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석관리재단은 검색해도 자세한 정보가 나오지 않았다.
예린은 이름 하나만으로 불법 조직이라고 단정하지 않았다. 공익사업을 지원하던 옛 단체일 수도 있었고, 이미 해산한 법인의 자산을 관리하는 기관일 수도 있었다. 공식 등록 자료를 확인하자 비슷한 이름의 재단이 과거에 실제로 존재했으나, 현 운영 주체는 여러 차례 변경돼 있었다.
"문제는 이름이 아니라 계약서예요."
그녀가 자료를 가리켰다.
"직원들이 다른 회사로 옮길 때 자리를 비워 두는 비용을 계산했다는데, 여기에는 당사자가 거절해도 관리 수수료가 계속 쌓이는 구조가 있어요."
"자리가 비었다는 이유로 돈을 받는다고?"
철민이 황당해했다.
"옮겨 가려는 사람도 잡아 두고, 비었다고 비용도 받으니 남는 장사였겠네요."
지훈은 출입문 옆에 둔 빈 의자를 바라봤다. 평범한 의자였다. 언제든 누군가 앉을 수 있고, 상담을 마치면 일어나 나갈 수 있는 자리.
그런데 누군가는 그 빈자리에 가격을 매기고 있었다.
그날 오후 서정례가 연락했다. 오혜숙이 남긴 기록을 관리하던 오래된 수탁기관에서 연락을 받았다는 것이다.
"원본 열람을 요청하는 공식 절차가 열렸어요. 당사자가 직접 동의했다고 합니다."
"혜숙 씨가요?"
"확인된 건 요청서가 있다는 사실까지예요. 본인 확인은 만나서 해야 합니다."
민규는 그 말을 듣고 곧장 뛰어왔다. 이전처럼 다짜고짜 만나겠다고 하지 않았다. 지훈과 함께 수탁기관이 안내한 절차를 확인했다.
면담 장소는 도서관의 다른 상담실이었다. 문이 열렸을 때, 민규는 가방을 든 여성을 보았다.
짙은 회색 옷을 입은 중년 여성이었다. 손등에는 보라색 잉크가 조금 묻어 있었다.
"엄마."
그는 겨우 한마디를 했다.
여자는 가방을 내려놓았다.
"민규야."
혜숙의 손은 오래된 종이처럼 거칠었다. 민규는 그 손을 잡고 오래 살폈다. 어릴 때 손등에 생긴 자그마한 흉터가 그대로 있었다. 너무 많은 말을 준비해 왔는데, 실제로 그녀를 보니 아무것도 묻고 싶지 않았다. 일단 따뜻한 손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밥은 먹었어?"
혜숙이 물었다.
민규가 웃다가 다시 울었다.
"그게 먼저야? 몇 달 만에 만났는데?"
"그래. 제일 먼저 궁금했어."
혜숙도 눈가를 훔쳤다. 그는 아들이 좋아하던 귤이 가방에 있다는 말을 듣고 기어이 하나를 꺼내 먹었다. 귤이 아주 시었다. 민규가 미안해하자 혜숙은 고개를 저었다.
"네가 가져온 거니까 맛있다."
지훈은 그제야 두 사람이 조금은 숨을 고를 수 있게 됐다는 걸 알았다. 기다리는 사람의 시간과 숨어 지내는 사람의 시간이 이제 겨우 같은 시계 위로 돌아왔다.
둘은 한동안 서로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안았다. 민규가 울었고, 여자는 몇 번이나 등을 토닥였다. 지훈은 문밖으로 나가려 했지만 혜숙이 붙잡았다.
"오 상담사님도 들어오세요. 드릴 말씀이 있어요."
지훈은 먼저 그녀가 원하고 안전하다고 느끼는 자리인지 확인했다. 혜숙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 연락처가 시스템에서 지워졌다고 해서 제가 세상에서 사라진 건 아니에요. 다만 일상에서 제 이름을 쓰는 일이 아주 어려워졌습니다."
혜숙은 오 년 전 센터를 떠난 뒤 지방의 작은 공장에서 기록 정리 일을 했다고 했다. 얼마 전 자신이 보관하던 상담 원본을 찾아 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그때부터 누군가 집과 직장을 알아보는 일이 생겼다고 했다. 안전 문제 때문에 연락을 끊었지만, 그 선택으로 가족까지 불안하게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왜 경찰에 알리지 않으셨어요?"
"신고도 했어요. 다만 모든 자료가 한 사건으로 묶이지는 않았어요. 제 기록이 지워지는 부분은 설명하기가 어려웠고요."
그녀는 작은 녹색 파일을 꺼냈다.
"000은 제가 만든 번호입니다. 누군가의 첫 계약이 아니에요. 일을 거절해도 불이익이 없다는 약속을 가장 먼저 남기려고 만든 빈 번호예요."
지훈이 물었다.
"그런데 왜 제 이름을 118번에 남겼습니까?"
"제가 남긴 게 아니에요."
혜숙은 단호했다.
"당신이 그날 백도식의 요구를 거절한 뒤 누군가 당신의 확인 표시를 상담 승인으로 바꿨습니다. 제가 정정을 요청했지만 회사가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누군가가 누굽니까?"
혜숙이 파일의 마지막 장을 펼쳤다. 거기에는 동그라미와 빈 의자가 찍힌 공문이 있었다.
'공석관리재단 지침. 거절 접수자를 반환 심사자로 대체 지정할 것.'
그 아래 결재란에는 한 사람의 이름이 선명했다.
'백도식.'
혜숙이 지훈을 바라봤다.
"회장님도 피해자일 수는 있어요. 하지만 그 사람은 분명히 선택했습니다. 당신을 심사자로 만드는 선택을요."
제25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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