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은 자기 이름이 발령 후보에 올라 있다는 사실을 듣고 화를 냈다.
"내가 거길 그만두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요?"
지훈은 먼저 종이의 출처와 확인 범위를 설명했다. 인사발령 후보로 이름이 인쇄됐다고 해서 실제 발령이 이뤄졌다고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당사자 몰래 이런 명단이 만들어졌다면 충분히 문제를 제기할 만했다.
"제가 회사에 항의할게요."
지연이 말했다.
"혼자 하셔야 하는 일은 아닙니다. 다만 무엇을 공개하고 누구와 함께할지는 지연 씨가 결정하셔야 해요."
지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에는 재봉 기술도 상당 부분 돌아왔다. 작업복 수선 일을 시험 삼아 맡기 시작했고, 비용과 작업 시간을 직접 계산하고 있었다.
"예전엔 누가 날 필요로 한다고 하면 무조건 고마웠어요. 이제는 제가 원하지 않는 일을 거절할 수도 있다는 걸 알겠어요."
오민규는 다른 반응이었다. 그의 이름도 후보에 올랐지만, 그는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부터 궁금해했다.
"제가 시설 설비 일을 해서 필요한 걸까요? 아니면 엄마 때문에?"
"둘 중 하나라고 단정할 수 없어요."
지훈은 그에게 가능한 자료 열람 절차를 안내했다. 민규는 새로운 식품공장에 정식 채용됐다는 소식을 전하며, 지금 직장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이번에는 제 이름으로 계약했거든요."
민규가 웃었다.
그날 오후, 문하나가 다시 찾아왔다. 발령을 수락하지 않겠다는 뜻을 회사에 전달했다고 했다. 다만 회사로부터 답변은 받지 못했다.
예린은 하나에게 접수 확인이 남는 방식으로 사본을 보관하라고 안내했다. 회사가 답하지 않는다고 해서 거절 의사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문하나는 처음에는 그 말을 믿지 못했다. 지난 몇 년간 그가 본 업무 화면에서는 제출한 요청이 '처리 완료'가 되지 않으면 없었던 일처럼 취급됐기 때문이다.
"저도 누군가에게 그러지 않았을까요?"
그는 작게 말했다.
"이력서를 내고 기다리던 사람들한테, 회사가 답하지 않았는데 그냥 불합격이라고 해 버린 적이 있어요."
지훈은 그 말을 듣고도 쉬운 위로를 하지 않았다. 하나가 과거에 맡았던 업무는 확인할 수 있는 기록으로 정리하고, 부당한 방식이 있었다면 해당 당사자들에게 정정할 방법을 찾자고 했다.
"그럼 제가 할 일이 많네요."
"네. 그런데 모든 걸 오늘 끝내실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는 조금 웃었다. 한 번에 모든 사람을 구하려는 사람보다 차근차근 확인하려는 사람이 더 믿음직스럽게 느껴진 건 처음이었다.
"무섭긴 해요."
"무서운 상태에서도 자기 말을 하신 거예요."
지훈이 말했다.
하나는 한참 말이 없다가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회사 내부에서 받은 안내문의 사본이었다.
'심사자 교체 실패 시 해당 묶음 인원의 직무 사용 제한 확대.'
"결국 나 때문에 다른 사람까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거잖아요."
그 말에 지훈은 조금 단호해졌다.
"회사에서 그런 조건을 걸었다고 해서, 그 책임이 하나 씨에게 생기는 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으려고 원치 않는 일을 떠맡으라는 요구도 확인하고 따져 봐야 해요."
예린은 통지의 근거가 된 원본 규정을 찾아냈다. 보고서 작성 편의를 위해 정한 일곱 명 묶음이, 나중에는 한 사람의 거절로 다른 사람의 기술까지 제한하도록 연결돼 있었다.
"서로를 인질로 잡는 구조네요."
"그렇다고 연결된 사람을 한꺼번에 끊어 버리면 또 피해가 나겠죠."
지훈은 고민했다. 그의 시야에는 여전히 '단위 조정 가능'이라는 항목이 떠 있었다.
그는 먼저 그동안 상담한 당사자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원치 않는 동의나 과장된 약속은 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검증에 참여하겠다고 했고, 누군가는 더 알아본 뒤 결정하겠다고 했다. 한 사람은 연락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
지훈은 모두 기록했다. 거절도 답변이었기 때문이다.
늦은 저녁, 백도식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네 이름을 지우는 걸 막으려면 내가 서명해야 할 게 있다고 하더군."
"어떤 서명입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직무를 전부 반환하겠다는 동의서야. 서명하면 내 회사는 내일 아침부터 운영이 어려워질 수도 있어."
지훈은 조용히 물었다.
"직원들에게 그 위험을 알리셨습니까?"
"아직."
"그럼 먼저 알려 주세요. 회장님 서명 하나로 다른 사람의 생계를 끊어 버릴 수는 없습니다."
통화가 끊긴 뒤 지훈은 처음으로 백도식이 정말 자신의 선택을 해 보려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선택의 결과를 감당하는 일까지 다른 사람에게 떠넘겨서는 안 됐다.
화면에 새 알림이 나타났다.
[118번 반환 심사자 교체 예정: 18시간]
[대체 후보 3명 / 본인 동의 확인 0명]
지훈은 남은 시간을 바라봤다.
이번에는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서는 안 됐다.
제28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