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테이프를 찾기도 전에 사람들은 새 출발 직업소개소로 몰려왔다.
건물 앞 인도에 줄이 길게 늘어섰다. 구직자들 대부분은 채용 공고를 보고 왔다고 했다. 박선규가 빵집 앞에서 줄이 진열장을 막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오 선생, 이번엔 무슨 면접을 열었어요?"
"아무것도 안 열었습니다."
지훈은 휴대전화에 도착한 사진을 확인했다.
'공석관리재단 특별 채용 — 직무 승계 인력 전국 모집.'
'경력 무관. 즉시 배정. 기존 인력 공석 우선 충원.'
'상담 접수처: 새 출발 직업소개소.'
공고에는 소개소 이름과 주소가 선명했다. 그러나 사업자 등록번호와 연락처는 없었다. 지원자를 안심시키는 문구 아래 '배치 동의 간주'라는 작은 글씨가 붙어 있었다.
"또 우리 이름을 빌렸어요."
예린이 말했다. 그녀는 게시된 곳을 확인하고 원본 화면을 보존했다. 외부 사이트에 올라온 공고의 신고와 삭제 요청을 진행하되, 지원자들의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수집하지 않기로 했다.
지훈은 입구에 큰 안내문을 붙였다.
'저희 소개소는 공석관리재단 특별 채용을 진행하지 않습니다. 서류를 제출하지 마시고, 이미 제출하신 경우 접수처와 이용 목적을 먼저 확인해 주세요.'
그럼에도 일부 사람들은 돌아가지 않았다. 버스로 두 시간을 타고 온 사람도 있었다. 누군가는 당장 다음 주 집세를 내야 했다. 다른 사람은 계약직 만료를 앞두고 있었다.
"그럼 진짜 일자리도 소개 안 해 줍니까?"
중년 남자가 물었다.
"합니다. 다만 어떤 회사가 어떤 조건으로 채용하는지 확인되는 일자리만요. 그리고 여기서는 원하지 않는 일을 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남자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좋은 말은 누구나 하죠. 일만 있으면 뭐든 해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말에 지훈은 목이 막혔다. 선택권이 있다는 말이 모든 사람에게 선택할 여유가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철민이 빵집에서 뜨거운 물을 가져왔다.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종이컵을 건넸고, 박 씨는 가게 앞 통행이 가능하도록 줄을 나눠 세웠다. 지원서 대신 지역의 공공 구직지원기관 연락처와 확인된 채용 정보만 안내했다.
그때 한 청년이 공고를 쥔 손을 떨었다.
"전 이미 동의 버튼을 눌렀는데요. 그러면 지금 다 끝난 겁니까?"
지훈은 청년을 앉혔다. 이름은 임성찬. 물류센터 계약이 종료된 뒤 새 일자리를 찾고 있었다. 공고 링크를 누르자 '적성 자동 배정' 화면이 나타났고, 내용을 읽기 전에 다음으로 넘어가야 했다고 했다.
"그걸 누른 사람은 자기 직업을 잃나요?"
"누른 것만으로 그렇게 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우선 어떤 약관이었는지 확인하고, 철회할 수 있는지 알아봅시다."
지훈은 자신의 능력창을 살폈다.
[임성찬 / 잠재 직업 적성: 시설 안전 안내 96.2%]
[현재 상태: 배치 승인 대기]
[위험: 외부 공고에서 개인 의사 검증 생략]
지훈은 숫자를 말해 주려다 멈췄다. 지금 성찬에게 필요한 건 무슨 직업이 잘 어울리는지보다, 방금 한 클릭을 되돌릴 길이 있는지였다.
예린은 성찬의 허락을 받고 화면을 함께 확인했다. 실제 고용계약서가 아니라 일방적인 사전 동의 문구였고, 취소 접수 경로가 불분명했다. 관련 기록을 확보하고 공식 상담과 신고를 안내했다.
늦은 오후, 구은정이 현장에 도착했다. 그녀는 공고를 보고 얼굴이 굳었다.
"저 문구는 옛 재단이 쓰던 문구와 같습니다. 한 자도 안 바뀌었네요."
"누가 지금 다시 사용한 겁니까?"
"그걸 알아내야 해요."
은정은 서류 가방에서 오래된 채용 안내문을 꺼냈다. 하단 문장은 오늘 광고와 완전히 같았다.
'직무 승계 인원 부족 시 기존 근로자의 의사는 추후 확인할 수 있음.'
지훈은 공고 앞에 모인 사람들을 바라봤다. 사람들의 절박함이, 누군가에게는 빈자리를 채우는 수단이 되고 있었다.
저녁 여섯 시, 재단의 홈페이지에 새 공지가 올라왔다.
'새 출발 직업소개소의 심사 비협조로 인해 예정된 일자리 배정이 지연됩니다.'
그리고 아래에는 신청자 수가 실시간으로 늘고 있었다.
[대기자 4,812명]
지훈은 처음으로 깨달았다. 117명과 118번은 이 일의 전부가 아니었다.
제35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