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악당들의 직업소개소 · 37화
PAYLUA ORIGINAL · 제37화

37화. 네 자리 번호가 붙은 빵

악당들의 직업소개소 · 2,065자

오프라인 책장
박선규가 다시 반죽을 만지기 시작한 것은 새벽 네 시였다. 강철민이 작은 타이머 두 개를 준비했다. 하나는 오븐 옆에 놓고, 하나는 반죽 숙성 시간을 기록하는 데 썼다. 한때 박 씨는 손끝 감각만으로 모든 과정을 해냈다. 지금은 온도계와 종이에 적은 순서표의 도움을 받았다. "자존심 상하시죠?" 철민이 묻자 박 씨가 반죽을 천천히 눌렀다. "내가 빵을 못 굽는 게 자존심 상하지. 도구 쓰는 게 뭐가 부끄러워." "그런데 반죽이 자꾸 옆으로 도망갑니다." "네가 너무 세게 눌러서 그래. 주먹 쓰던 버릇 남았구만." 철민이 어색하게 웃었다. 두 사람의 손은 아직 완벽하지 않았지만, 가게에는 다시 빵 냄새가 돌기 시작했다. 그날 지훈은 빵집에서 임성찬과 마주쳤다. 채용 공고를 보고 찾아왔다가 배치 동의 화면을 눌렀던 청년이었다. 그는 공식 상담을 통해 자신의 지원 내역과 철회 요청 접수 사실을 확인했고, 일단 새로운 직무 배정은 보류된 상태였다. "저 시설 안전 업무 배우고 싶어요." "갑자기요?" "계단에서 할머니 넘어지실 뻔한 거 보는데, 제가 처음으로 뭘 하고 싶은지 알겠더라고요." 지훈은 적성창의 숫자를 떠올렸다. 시설 안전 안내 96.2퍼센트. 하지만 청년이 자기 입으로 말하기 전까지는 그 수치가 별 의미가 없었다. "관련 교육 과정과 채용 조건부터 확인해 보죠." 그가 설명하는 동안 철민이 식빵 한 덩어리를 들고 나왔다. 윗면에 숫자가 붙어 있었다. '4,812.' "그건 왜 붙이셨습니까?" "그 재단 채용 공고에 나온 지원자 수요. 박 사장님이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박 씨가 뒤에서 소리쳤다. "기억하랬지 빵에 쓰랬어? 손님이 복권 번호인 줄 알겠다!" 철민은 급히 숫자표를 떼었다. 그 작은 소동 덕분에 웃음이 났다. 하지만 예린이 가져온 조사 결과는 웃을 수 없었다. 재단 공고의 4,812명은 실제 피해자 수가 아니었다. 중복 클릭, 허위 접속, 철회 신청을 한 사람까지 섞인 대기자 수였다. 일부는 존재하는 사람인지조차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면 숫자를 가지고 겁준 거네요." "그럴 가능성이 있어요. 그렇다고 피해가 없다는 뜻도 아닙니다. 일단 확인할 수 있는 사례를 분리해야 해요." 예린은 지원자 전체 명단을 가져오는 대신 공개된 공고 변화와 자발적으로 신고한 사람들의 자료만 대조했다. 확인되지 않은 이름을 피해자로 발표하면 누군가의 삶을 또다시 숫자 취급하는 셈이었다. 정태식은 예전 회사에서 사용하던 일용직 근로 기록 양식의 필드 이름을 기억해 냈다. "'공석 승계 대기자'라는 항목은 원래 후임을 구한다는 뜻이었어요. 그런데 재단 연동 이후엔 퇴사자가 있는 부서에 자동으로 사람이 연결됐죠." "연결됐다는 건 실제 배치라는 뜻인가요?" "아닙니다. 제가 확인한 건 추천 목록 생성까지예요. 이후 누가 승인했는지는 다른 기록을 봐야 합니다." 그들은 말의 범위를 좁혀 가며 사실을 모았다. 그때 박 씨가 빵을 잘라 내밀었다. "회의는 먹으면서 해요. 이거 오늘은 내가 반죽했어." 철민이 일부러 눈을 크게 떴다. "사장님, 솔직히 제 것보다 맛있습니다." "그 말 들으려고 새벽부터 했지." 박 씨의 머리 위 적성창은 아직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제빵 숙련: 부분 회복] [자기 선택에 의한 직무 수행: 확인] 지훈은 그 두 줄을 보며 생각했다. 시스템이 빼앗은 것이 기술이라면, 사람이 되찾는 것은 기술만이 아니었다. 실패해도 다시 시도할 수 있는 시간까지 되찾아야 했다. 오후, 임성찬에게 지역 교육기관의 면접 일정이 안내됐다. 성찬은 소개소를 나서기 전 남은 빵 한 조각을 받아 들었다. "한 달 뒤에도 제가 여기 오면 상담해 주실 거예요?" "그럼요. 취업이 끝이 아니잖아요." 그때 지훈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구은정이었다. "오 선생. 한 가지 확인됐어요. 재단이 사용한 4,812라는 숫자, 실제 숫자보다 다른 의미가 있어요." "어떤 의미요?" "공석관리 프로그램의 처리 상한선입니다. 한 번에 심사 대상으로 묶을 수 있는 최대 수예요." 지훈은 손에 든 빵을 내려놓았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이제 막 최대 수량만큼의 자리를 채우려 하고 있었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37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37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