내리지 마세요." 그 순간 화면에 처음 보는 버튼이 나타났다. [지위 비활성화 요청] [기존 피해 기록 보존] [신규 대리 승인 차단] 지훈은 문구를 여러 번 읽었다. 지금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다른 사람을 추천하거나, 모든 절차를 그대로 두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기록을 보존한 채 자신의 지위를 멈추는 길이 있었다. 그는 동석자들에게 읽어 주고 자신의 이름으로만 선택했다. [118번 반환 심사자 / 신규 승인 권한 비활성화] [강제 승계 거래: 승인 실패] [기존 기록: 보존] 열한 시를 알리는 시계 소리가 났다. 누구도 환호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계약과 피해가 해결됐다는 뜻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신 철민이 빈 의자를 접었다. "이제 이거 창고에 넣어도 되죠?" "네. 필요한 손님이 오면 다시 꺼내면 됩니다." 문을 닫으려는 순간 예린의 노트북에서 새 알림이 울렸다. 재단의 위탁 계약이 다른 지역의 회사로 옮겨졌다는 공지였다. 접수된 이의 신청 내용은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사업 운영 주체는 바뀐 상태였다. 지훈의 눈앞에 마지막 문장이 떠올랐다. [118번 지역 심사 절차 중단] [전국 단위 공석 배정 시범 운영 개시] [시범 대상: 4,812개 자리] [새 지정 상담사: 미확정] 지훈은 잠시 숨을 멈췄다. 4,812는 피해자 수도, 단순한 지원자 숫자도 아니었다. 누군가가 한 번에 배정하려는 빈자리의 수였다. 철민이 접어 둔 의자를 들어 올리다가 말했다. "상담사님. 그럼 우리 끝난 거 아닙니까?" "여기서는 하나를 막았습니다." 지훈은 창밖을 바라봤다. 밤늦은 거리 곳곳에서 아직도 사람들이 퇴근하거나 출근하고 있었다. 그들은 누군가의 소유 번호가 아니라 각자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다른 곳에 똑같은 일이 생기기 전에 알려야겠죠." 그때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새 출발 직업소개소 맞습니까? 저는 지방 산업단지에서 일하는 안전관리자입니다. 오늘 갑자기 제가 퇴사한 걸로 처리됐다고 합니다." 남자의 목소리 뒤로 공장 경보음이 희미하게 들렸다. "근데 이상한 게 하나 있어요. 제 자리에 온 사람도 자기가 지원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지훈은 종이를 꺼내 날짜와 이름부터 적었다. "먼저 안전한 곳에 계십니까?" 남자는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급하게 말했다. "지금 교대 인력이 없어요. 설비를 멈춰야 하는데 승인권자가 전산에서 사라졌습니다." 전화 너머에서 경보음이 한 번 더 울렸다. 빈 의자 하나를 치운 밤, 지훈에게는 처음으로 전국의 일자리가 연결되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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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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