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민이 떨어뜨린 반죽은 바닥에 닿기 전에 박 씨가 받았다.
"손이 왜 이래?"
철민은 두 손을 펴 보였다. 근육에는 이상이 없어 보였지만, 그의 눈은 한참 동안 오븐과 반죽 사이를 헤맸다. 순서를 모르는 사람처럼.
"아까까지는 알고 있었는데……"
지훈은 그를 살폈다.
[강철민 / 제빵 적성 99.1%]
[표현 가능 수준: 26%]
[외부 잠금: 갱신 시도 중]
숫자는 그대로였다. 능력을 잃은 게 아니었다.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철민 씨, 기억나는 걸 말해 보세요. 손으로 못 하면 말로라도요."
"반죽 온도를 맞춰야 하죠. 그런데 손이 먼저 겁을 냅니다. 뭘 잘못하면 누가 벌금을 뗄 것 같아서."
박 씨가 난로 앞에 의자를 놓았다.
"벌금 없어. 대신 손 씻고 앉아 있어. 오늘은 내가 굽지."
철민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지훈은 그에게 옆자리를 권했다.
"정오 전에 회장을 만나야 할 것 같습니다. 원하면 같이 가도 되고, 여기 있어도 됩니다. 이번에는 결정권이 철민 씨한테 있어요."
"같이 가겠습니다."
예린이 빵집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헐떡이며 말했다.
"미래인력개발 사무실 주소를 알아냈어요. 시내가 아니라 외곽 물류단지예요."
"그쪽에서 오라고 연락 왔어요?"
"아뇨. 그래서 우리가 갈 필요도 없어요. 회장이 여기로 오게 하죠."
예린의 생각은 간단했다. 당사자가 계약서 열람을 요구했다는 기록을 내용증명 형태로 남길 준비를 하고, 동시에 외부 상담기관에 현재 상황을 알리는 것이었다. 지훈은 발신 전에 철민에게 문구를 읽어 주었다. 서명은 철민이 직접 했다.
서류 발송이 끝나자 철민이 신기한 듯 말했다.
"제 이름으로 뭔가를 요청한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네요."
"앞으로는 많아질 겁니다."
지훈은 말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서류 하나 보낸다고 백도식이 물러나지는 않는다.
오전 열한 시 오십팔 분.
빵집 앞에 검은 승용차 두 대가 섰다. 검은 양복 차림의 남자들이 먼저 내렸다. 마지막으로 백도식이 흰 장갑을 만지작거리며 걸어 들어왔다.
"상담사 선생. 면접 보자고 했지?"
지훈은 빵집 가운데 놓인 작은 탁자에 앉았다. 철민은 탁자 옆에 서 있었고, 예린은 한 걸음 뒤에서 상황을 지켜봤다. 가게의 CCTV가 작동하는지 박 씨가 미리 확인해 둔 상태였다.
"면접이라면 질문하겠습니다. 강철민 씨가 이 회사를 떠날 수 없는 법적 근거가 무엇입니까?"
백도식은 어깨를 들썩였다.
"돈을 받았으니 갚아야지."
"정산 자료를 요청했습니다."
"원래 회사 서류는 밖으로 안 나가."
"그럼 채무가 얼마인지 확인할 수 없겠군요."
"그걸 확인하면 뭘 할 수 있는데?"
"상환 여부도, 채무 존재도 검토할 수 있겠죠. 그리고 무엇보다 일을 그만둘 자유는 빚과 별개입니다."
백도식의 시선이 예린에게 옮겨 갔다.
"넌 퇴사한 줄 알았더니 여기 있었네."
"퇴사했습니다. 회사가 처리하지 않았을 뿐이죠."
"그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와?"
"제 입에서요."
예린은 노트북을 꺼내지 않았다. 빈손으로 대답했다. 그게 오히려 백도식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백도식은 테이블 위에 서류철을 던졌다.
"여기 있다. 직접 읽어."
표지에는 '강철민 근속 특별계약'이라고 적혀 있었다. 첫 장에는 대여금, 위약금, 비밀 유지, 경력 전용에 관한 조항이 빼곡했다. 지훈은 문장마다 표시를 했다. 계약서 마지막 장에는 철민의 서명과 비슷한 글씨가 있었다.
"제 서명 아닙니다."
철민이 낮게 말했다.
백도식은 웃음을 멈췄다.
"기억을 못 하는 거겠지."
"기억합니다. 저는 이름 끝을 이렇게 쓰지 않아요."
철민은 박 씨에게 볼펜을 빌려 종이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서명 끝에 짧은 세로획이 붙었다. 계약서에는 그 획이 없었다.
지훈이 두 서명을 비교하는 동안 눈앞에 경고가 뜨기 시작했다.
[서류 일치율 62%]
[직업 선택 권한의 유효한 위임 확인 불가]
백도식이 서류철을 되찾으려 손을 뻗었다. 지훈은 건드리지 않고 사진 촬영 여부부터 철민에게 물었다. 철민은 자신의 계약서 사본을 남기는 데 동의했다. 예린이 휴대전화 카메라를 켰다.
"사진 찍을 필요 없어."
백도식이 말했다.
"이미 당사자가 동의했습니다. 법적 효력은 나중에 전문가에게 확인하겠습니다."
지훈이 답했다.
오전 열한 시 오십구 분 오십 초.
백도식은 흰 장갑을 벗었다. 손바닥에는 검은 선들이 손금처럼 엇갈려 있었다. 그가 계약서 첫 장을 손끝으로 누르자 지훈의 시야에 글씨가 폭발하듯 떠올랐다.
[직무 회수 권한 발동]
[대상: 강철민]
[조건: 소속 인정 발언]
"철민아."
백도식이 부드럽게 불렀다.
"네가 누구 사람인지 말해 봐. 내가 지금껏 먹여 살렸잖아."
철민의 입술이 떨렸다. 열일곱 해 동안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이었다. 백도식은 답을 알고 있는 교사처럼 기다렸다.
"저는……"
지훈이 본능적으로 끼어들려는 순간이었다. 철민이 손바닥으로 탁자를 짚었다.
"제 이름은 강철민입니다."
정오를 알리는 휴대전화 진동이 울렸다.
"그리고 앞으로 무슨 일을 할지는 제가 결정하겠습니다."
백도식의 손바닥에서 검은 선 하나가 끊어졌다.
지훈의 눈앞에 문장이 떠올랐다.
[소속 인정 발언: 실패]
[직업 잠금 갱신 중단]
[강철민 / 표현 가능 수준 26% → 61%]
그러나 백도식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다는 표정이었다.
"대단하네. 말 한마디로 내 계약을 끊었어?"
"계약을 끊었다고는 못 하겠습니다."
지훈이 말했다.
"하지만 이분은 당신 소유물이 아닙니다."
백도식은 천천히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
"내가 계약서를 가져왔다고 해서 네가 이긴 줄 아나 보군."
그는 지훈의 손 앞에 검은 명함을 하나 더 놓았다.
"오늘은 체험 면접이었어. 내일부터 본시험이야."
백도식이 돌아서자 뒤따르던 남자가 출입문 손잡이에 봉투 하나를 걸어 두었다.
안에는 구인 광고 스무 장이 들어 있었다.
'미래인력개발 특별 채용. 적성 무관. 고소득 보장.'
박 씨가 종이를 펼쳐 보며 말했다.
"이걸 왜 여기 두고 가요?"
예린이 광고 아래쪽을 가리켰다. QR 코드 옆에는 주소가 있었다. 놀랍게도 바로 이 건물이었다.
'채용 설명회 장소: 새 출발 직업소개소.'
오후 한 시부터 면접 지원자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누구도 지훈에게 장소 사용을 허락받지 않았다.
백도식은 건물을 부수는 대신, 소개소의 이름으로 사람을 모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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