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석이 판매됐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지훈이 물었지만 백도식도 알지 못했다. 메시지 속 표현은 회사의 정상적인 인수인계 문서와 달랐다. 예린은 그것을 새로운 범죄의 증거로 단정하지 않고 우선 발신 경로부터 확인하기로 했다.
다만 지훈의 눈에는 다른 것이 보였다.
[공석 승계 거래 예정]
[대상 직무: 강제 배정 승인권]
[기존 보유자: 백도식]
[예정 시각: 23:00]
지훈은 문장을 몇 번이나 읽었다. 직업을 파는 게 아니라 직업을 강제로 배정할 권한을 넘긴다는 뜻이었다.
구은정은 오래된 사업 규정집을 뒤졌다. 그곳에서 '승계 가능 지위'라는 말을 찾았다. 해당 지위는 원래 회사를 운영할 사람이 부재할 때 임시로 업무를 유지하기 위해 마련한 제도였다. 그러나 별도의 규정 변경 이후 당사자 동의 여부를 생략한 채 인력 배정에 개입할 수 있도록 확장돼 있었다.
"권한을 넘기는 것만으로 실제 사람의 노동 계약이 바뀌는 건 아닙니다."
은정이 말했다.
"하지만 그런 권한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 계약 절차를 조작하면 피해가 커질 수 있죠."
예린은 해당 거래가 진행된다고 표시된 회사의 공시 자료를 찾았다. 사업 일부를 외부 업체에 위탁하려는 계획이 있었지만, 공개된 내용만으로 위법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었다. 그들이 가진 초자연적인 시스템 창과 실제 법률 절차는 구별해야 했다.
"우리 쪽은 현실의 계약부터 막아야 해요."
예린이 말했다.
"사람을 대신 서명시키는 일이나, 근로조건을 속이는 일이 있다면 그걸 증거로 모아야죠."
백도식은 처음으로 정식 연락망을 통해 직무 승계 관련 지시를 중단시키고, 위임장과 승인 기록의 유효성을 검토하게 했다. 그는 그동안 자신의 말 한마디면 모든 일이 끝난다고 믿었지만, 이제는 그 말이 낳은 결과를 조사해야 했다.
밤 아홉 시, 소개소에 황주석이라는 이름으로 연락이 왔다. 발신자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구은정 선생이 거기 있습니까?"
"누구시죠?"
"그분에게 000번 녹음을 들려주고 싶다고 전하세요."
지훈은 서둘러 녹음이나 만남을 요구하지 않았다. 상대가 자발적으로 말한 범위만 적고, 안전한 공식 연락 방법을 안내했다.
"당신이 테이프를 가져갔습니까?"
"가져온 건 맞는데, 훔친 건 아닙니다."
"반출 기록이 있습니다. 확인이 필요합니다."
"그 기록에 반출 이유가 없을 겁니다. 누군가 없애려고 했거든요."
전화가 끊겼다.
잠시 후 지정된 기관에 원본 자료 제출 의사를 밝힌 접수 확인서가 전달됐다. 예린은 서류의 번호와 발급 경로를 확인했다. 테이프 자체가 전달된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원본을 제출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확인됐다.
열 시 사십 분, 은정이 소개소에 도착했다. 모두가 거래 시간만 바라보는 가운데 그녀는 가방에서 작은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저도 말하지 않은 게 있어요."
구은정은 스스로를 원본 심사자라고 소개했지만, 정식으로 그 직위를 수락한 적은 없었다. 오래전 그 역할을 맡으라는 요청을 받고 거절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지금 그 직함으로 나타납니까?"
지훈이 물었다.
"재단이 계속 그렇게 부르기 때문이에요. 기록을 검토하는 사람을, 기록을 승인하는 사람으로 둔갑시키고 있죠."
은정은 종이를 펴 보였다.
'원본 심사자 지명 거절.'
날짜는 공석관리재단이 본격적으로 조직을 확장하기 전이었다. 밑에는 아무 도장도 없었다.
"이게 처음 거절한 기록입니까?"
"아니에요. 000번의 원본 녹음은 다른 사람이 남긴 겁니다. 나는 그 기록을 보존하자는 요청을 거절당한 사람이에요."
그때 책상 위 오래된 전화기가 울렸다. 전화선을 뽑아 둔 기기였다.
[23:00까지 00:19:59]
수화기에서는 누군가 천천히 숫자를 읽었다.
"118번, 귀하는 다음 심사자를 추천해야 합니다."
지훈이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 질문에는 이미 대답했습니다. 추천하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상대가 웃었다.
"그럼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공석을 사겠습니다."
제3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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