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훈을 교체한다는 통지에는 새로운 심사자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다.
대신 번호만 있었다.
'118번 공석 예정. 대체 심사자 자동 선정.'
예린은 문서를 접수한 회사와 발신 경로를 기록했다. 실제 법적 효력이 있는 통지인지, 시스템이 임의로 뿌린 압박문인지 확인해야 했다.
"우리가 지금 가장 피해야 할 건, 새 심사자로 지목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겠다고 개인정보를 뒤지는 거예요."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에게도 동의할 기회가 있어야 합니다."
철민은 속이 답답했다. 당장 회사를 찾아가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박선규가 만든 빵집 근무표에는 그의 이름이 오후 네 시까지 적혀 있었다.
"제가 남아야 하나요?"
"일은 일대로 하고 오세요. 문제 생기면 연락드릴게요."
"알겠습니다. 그렇다고 못 본 척하진 않겠습니다."
철민이 내려간 뒤 지훈은 소개소 안의 의자 수를 세었다. 대기 의자 넷, 상담 의자 둘, 자기 의자 하나. 일곱 개였다. 태식이 만든 묶음 보고서도 일곱 명이었다.
'이 숫자 때문에 사람을 정리하려 들면 안 된다.'
그는 의자를 하나 더 들여놓았다. 빵집 창고에 있던 접이식 의자였다. 누가 오든 앉을 곳이 없어서 돌아가는 일만큼은 없게 하려는 마음이었다.
정태식이 문을 열고 들어와 그 모습을 보더니 물었다.
"의자가 늘었네요."
"하나쯤은 더 있어도 좋을 것 같아서요."
그때 새로운 손님이 찾아왔다. 젊은 여성 문하나였다. 그는 파견업체의 인사 담당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저보고 내일부터 반환 심사 업무를 맡으래요. 서명만 하면 승진이라는데,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도 말해 주지 않았어요."
지훈의 등이 굳었다.
"회사에서 문서를 받으셨나요?"
하나는 인사발령 통지서와 업무 설명서를 내밀었다. 업무 설명은 '인력 교체 승인, 직무 공석 검증'이라는 두 줄뿐이었다.
지훈은 하나의 머리 위에 떠오른 글씨를 보았다.
[문하나 / 적성: 분쟁 조정 94.3%]
[강제 직무 배정 후보]
[대리 심사자 연결 대기]
"그 일을 원하십니까?"
"아니요. 임금도 잘 모르고, 무슨 책임을 지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거절하면 지금 직장도 잃을까 봐요."
지훈은 그녀 대신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회사의 발령이 어떤 조건에 따라 유효한지 관련 전문가와 확인할 수 있도록 자료를 정리하고, 현재 업무에서 불이익이 생기면 기록을 남기자고 했다.
하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를 돕는다고요? 저 회사 사람이잖아요."
"회사에서 오셨든 저희가 소개한 분이든, 상담받으실 수 있어요."
그가 처음 인사팀에 들어왔을 때 가장 좋아한 순간은 채용 안내 전화를 돌리는 시간이었다. 누군가 합격 소식을 듣고 웃기도 했고, 가족에게 먼저 전화하겠다며 잠시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자 인사팀의 목표는 사람이 아니라 공석을 얼마나 빨리 채웠는지로 바뀌었다.
"제가 지원자에게 설명을 충분히 하겠다고 하면 팀장님은 그래요. 길게 말하면 지원자가 도망간다고요."
지훈은 그 말을 듣고 메모를 멈췄다.
"설명을 들으면 그만두고 싶어지는 일이면 설명이 더 필요한 것 아닐까요?"
하나는 한참 생각했다.
"그렇네요. 그걸 왜 지금 처음 듣는 것 같죠?"
지훈은 펜을 내려놓았다. 누군가의 직업 적성을 읽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그 사람이 이미 알고 있지만 미처 입 밖에 내지 못한 말을 듣는 것이었다.
하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 뒤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는 원래 인사 평가 결과를 설명하는 일을 좋아했어요. 평가가 나쁘게 나온 사람한테도 왜 그런지,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이야기하는 거요. 그런데 요즘은 숫자만 보고 사람을 갈아 끼우래요."
그 말에 지훈은 잠시 웃었다.
"그러면 우리가 하는 일이 조금 비슷하네요."
상담을 마치고 나가려던 하나가 문 앞에서 멈췄다.
"제가 승진을 거절하면 누가 대신 들어가나요?"
지훈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알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하나가 자신의 발령 통지서를 뒤집어 보였다. 종이 뒷면에 아주 작은 바코드가 인쇄돼 있었다.
그 아래에는 이름 세 개가 적혀 있었다.
'문하나 / 김지연 / 오민규.'
자동 선정이라는 말은 거짓이었다.
그들은 이미 누군가의 삶에서 다음 후보를 골라 놓았다.
제27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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